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4 - 조조의 야망.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4 - 조조의 야망.

Posted at 2013.01.03 06:48 | Posted in 기획특집


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1 - 후한말의 형새.

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2 - 황건적의 난.

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3 - 유비라는 녀석.



삼국지연의가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문학작품 이란 점은 이론의 여지를 펼치기 힘든다. 하지만 대다수의 대중친화적 작품이 그렇듯이 삼국지연의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굉장히 박하다. 하지만 그러한 대문호들이 유독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으니 그가 바로 조조다. 조조 자는 맹덕. 통칭 조맹덕. 그는 삼국지연의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입체적인 캐릭터다. 유비나 관우는 시종일관 착한 놈이고, 동탁이나 여포[각주:1]는 시종일관 나쁜놈이다. 하지만 조조의 경우에는 어쩔때는 착해 보이기도 하고, 어쩔땐 나뻐보이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과 같다. 살아있는 사람과 같은 생동감. 연의에서의 조조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는 오늘날 창작되는 명작급 작품들의 주인공이나 악역이 가지는 덕목인데 수천년전 씌어진 삼국연의의 캐릭터 조조가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모두가 착한놈 아니면 나쁜놈인 연의의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이중적인 놈. 반쯤 썩은 귤도 썩은 귤이라고 그때문에 독자들에게 무진장 욕을 얻어 쳐먹지만, 이 조조가 없었다면 삼국지연의는 인기를 끓지 못했을 것이다.

레슬링 경기만 보더라도 사람들은 악역을 욕하지만, 악역이 없으면 그게 무슨 재미겠는가? 조조맹덕은 삼국지연의라는 잘 짜여진 레슬링 각본에서 가장 훌룡한 연기를 선보인 1류 악역이었다. 가끔 출몰하는 무개념 양산형 위빠들은 이러한 점을 대놓고 무시하고 나관중이 우리 조간지를 개새끼로 매도했어요! 나관중 개새끼! 를 외치기도 하지만, 나관중 이전의 삼국지소설이나 민담에서의 조조는 연의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찌질하게 나온다. 이것을 나관중이 이곳저곳에서 사료조사 하고 고문서 캐가며 희대의 간지악역으로 조조를 제탄생 시켰고, 그렇기 때문에 삼국지 연의는 재미있는 것이다.




많은 작품에서 악역은 주인공만큼 중요하다.
조커없는 배트맨이나, 디오없는 죠죠를 생각해봐라



정사에서의 조조의 모습 역시 연의와 비슷하다.
이중적이다. 하지만 그렇기 떄문이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얼핏 보면 그는 지독한 실리주의자로 보인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역사에 기록되는 스캐일의 학살극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저지른다. 한황실의 신하를 자처했지만, 인의와 명성을 갖추는 이가 황제에 오르는걸 원하지 않았다. 조조로써는 현제 정도의 그럭저럭 나이가 어리고, 자기 맘데로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의 황제가 딱 적당했다. 하지만 조조는 자신이 인정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호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또한 자신을 죽일 뻔 하기도 한 인물인 가후. 조조는 그런 가후를 자신의 측근으로 등용했다. 그의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원소 휘하에 있을때 조조 뿐만 아니라 조조가문 전체를 욕하는 글을 쓴 진림. 조조는 그 역시 등용했다. 이 역시 그의 문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조의 인재편애가 가장 극단적으로 일어난 예는 다름아닌 유비다. 사실상 유비는 조조 밑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입촉 전까지 유비가 평생 자랑하던 벼슬자리인 좌장군은 사실 조조가 유비에게 준 자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조조를 배신했다.  

하지만 유비가 조조의 뒤통수를 거하게 후려치고 한조의 마지막 충신이라는 꽤나 간지있는 커리어를 완성한 뒤에도 조조는 유비를 자신의 호적수로 인정했다. 그나마 유비를 까내린 말이 "유비는 나의 맞수이나 계략을 쓰는 것이 조금 늦구나". 정도다. 더욱이 조조는 유비를 '현덕' 이라고 불렀는데 당시 시대상에서 자를 직접 부르는 것은 꽤 친한 사람들 끼리나 하는 행동이었단걸 생각해보면 더욱 미묘해진다. 대충 후세에 조조 X 유비. 강공 조조 vs 능글공 유비. 공공 조합 BL 동인지라도 써서 팔라는 식의 묘한 츤츤 데레데레 함을 보여줬다. 어쩌면 자신만 알고있었던 유비라는 인물의 대단함을 세상이 알아가는 것에 대한 불만 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역시 좋은 BL 소재다!


