구글의 역사. <2>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두 영웅의 만남구글의 역사. <2>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두 영웅의 만남

Posted at 2012.03.17 06:01 | Posted in 기획특집



많은 위대한 IT 기업은 두명의 천제의 만남으로 인해 이루어 졌다. 애플의 경우에는 스티브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이 두명의 천제 스티브가 함꼐 꿈을 꿈으로 해서 만들어졌고,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에는 빌 게이츠와 폴 엘런 이 두 천제의 의기투합에 의해 새워니다. 그 외에도 많은 기업이 두명 혹은 그 이상의 동업으로 첫걸음을 걷고는 한다. 
아무래도 혼자 기업을 열면 아무래도 나태해지기 쉽다. 하지만 둘이서 기업을 열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감시자가 되기에 쉽게 나태해 질 수 없을 것이다.

구글 역시 다르지 않다. 구글의 시작은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이 두명의 천제의 만남 이었다. 
세인들의 평에 따르면 사업계획가 실행에 있어서는 나으며, 컴퓨터 공학자 본연의 능력 즉 코팅 실력 등에 있어서는 세르게이가 낫다고 한다. 하지만 레리든 세르게이든 간에 그들의 프로그래밍 실력은 A급 이었다.
혹자는 그들의 생김새만 보고서 저 평범한 두명의 젊은이가 세상을 바꾸었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몰론 믿으면 그게 바보다. 평범하긴 개뿔. 레리건 세르게이건 스탠퍼드 대학교 출신이다. 장난 아니게 똑똑하다. 몰론 미국은 좋은 대학 나왔다고 한국처럼 신으로 취급하는 문화는 없으니 그것 만으로 위너 오브 위너 오브 위너는 아니겠지만, 여튼간에 똑똑하다는 보증수표는 되어준다.

더욱이 그들은 그 스탠퍼드 대학교의 박사과정을 수료하는 학생들 이었다. 즉 미래의 교수들 이었다는 것이다. 
전 미국에서 상위 1%의 똑똑한 놈들이 모인 스탠퍼드의 공과대학. 그중에서도 상위 1%에 속하는 녀석들이 바로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이었다.
 


 스탠퍼드 대학교는 한국의 모 연예인이 졸업한 것으로도 유명한 대학이다.
그리고 몇몇 정신병자 새끼들이 그 연예인이 이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악플을 단걸로도 유명하다.
한 가수가 나왔고, 나오지 않고 가지고 설왕설래가 오갈 만큼 대단한 대학이다.
서울대는 스탠퍼드 앞에서는 명함이나 겨우 내미는 수준이다.
뭐 그래도 명함은 내민다 ...


레리와 세르게이는 참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진 인물이었다. 우선 두명은 같은 스탠퍼드 대학교 출신이고, 1973년 출생으로 나이 또한 같다. 사실 1973년 출생자가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사용 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지만 이 두명의 영웅의 아버지는 모두 컴퓨터 사용자였다. 레리의 아버지는 컴퓨터를 가르치는 교수였고, 세르게이의 아버지는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리고 두 명 다 어린 시절 몬테소리 교육을 받았다.

몬테소리 교육이 무엇이냐 하면은 권위를 부정하고 자발성을 중시하는 미래 지향적인 교육이다. 몬테소리 교육 에서는 때려서 시킨다. 억지로 시킨다. 따위의 개념은 없다. 그저 아이들이 알아서 학습을 할 만한 환경을 조성함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학습을 하도록 유도할 뿐이다. 이쯤 이야기 한다면 알겠지만 몬테소리 교육은 한국의 교육과는 정 반대편에 있고, 한국의 교육계 에서는 몬테소리를 못된소리 라고 말하면서 배척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통용되는 교육 방식은 조선놈들은 때려야 말을 잘듣는다니 뭐....

아무튼 간에 나이, 특기, 아버지 직업, 교육 환경 등등에서 공통점이 많은 두 구글의창업자. 세르게이와 레리는 1995년 대학에서 기념비 적인 첫만남을 가졌다. 유비 관우 장비 처럼 처음 만났음에도 형제와 같은 감정을 두사람은 느끼... 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가진 공통점 만큼이나, 두사람의 성격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레리는 무언가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혼자서 사색하며 궁상 떠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세르게이는 무언가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일단 부딛히는 것을 좋아했다.