이런저런 자료를 토대로 정리해본 조조는 다음과 같은 인물이었다.


1.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악인이다.

2. 하지만 자신이 진심으로 감복한 인물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해준다. 



조조의 어린시절은 유복했다. 황족 이라곤 하지만 실상은 캐서민인 유비. 그딴거 없이 그냥 캐서민인 손견과는 출발선 부터가 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조조의 가문을 원소의 가문보다 한격 아례로 보는대 후한말 정치상황을 생각해보면 조조의 가문은 원소의 가문에 비해 꿇릴게 그리 없다.[각주:2] 원소의 가문 역시 탁류파에 가까운 가문이었다. 사세삼공? 물론 대단하긴 하다. 하지만 조조의 아버지 되시는 조숭은 삼공 자리를 돈으로 샀다. 환관의 양아들이 조선으로 치면 삼정승 포지션인 삼공중 하나를 당당히 차지하는 세상. 후한 말기는 대충 그런 사회였다. 환관이 정치적으로 그닥 힘없는 고자였던 조선하고는 다르다.[각주:3][각주:4][각주:5]

심지어 원소는 그 가문의 정식후계자도 아닌 첩실. 그 시작은 불안했다. 그에비해서 조조는 시작부터가 명가인 조씨가문의 정식 후계자. 그 위세가 어느정도였냐 하면은 당시 그럭저럭 잘나가던 환관인 건석의 삼촌을 매질하고도 무사했을 정도다. 물론 철차상의 문재는 없었다. 그냥 법 어기고도 내 조카가 높으신분(그래봤자 고자) 이라며 좆나 거들먹 거리는 찐따새끼를 법대로 좆나 패준것 뿐이다. 나라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환관 친적이건, 삼공 친척이건, 황제 친척이건 간에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높으신 분의 친척들이 저지랄을 하고 다니면 더욱 엄하게 벌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나라가 막장으로 돌아가던 후한 말기. 그게 제대로 될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의 조조는 건석의 권력 같은건 그냥 무시하고 건석의 삼촌을 신명나게 팼다. 그러면서 조조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조조나 유비나 젊음시절 빠따질 한번식 했다.
조조는 건석의 삼촌은 빠따로 때렸고,
유비는 독우(감찰관)을 빠따로 때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석은 조조에게 정치적 보복을 하지 않았다. 아니 보복하기는 커녕 오히려 건석이 장으로 있는 환관 직속의 무력집단인 서원팔교위의 8명 대빵중 한 자리를 조조에게 줬다. 사실 그럴수밖에 없는게 건석이라는 인물 자체가 조등이 대려다 키운 일명 조등의 라인이었고, 십상시중 대빵이라는 장양 역시 마찬가지었다. 건석은 조조에게 보복하기는 커녕 후일 자신이 대빵을 맞는 신흥 군사집단 서원팔교위의 한 자리를 조조에게 주었다. 어쩌면 인사권은 건석에게 있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건석은 자신의 삼촌을 좆나 팬 조조가 자기와 같은 반열에서 일하는걸 지켜봐야만 했다. 서원팔교위의 대빵 이라고는 하지만, 건석은 총 지휘권이 있는것이 아닌 8개의 군대중 하나를 맡은 것에 불과했다.

서원팔교위. 8명의 무장이 각각 600~700 사이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는 환관 직속의 무장집단이다. 그 목적은 황궁의 경호다. 8명의 교위들은 지금으로 치면 경호실장이라 할 수 있겠다. 건석은 그중 제1경호실장 이었고, 나머지 7명은 일단 건석의 아랫라인에 위치하기는 했지만, 건석의 직속부하는 아니었다. 건석의 위치는 대략 연의의 오호장중 관우의 위치를 생각하면 적당할거다. 서원팔교위의 8명 대빵. 요즘말로 치면 8명의 공주호위대. 아니 경호실장은 다음의 8명 이었다. 수도 낙양. 당시 인구 50만명의 도시에서 600~700명이다. 한국으로 치면 저 각각이 서울에서 1만2천 ~ 1만4천 가량의 병력을 이끓고 있는 초초초초초초 엘리트 장교들이다.


상군교위 건석
중군교위 원소
하군교위 포홍
전군교위 조조
조군좌교위 조융
조군우교위 풍방
좌교위 하모
우교위 순우경


이중 눈이겨 볼 이로는 단언 조조와 원소다. 
많은 이들이 조조와 원소가 어릴적부터 친구였다. 라고 생각한다. 여러 경향들을 보아서 아주 친한 친구는 아니였어도 그 둘이 얼굴 저도는 트고 지내는 사이었단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시대를 빛낸 두명의 군웅이 젊은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하는건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는지 조조와 원소의 어린시절에 대해서는 야사가 많다. 물론 야사이니 만큼 실제로 그런 역사가 있었다! 라고 생각하는건 무리다. 그냥 옛날부터 사람들이 정치인 가지고 술안주질 하며 놀았구나 정도로 생각하면 될것이다. 개중 대표적인 이야기로는 세실신어에 실린 신부 도둑질이 있다.


어린시절의 조조와 원소는 못말리는 악동이었다. 한번은 어떤 집에서 갖 결혼한 신부를 홈친뒤 도망가는 대담한 일을 즐겼다. 신부를 홈치고 겁탈한 뒤, 걸음아 나살려라 도망갔는데 원소는 그만 가시덤불에 빠져버리고 만다. 이에 조조는 "도둑이야!" 라고 큰 소리를 쳤고, 원소는 다급한 나머지 혼신의 힘을 발휘하여 가시덤불에서 빠져나왔다. 조조의 이 빛나는 기지덕에 조조와 원소 두사람 다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 외에 대부분의 조조원소 관련 야사에서 조조는 무서운 아이이고, 원소는 왠지 모르게 취급이 박하다. 뭐 역사적인 폐베자이며 지기 힘든 상황에서 깨졌다는 걸로 보아서 그런 취급이 당연하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지기 힘든 상황에서 깨진 항우의 역사적 취급이 상당히 좋다는걸 생각해보면 왠지 묘한 일이다.[각주:6]




사실 대부분의 매체에서 남자다움을 마음껏 뽐내는 이들은 인기가 좋다.
카미나, 흰수염, 왕기, 한마유지로, 이스칸달 ... 서구권 슈퍼히어로물로 가면 안 그런 인물을 찾기가 더 힘들다.
지적인 히어로라는 배트맨 조차도 만화책의 묘사를 보면 말보다는 근육으로 대화를 할 것 같은 생김새다.



젊은 조조는 기득권자였다. 따라서 처음에는 그 기득권 안에서 사회를 바꿔보려고 했다. 건석의 삼촌을 좆나게 쥐어팬 뒤 뭔가 느껴진게 있는지 높으신 분들 아는 분이라고 봐주기. 높으신 분들에게 돈맥이고 이익얻기. 즉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 상소를 황제에게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황제가 되기 전 본래 장사꾼이 꿈이었던 영제는 오히려 자기가 직접 주간해서 벼슬자리를 팔아 막장이된 황궁 제정을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나라 전체가 황제의 것인데 황제라는 인간이 황궁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좀먹는 매관매직을 주관하고 있으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턱이 없다. 그리고 이때부터 조조는 한나라 황실에 대해서 무지하게 실망했던 걸로 보인다.

당시 황제였던 영제는 매관매직을 주관하는 쇼킹한 일을 할 망정 최소한 지 앞가림은 할 줄 아는 황제였다. 영제를 빼고는 당시의 2대권력이었던 십상시와 하진 역시 각각 영제의 보모(;;;) 와 손위처남 이었으니 서로 다투기는 할 망정 그 선을 넘지는 않았다. 당장에 영제가 십상시 10명하고 하진 1명. 11명 집합시켜 놓고 “니들 싸우지 마삼. 내가 대빵이란거 잊지말고.” 하면 그 11명은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희가 친한걸 증명하기 위해서 축구팀이라도 만들죠. 숫자도 딱 11명이내요. ㅎㅎㅎ” 같은 맘에도 없는 소리나 지껄어여 할 판이었다. 즉 황제가 정신만 차리면 막장이된 한나라의 회복의 발판을 만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매관매직을 직접 주관하는 장사꾼 황제에게 뭘 바라겠는가 ㅇㅅㅇ.;;;; 영제는 딱 자기 앞가림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없는것보단 나았다. 

딱 자기 앞가림만 하면서 나라를 좁먹었던 암군 영제는 놀자판 인생을 살다가 34살에 덜컥 죽어버린다. 죽음의 원인이 너무 놀다가 지쳐 죽었는지, 그게 아니면 암살당했는지 그런건 모른다. 하지만 죽음의 원인이 뭐였던 간에 그의 죽음은 그 전에는 서로 눈치만 보고 앉아있던 심상시와, 하진 세력이 대놓고 쌈박질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그렇게 황건적의 난과 함께 전반부의 굵직한 사건인 십상시의 난으로 이어진다.
사진은 뭐... 매관매직 해서 날아 팔아드신 영제 되시겠다. (묵념 ...)