두 사람의 성격은 한마디로 말해서 극과 극 이었다. 처음부터 친할리가 없었다.
훗날 레리 페이지는 세르게이 브린과의 첫만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까지 했을 정도다. 



처음 브린을 만났을때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개미 눈꼽만큼의 호감도 느낄 수 없었다.


세르게이 브린이 남긴 말은 레리 페이지보다 좀더 쌈빡했다.



우리는 서로를 미워했다.

보통 관심사가 같으면 어지간하면 친하게 지낼수 잇는데 같은 중증의 컴퓨터 덕후끼리 최악의 첫인상을 받다니 성격이 안맞기는 진짜 안맞었던 모양이다. 여튼 그때는 그 누구도 세르게이와 레리가 동업을 할 것을, 그리고 그들이 새운 회사가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릴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당사자인 두명의 영웅. 세르게이와 레리 까지도 말이다.

두 사람은 사소한 일에서도 말다툼을 했다.

분명 레리는 세르게이를 싫어하고, 세르게이는 레리를 싫어했지만 서로 말은 하고 산 것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불쾌한 감정을 보일지언정 서로에게 무관심 하지는 않았다. 그 누가 그러던가? 호감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닌 무관심 이라고. 이 둘은 서로를 죽일듯이 미워할망정 서로에게 무관심 한것은 아니었다. 서로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미움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서로 이야기를 계속 했다.

그것은 아마 인간적으로 본 상대방은 싫어하지만, 상대방의 실력 만큼은 인정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어느새 그들은 무엇인가를 계기로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 계기가 무엇이였는지는 알수 없다. 그들은 인터뷰에서 어느날 갑자기 우리는 소울프랜드가 되었다! 정도로 말했을 뿐. 정확히 어떤 일을 계기로 사업이라는 크나큰 일을 같이 할 정도의 친구가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서로가 실력은 인정하고 있었을 둘이 힘을 합해서 무언가 어려운 문재를 해결했을 수도 있고, 서로간의 수많은 공통점을 우연히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단순히 좋아하는 취향의 여자가 같아서 음담패설을 같이 하다가 친해졌을 지도 모르고, 좋아하는 영화가 같아서 거기에 대해서 대화를 하다가 친해졌을지도 모른다.

여튼간에 그 둘은 서로 못잡아먹어서 난리인 양숙에서 소울 프랜드로 관계가 월등히 계선되었다. 대충 그전의 레리와 세르게이의 관계가 원작의 조로와 상디의 관계라면 소울 프랜드가 된 레리와 세르게이의 관계는 동인녀들 망상속의 조로와 상디의 관계... 는 생각해보니 아니다. 그건 우정을 넘어선 어둠의 다크에서 죽음의 데스가 느껴지는(...) 무언가이니 말이다.




구글이 탄생하기 전에도 검색엔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야후가 있었고. 한국인에게는 별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본토에서는 나름대로 선전한 알타비스타가 있었다. 그리고 알 만한 사람은 알고있는 라이코스란 녀석도 그때까지는 생존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인포시크, 익사이트, 웹크롤러 등등. 그런 사이트가 있기는 있었나? 하고 이름조차도 가물가물한 기업들이 지들 나름대로 검색엔진을 서비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검색엔진은 전부 키워드만 가지고 검색을 하는 검색엔진 이었다. 그러한 글들에서 자주 노출되는 글은 내용이 좋은 글이라기 보다는 그냥 키워드 단어를 어거지로 쑤셔넣고 있는 글들이 많았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에는 아직 까지도 키워드 검색기술이 주로 쓰이고 있으며 덕분에 나는 굳이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이라는 이름을, 요 글의 재목에 넣고, 본문에서도 최대한 반복해서 쓰고 있다. 당연히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이라는 키워드에서 상위노출이 되기 위함이다.

이런걸 검색 최적화 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블로그질 하려면 저런거 대놓고 하지는 않더라도 어느정도 알고 있으면 좋다.

여튼간에 키워드 가지고만 검색을 추출하니 극단적으로 말해서 알바가 손을 보지 않으면 이명박 이라는 재목의, 내용 역시 이명박 이라는 이름을 1000번쯤 반복하고, 이명박과 별다른 관련이 없는 이명박 이라는 재목을 넣은 사진이 상위노출이 되는 사태가 생길수도 있다. 뭐 그정도로 극단적인 글이라면 알바들이 철퇴를 내리겠지만, 어찌 되었든 키워드 검색은 대충 쓸만한 글을 찾기는 그럭저럭 좋을지 몰라도 아주 좋은 글을 찿기는 힘들었다.