 
  1. 다만 여포의 경우 남녀관의 사랑이 중요한 가치가 된 현대에 와서는 로맨스가이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 [본문으로]
  2. 물론 세력으로 그렇단 거지. 심적으로는 고자후손이라고 암암리해 무시하는 풍토는 있었을 것이다. 아니 분명 있었다. [본문으로]
  3. 물론 아주 힘이 없지는 않았다. 대충 박근혜 비대위원들이 그당시 환관 포지션이라고 보면 적절할거다. 환관 대빵은 비서실장쯤 된다. [본문으로]
  4. 다만 조선은 왕권 자체가 강한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환관의 권력 역시 그닥 강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5. 라고는 하지만 조선 전성기. 즉 전기에는 쌧다. 하지만 왕권이 강하면 비서실장은 나름의 권력을 휘두르기는 하지만, 왕을 능멸하거나 하지는 못한다 [본문으로]
  6. 그건 항우가 굉장히 단순무식한 인물. 즉 민중의 교감을 얻기 쉬운 인물이라서 그렇다. 실제 항우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지화된 항우는 대략 그렇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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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조의 가문이 원소보다 못했다는 건 아니지만,
    파급력에서 조조는 원소의 상대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반동탁연맹이나 한복 아래에서 뒤엎고 세력을 구축한 것까지도
    전부 원소의 네임밸류로 이루어진 것이었죠.

    물론, 원소가 무지막지하게 쎈 녀석이긴 했습니다만.
    (관도 이전까지 조조가 원소를 이길 줄 알았던 놈은 별로 없었..)

    오히려 조조의 가문은 권력은 있었지만, 명망이 시망이었던지라
    전국 군웅에 대한 영향력은 없었어요. 원소는 서자인데다 양자였지만,
    나중에 가선 원술보다 더 영향력이 커졌죠.
    물론, 원소가 원술 따위보단 몇 배 더 잘난 놈이라 그랬던 거지만요.




    • 2013.01.03 13:45 신고 [Edit/Del]
      뭐 물론 그런 감도 있죠. 권세가 있는 가문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고자가문.. 사람들의 두려움을 얻을 수 있을망정 존경심을 얻을수는 없으니까요. 어디가서 당당하게 떠들고 다닐 내임벨류는 아닌거죠.
  2. 이스터
    주석에 조금 발을 걸자면 조선의 왕권이 그닥 강한적이 없다니요 ㅡㅡ;;
    조선의 왕권이 본격적으로 약해지기 시작한건 성종부터 입니다.

    문물정비 가령경국대전이라는 법전을 정비같은 신권강화 체계의 완성등 으로 계기가 되었습니다.

    헌데 연산군 이 개ㅎㄹㅅㄲ 때문에(언문투서 사건을 계기로 훈민정음을 탄압하고 분서갱유를 하며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훈민정음 혜례본을 없애려던 어이없는 생퀴임.
    만일 연산군만 없었다면 조선은 한문보다는 훈민정음을 주로 쓰는 나라가 될수도 있었음요 아오!!!)

    아주 왕권이 개작살나버렸고 신하들은 이러한 노이로제에 시달려서 왕권 강화에 아주 학을 떼며 반대하는 배경이 되었지요 ㅡㅡ
    • 2013.01.03 13:45 신고 [Edit/Del]
      쩝... 확실히 조선 전기.. 임진왜란 이전을 뺴먹었군요... 각주 달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조선후기가 제가 알고있는 조선의 스트레오 타입이 되어버린 듯 ;;;
  3. bl얘기만 눈에 들어오는 아이는 나빠여!!!!!
    ㅎㅇㅎㅇ..
  4. 나도 bl에 눈이 가는 1인... 쿨럭..

    "나의 현덕은 나만의 것이라야 해! 세상이 현덕의 매력에 빠지도록 내버려둘 수 없어!"
    그리하여 조조의 유비파멸작전이 개시되었으니...
    일그러진 사랑, 그러나 조조 그 또한 BL물의 주인공임을 어이하랴...

    이거이거 정말 좋은 bl소재인걸요!!! ^^
    • 2013.01.03 13:46 신고 [Edit/Del]
      여담이지만 현덕 이라고 자를 부르는건 친한 사이에서만 허락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조조는 유비 입촉 후... 즉 대놓고 유비가 적대시 할때도 현덕 현덕 했습니다. !!!!
  5. 잘 보고 갑니다^^
    아무쪼록 남은 하루도 좋은날 되시기 바랍니다!
  6. 죠커나 죠죠나 조조나 'ㅈ'라는 평행이론 _ 멍.....()
  7. 조조가 순욱을 죽게 한 후 유비가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죠.
    조조가 죽고난 다음에도 조비에게 서신을 보냈다고 하기도 하고.
    현재만이 아니라 당시로서도 양자는 서로를 꽤나 의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8. sereobeyi
    정말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삼국지 기획특집. 다음편도 기대됩니다
  9. 유비는똥별이
    유비와 관우는 현실에서는 시종일관 결함 투성이인 쩌리들일 뿐이다.

    유비의 경우

    여포 - 조조 - 원소 - 유표 - 손권 - 유장 등을 줄줄이 배신하는 배신킹이다. 그러면서 군재는 완전 똥별이라 예비역 병장들이 흔히 말하는 "국군의 주적은 간부"라는 단어는 마치 유비를 위해 만들어진 단어라고 믿겨질 만큼 유비는 군인으로서는 완벽하게 실격이다. 그 이유는 이릉대첩에서의 케챂파티.

    사실 촉에서 수전에 능한 장수는 황권 하나뿐이다. 그리고 상황 역시 조비가 선양을 받았다. 그럼 답은 뻔한 것이다. 이 때가 위나라를 공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것이다. 그러나 유비는 역시나 똥별답게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권을 똑바로 친 것도 아니였다. 기껏 이릉항에서 배끌고 왔더니 황권이 배를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조언을 씹고 배는 그저 장식... ㅋㅋㅋ 그리고 육손에게 탈탈 털려서 제대로 개쩌는 케챂파티 크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황권은 오나라에 잡히느니 차라리 위나라에 잡혀버렸고 풍습, 부동 등의 청년장교들은 유비의 삽질 때문에 아깝게 희생돼버렸다. 게다가 제갈량의 친구인 마량도 이릉대첩으로 죽었고 마량이 꼬셔온 오랑캐 사마가 역시 주태에게 걸려서 단 일합만에 끔살당했다.


    관우의 경우

    적진 깊숙히 쳐들어가 안량의 목을 베었다고는 하지만 안량은 사마덕종에 비견되는 무능아 주제에 오직 원소와의 친분 하나만으로 상장군이 된 병신이였는데 순욱은 "안량은 필부(평범한 놈 이하)의 용맹을 지녀서 자기가 덤벼도 이길 수 있다"고 평가했고 저수 역시 "안량에게 군대를 맡기면 100% 죶망한다"고 평가했다. 이 병신 하나 이겼다고 천하의 용장이라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관우는 번성에서 서황에게 일기토로 캐발리고 생포되었다가 서황이 인정을 베풀어서 풀어준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관우가 리더쉽이 아예 없는 놈으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사인과 미방이 불장난을 하다가 들켰는데 관우는 지 성깔에 못이겨서 협박만 할 줄 알았지 후속조치의 후자 따위조차 모르는 바보 천치 멍충이였다. 아놔 사인과 미방이 그렇게 싫으면 유비한테 "얘네들 안되겠으니까 얘들을 대신할 사람 뽑아줘라."라고 편지를 써서 올렸어야 했다. 그리고 상황을 봤어야 했다. 그런데 그걸 안했으니 이거야 원... 결국 관우의 죽음은 관우 스스로의 멍청함이 자초한 것이다. 문제가 있는 인물이면 바로 교체를 해야지 으름장 놓는다고 되나?

    결국 유비나 관우나 다른 영웅들에 비해서는 넘사벽으로 모자란 것들로 양민학살만 할 줄 알았지 실제로는 둘 다 개쩌리 새끼들일 뿐이다.






    • 아니오
      2017.10.06 23:47 신고 [Edit/Del]
      리더가 되보지 않으셔서 모르시겠지만
      불장난 가지고 형주를 맡은 일국의 대장군이(형주크기가 한반도 5배 이상) 아래 부하 간수 제대로 못한거 가티고 유비형님 이놈 갈아치워 주세요 이러나? 소인배들이 할 짓을... 대충 경고 주고 감봉시키고 지 권한에서 해결해야지요.
      그리고 관우가 서황에게 일기토 뜨다가 사로잡혔다는건 어느쪽 사료요?
  10. 정말 시원시원하게 잘 쓰시네요. 참 잼있게 보고 있습니다. 이거 스크랩 할 순 없나요?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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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3 - 유비라는 녀석.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3 - 유비라는 녀석.