까놓고 말해서 네이버나 다음에 뭐라뭐라 치고, 처음 나오는 패이지 보면 그 질이 그리 좋지는 않은 경우가 많다. 키워드 위주의 그리고, 자사의 정보만 대놓고 보여주는 갈라파고스 검색엔진의 함계랄까나?




범인의 경우라면 여기에 대해서 ‘아직 인공지능이 개발이 안되서 이런 일이 일어나군요! 인공지능 개발 원추!’ 따위의 생각이나 하겠지만 시대의 천재. 레리 페이지의 생각은 좀 틀렸다. 그는 지금보다도 훨씬 뒤떨어진 1990년도 후반의 기술을 가지고도 사람들이 좋아 할만한 정보만 꼭꼭 집어서 상위노출 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매우 단순한 하나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말이다.
 
그 단순한 하나의 아이디어는 바로 외부에서 많이 링크를 퍼간 글일수록 질이 좋은 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많이 퍼간 글일수록 질이 좋다. 이 간단하고도, 확실한 전제에서부터 구글의 핵심 기술이자 세계 검색엔진 시장에, 더 나아가서 세계 인터넷에, 더더 나아가서 그냥 세계에 무지막지한 대변혁을 밀고올 ‘패이지 랭크’ 라는 기술이 탄생하였다.
패이지랭크 기술의 알고리즘을 그려넣으면 다음과 같다고 한다.



나도 이해 못하겠고, 이해하라고 올린 것도 아니다. 
공돌이는 이해 할지도 모르겠다... 
 

레리 페이지는 어느덧 자신의 소울 프랜드가 된 세르게이 브린을 요 일에 끓어들이기로 했다. 여기서 잠깐 음모론을 펼쳐보자면 레리 페이지는 이때 까지도 세르게이 브린을 짜증나는 녀석 취급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르게이 브린의 수학실력과 공학 실력 만큼은 레리 페이지가 생각하기에도 진퉁 이였기에 이 일에 끓어드린 것이다. 그리고 세르게이 브린 역시 레리 페이지의 아이디어에 반해서 재수없는 놈이기는 하지만 같이 작업을 한 것이다 ....

뭐 소울 프랜드가 된 후에 작업을 했건, 작업을 한 뒤에 소울 프랜드가 되었던 간에 세르게이 브린을 프로젝트에 끓어드린 레리 페이지는 매우 괜찮은 선택을 한 것이었다. 세르게이 브린은 특유의 천재적 능력으로 데이터마이닝 기술을 구글의 검색에 복합시키 놓았다.  두명의 천재는 아마 공돌이 답게 같은 랩실을 썻을 것이며, 같은 밥을 먹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1996년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그들이 만든 최초의 검색엔진 백러브를 만들었다.

그리고 1997년 그들은 백러브를 좀더 개량한 검색엔진을 만들어 냈는데 처음에는 100의 100승 이라는 뜻. 즉 좆나게 많다는 듯의 구골 (googol) 이라는 단어를 쓰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googol.com 은 이미 다른 사람이 도매인을 선점하고 있었다. 어쩔수 없이 레리와 세르게이는 구골이라는 이름을 아주 약간 비튼 이름을 자신들의 검색엔진에게 붙여주게 된다.



구글


그렇다. 1997년. 현존하는 세계 최강의 그리고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이 탄생한 것이었다. 레리와 세르게이는 그들의 걸작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어렴풋이 예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IT 업계의 높으신 분들은 그들만한 안목이 없었다. 당시 대부분의 IT 업계는 검색기술 이란 것을 한물 간 기술로 생각하고 있던 터라 구글 이라는 새로운 검색엔진을 굳이 구매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어떤 IT회사 CEO는 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고객들은 검색 따위에는 관심 없습니다.