Posted at 2012.12.24 10:17 | Posted in 기획특집



유비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삼국지의 진주인공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유비의 촉나라는 약소국이었다. 오늘날 쓸대 없을 정도로 삼국지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서 오에 비에서는 딱히 약소국이 아니었다는 식의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조조의 위나라에 비해서는 그야말로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위는 세력면에서도 촉에 월등했고, 손오처럼 호족들이 권력을 가지고 날뛰는 그런 혼돈과 막장의 사회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다. 이는 유비라는 인물이 지배층과, 권력층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인물이었기 떄문이다.

귀종유리담(貴種流離譚) 이라는 분류의 이야기가 있다. 원래 고귀한 혈통이었던 사람이 어떠한 연유로 인해 밑바닥으로 추방. 그리고 그 밑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온다. 식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세계의 신화, 전설 등에서 최소한 한두가지씩은 있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 하더라도 고구려의 2대왕 유리왕의 설화가 있으며, 신화속에 주구장창 등장하는 온갖 반인반신들은 죄다 귀종유리담의 요소가 있다. 그만큼 귀종유리담은 인기가 있는 소재다. 지배층은 순수한 혈통이 결국 승리한다는 것에 대해서 쾌감을 느끼고, 피지배층은 아무것도 없던 녀석이 사실은 고귀한 녀석이었어! 라는 반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유비의 인기요인 역시 유비라는 녀석이 일생이 귀종유리담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기 떄문일 것이다.


효경황제 → 7남 중산정왕 유승 → 육성정후 유정 → 패후 유앙 → 장후 유록 → 기수후 유연 → 흠양후 유영 → 안국후 유건 → 광릉후 유애 → 교수후 유헌 → 조읍후 유서 → 기양후 유의 → 원택후 유필 → 영천후 유달 → 풍령후 유불의 → 제천후 유혜 → 동군범령 유웅 → 실업자 유홍 → 유비


유비의 가문은 증조할아버지 때에는 '제후'의 위치를 가진 나름 잘나갔던 가문이다. 동군범령 이라는 할아버지의 벼슬 역시 한 현의 수장인 동군범령으로 구청장 정도는 된다 칠 수 있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유비의 아버지는 유비가 어렸을때 덜컥 요절해 버렸고, 그때부터 유비의 서민 라이프는 시작된다. 돗자리하고 짚신 팔아서 유비는 생계를 유지했고, 돗자리장수라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불명예 역시 이때부터 유비에게 따라붙었다. 그렇게 유비의 유년시절은 캐서민했고, 캐안습했다. 하지만 그렇게 쥐구멍한 유비의 인생에게도 별들날은 있었다. 유비의 먼 친척이었던 유원기가 좆나게 캐서민하게 사는 유비를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뭐 정사 에서는 남이나 다름없는 친척을 왜 그리 도와주냐는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새끼가 우리가문 일으킬껴" 라며 도와주었다고 한다. 이 유원기의 통찰력이 너무나도 빛나는 일화가 사실인지, 사실이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간에 유원기가 유비를 도와줌으로 해서 유비의 인생은 180도 변했다. 한물 갔다고는 하지만, 나름대로 내임드한 정치인이었던 노식의 제자가 되었고, 이는 후일 청류파 세력에 연줄을 댈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 동문수학한 학교선배로는 무려 공손찬이 있었다.