세르게이와 레리가 구글을 만든 것은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몇날몇일을 끙끙되며 만든 그 걸작을 돈도 안받고 헐값에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단 한곳. 구글에게 관심을 보인 기업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 역시 구글의 검색엔진을 비싼 값 주고 사는 것보다는 그냥 라이센스좀 주는 대신에 임대 하는것을 원했다. 그 회사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하지만 레리와 세르게이는 돈이 없었다. 그들은 돈을 꾸기 위해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야 했는데 그들이 돈을 꾸기 위해서 찾아간 사람 중 한명인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창업자 중 한사람. 안드레아 벡톨샤임은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지도 않은 체 그들에게 돈을 꾸어 주었다. 10만달러라는 거금을 말이다. 그 정도 되는 사람에게는 10만 달러라는 돈이 그리 큰 돈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 직감으로 구글이라는 검색엔진 기술의 가치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정도 돈을 선뜻 꾸어준 것이리라.

10만 달러를 빌리는데 성공한뒤 레리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버거킹에서 햄버거 파티를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구글의 두 창업자는 이곳저곳에 손을 빌려 1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마련했다.
마침내 1998년 9월 7일. 그들은 역사적인 첫걸음을 걷고야 말았다.
그 날은 검색엔진 구글이 아닌 회사로서의 구글의 탄생일 이었다.

그들이 회사를 설립하기 직전 담당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사업이 성공하면 좋지만 사업이 실패해도
그냥 대학으로 돌아오면 되. 너희는 천재잖아.


하지만 세르게이 브린과, 레리 페이지는 그리 안일한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단 그것은 단순한 돈 욕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다른 사업가들에 비해서 돈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자식과도 같은 세계 제일이라 믿어 자신하는 검색엔진 구글이 빛을 보지 못하도 묻히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구글이라는 검색엔진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욕심. 그것이 바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욕심 이었겠지.

우리집 어딘가에 굴러다니는 경품으로 얻은 창업지침서 (정가 1만 8천원) 에는 '사업하다가 안되면 ㅇㅇ 라도 하지 뭐.' 라고 말하는 사람은 결코 사업을 시작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 역시 경영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진지함' 이라고 못밖아 놓았다. 오늘날 가장 성공한 사업가 중 두명인 레리와 세르게이 역시 그러한 진지함을 분명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진지함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욕심 역시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여튼간에 1998년 켈로포니아 멘로파크에서
레리 페이지를 CEO 로 세르게이 브린을 사장으로 한 회사, 구글이 탄생하였다.

  1. 미주랑
    ...........으음...재미있는 소설의 뒷페이지가 찢겨나가 못읽고 있는 기분이 드는군요. 이런거는 좀 한번에 기~~일~~게 연재가 되면 좋을텐데...요즘 인터넷문화가 긴 글은 안읽는 분위기라고 들었습니다...이래서 어렸을때부터 책을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라는건 쓸데없는 소리이고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글이 빨리 나오기를 기대해야겠군요!
    • 2012.03.17 13:08 신고 [Edit/Del]
      랄까나 글 읽는 사람을 읽어요. 인터넷 문화 떄문에 글 안읽는다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들리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애초에 긴 글 안읽는 사람들이에요.
  2. 아 언제 또 연재시작한겁니까 ㅋㅋ
    1편부터 달려야겠음
  3. 구글이 정말 대단하죠...
    만들어진것부터해서... 운영도
  4. 지나가던애
    보는내내 천제를 천재로 바꾸고 싶어 죽을것 같군요
  5. 아니 이런 글은 언제 올리신 거예요.
    이런 좋은 글은 저희 사이트에도 좀 올려주시지. ㅋㅋㅋ

    그나저나 이번 연재는 몇편까지 진행되나요.. ㅎㅎ 기대됩니다.
  6. 지나가던아
    보는 내내 재목을 제목으로, 끓어들인을 끌어들인으로 바꾸고 싶어 죽을 것 같군요.
    재미나서 그런 겁니다.
  7. 세인들의 평에 따르면 사업계획가 실행에 있어서는 ?? 나으며, 컴퓨터 공학자 본연의 능력 즉 코팅 실력 등에 있어서는 세르게이가 낫다고 한다.

    래리가 빠졌나 봐요. ^^
  8. 그리고, 대단한 정도가 아닌 우리나라 탑대학의 탑 클래스 학생들도 박사 지원시 떨어질까봐 원서 못 쓰는 학교입니다.
    물론 학부는 박사보다 쉽다고 하지만...

    아무리 학부라도 스탠포드를 글짓기로 입학하는 건.... 글쎄요...... 의심은 충분히 가질만 합니다.
  9. 불가리
    철자 참 거슬리네요. 천제가 아니라 천재, 재목이 아니라 제목 등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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