사실 공손찬은 태어날떄는 유비보다 나을 점이 그닥 없었다. 가문은 그럭저럭 한가닥 하는 가문이었지만, 하필이면 첩의 자식. 가문빨을 하나도 못받는 그런 환경에서 공손찬은 꿋꿋히 성장했고, 결국 그의 재능을 눈이겨본 태수가 사위로 맞이하면서 그럭저럭 인생이 폈고, 그 후로 노식의 제자로 들어갔다. 다른건 몰라도 인맥질 하나에는 무지막지한 재주가 있었던 유비는 공손찬과도 눈도장을 찍는둥 나름대로 작업질을 했다. 하지만 얼마안가 유비는 공부를 마치고 자신의 고향땅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유비는 그의 오랜 조상이자, 그의 롤모델인 유방과 비슷한 행보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유협짓을 했다. 유협 이라고 하면 좀 멋져 보인다. 까놓고 말해서 건달짓이다. 유비는 그럭저럭 무력이 있는 인물이었고, 나름대로 유명한 정치인이었던 노식의 제자라는 학벌도 있었다. 거기에 선천적으로 인맥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덕에 어느덧 뒷꼴목 깡패들의 대장 비슷하게 되었고, 그때 유비와 형동생 하던 깡패 중에서는 관우와 장비도 있었던 걸로 사료된다. 왠 쬐끄만 시골마을 누상촌의 건달조직 누상촌 돗자리파에 후일 만인지적으로 평가받는 관우와 장비가 동시에 있었으니 촌동내 탁현 누상촌은 그야말로 인재의 보고라 할 수 있겠다. 유비의 명성을 듣고 관장이 유비에게 도전하러 머나먼 누상촌 까지 왔다가 존나 쳐맞고 형님으로모셨다는 유비 패왕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돌아다니는 이미지의 절반이, 연희무쌍, 일기당천, SD건담삼국지 관련이라 이미지 찾기가 난감하다.
위 이미지는 중국 드라마 삼국에서의 유관장. 누가 유비고, 누가 관우고, 누가 장비인지는 얼굴에 써있다.



물론 탁현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인재의 보고다. 당장에 유관장 3형제를 동시에 품고 있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 동내가 무지 대단한거다. 또한 탁현에는 관우장비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유비의 초반멤버이자, 훗날 소덕장군이라는 소덕스러운 자리에 오르는 간손미 브라더스의 일원 간옹 선생님도 게셨다. 수경선생 사마휘의 발언 한마디 떄문에 오늘날 무진장 평가 절하되는 간손미 브라더스지만, 입촉 직후 간손미 브라더스의 직위는 제갈량 보다도 높았다. 큰 그림을 그릴줄 아는 인재는 못되었지만, 최소한 시키는 일은 제대로 할 줄 아는 인재였고, 그러한 인재는 조직 내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간옹은 최소한 그정도 수준의 인재였다. 이는 간옹과 함께 세트로 묶이는 손건과 미축 역시 마찬가지다.

그 외 누상촌 돗자리파의 인제로는 전예라는 인물이 있다. 후일 위나라에서 태수, 중랑장, 주지사, 위위(황실 경호실장), 태중지사 등등의 정점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럭저럭 굵직굵직한 자리를 지냈다. 전예는 유비가 의병을 일으킬때부터 함께한 인물로써 누상촌 돗자리파의 창립멤버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후일 유비가 공손찬에게 몸을 의탁할 때 노모가 늙어 봉양해야한다는 이유로 돗자리파를 떠나 공손찬군에게 스카웃 당한다. 그리고 후일 공손찬이 망해버린 뒤 조조에게 몸을 의탁한다. 누상촌 돗자리파의 멤버였으니 만큼 가진건 불알 두쪽밖에 없는 인물이었을 태고, 조조파가 자리를 잡은 뒤에 조조파에 들어간 인물이지만, 그럭저럭 굵직한 자리를 해먹었다는 점에 있어서 그 역시 한가닥 하던 인재가 틀림없다. 하지만 돗자리파 창립멤버였다는 과거 때문인지 위나라는 그를 대촉전에서 쓰지 않았고, 그 덕에 연의에서는 묻히는 신세가 된다.



관우, 장비, 간옹, 전예.



후일 나름대로 높은 직위에 오른 포텐셜 있는 인물들이다. 더욱이 허구한날 배는 큰 세력과 맞짱떠가며 깨지는게 일이었던 누상촌 돗자리파였으니 만큼 이들 외에도, 유비가 눈여겨본 제목이 몇 명 더 있었을지도 모른다. 유비는 탁현의 누상촌에서 깡패대장 노릇이나 하면서 인재를 모았다. 뭐 깡패라고는 하지만 이미지관리에 신경쓴 유비의 특성상 말 그대로 깡패 라기 보다는 자경단에 가까웠을 것이다. 물론 자경단은 그냥 유지되는게 아니다. 밥도 맥여줘야 하고, 창칼도 쥐어줘야 한다. 이러한 돈을 유비가 어찌 마련했을지는 기록이 부실해서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사에서 기록된 대로라면 유비는 이 시절부터 뭔가 발칙한 생각을 품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 발칙한 생각이란 다름아닌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는 생각이다. 아래를 보자 정사에 선주전(유비전) 에 나온 문장을 그대로 복붙했다.


선주는 어릴 적에 일족 아이들과 이 나무 아래서 놀면서 "나는 꼭 이런 깃털장식이 달린 개거(蓋車, 황제의 마차)를 타고 말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숙부 유자경이 "얘야, 분별없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우리 일족을 망치겠구나."라고 했다.



물론 유비가 저런 말은 한 것은 아주 꼬꼬마 시절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황제가 될거야! 라고 당당히 말하던 당돌한 녀석이 결국 황제가 됬다. 결국 요 당돌한 녀석은 나잇살 꽤나 쳐먹은 후에도 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관우, 장비, 간옹, 전예 등등. 그가 자신의 개인조직에 끌어들인 특급의 인재들을 보면서 유비는 훗날 내가 군사를 일으킬때 내 부하가 될 녀석들! 이라고 생각하며 흐믓해 했을지도 모른다. 유비는 오늘날 유교질서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인물중 한명이지만, 위의 황제 가마 일화를 볼 때 유비 스스로가 그닥 충성스런 인물은 아니었다. 그저 유비의 쫄따구들이 유비에게 충성했을 뿐이다.

다시말해 유비는 대장 아니면 할 생각이 없는 어마어마하게 당돌한 녀석이었다. 이는 유비의 이후 행적에서도 잘 들어난다. 조조는 유비를 극진히 대우했지만, 유비는 결국 살포시 웃으며 조조의 뒷통수를 냅다 후려갈겼고, 결국 조조는 유비 때문에 통일왕조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 유비는 신의의인물. 이라는 명성을 평생을 걸쳐 쌓아왔지만, 입촉당시 그 명분보다는 당장의 실리가 더욱 컸을 때는 망설이지 않고 그 명분을 버리고 그 잘나신 유씨종친 유장의 뒷통수를 신명나개 쳐갈겼다.

이를보고 누군가는 유비를 소인배 라고 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를 무작정 소인배로 평가절하 할수는 없다.

조조가 좆나 잘 대해줄때, 조조의 밑에서 계속 뿅이나 뽑아먹고 있는 사람하고, 조조가 잘 대해줌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게, 목숨을 걸고 자신의 꿈을 쫒는 미친놈하고, 어느쪽이 소인배인가? 물론 이런식의 비교는 좀 극단적이다. 어지간한 경우라면 그런 상황에서는 꿈 따위는 포기하고, 그냥 그럭저럭 잘먹고 잘살며, 그래도 탁현 누상촌 돗자리파 두목님에서 여기까지 무진장 출세했네! 하면서 자기위안을 할것이다. 하지만 유비는 최소한 어지간한 녀석은 아니었다. 깃털장식이 달린 가마를 탄다. 즉 황제가 된다는 말도 안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걸 걸 준비가 되있었던 녀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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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니자드
    확실히 이렇게 보니 탁현 누상촌은 정말 인재의 고장이네요. 주성치 영화 쿵푸허슬의 돼지촌이 생각납니다. 탁현에서는 시장 상인이 전부 무력90의 장수이고 동네 글방선생이 지력 90의 재사였던 걸까요? 하긴 돛자리 장수도 매력 90의 카리스마 맨인걸 보면 진정으로 그곳이 돼지촌이네요^^
  2. 사람은 그 사람의 현실보다 그 사람의 꿈에 의해서 달라진다는 말을 몸소 실천한 것만 봐도 대단한 인물이죠
    개인적으로는 유비 패왕설이 참 맘에 든다는 ㅋㅋㅋㅋ
    • 2012.12.25 14:37 신고 [Edit/Del]
      오히려 연의의 유비보다는 그쪽이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다만 무조건적으로 때리는게 아니라, 카미나 같은 패기가 곧 인간적 매력이 되는 그런 리더가 아니였을까 상상해 봅니다.
  3. 정사 기록만 보면 사마의보다 한 수 위인 전예까지..-ㅅ-;;
    나중에 공손찬의 객장으로 활동할 때는 국의도 유비 쫓아가려고 했고
    조운은 아예 유비한테 갔지요..

    만약 예정(?)대로 유비에게 전예, 조운, 국의 세 사람이 갔다면
    조건달은 유비 못 잡아서 쩔쩔맸을 거란 말이죠..-ㅁ-
    • 2012.12.25 14:39 신고 [Edit/Del]
      뭐 그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뭐 결국 조건달 인생 최고의 실책중 하나는 유비를 살려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대부터 나름 내임드였던 유비를 별 이유없이 죽이는건 결코 좋지 못한 일이지만, 애초에 조건달의 이름이 당대에도 그리 깨끗했던건 아니고요. 내임드 그거 먹는건가요? 우걱우걱이 조건달의 특기였으니.
  4. 처음으로 신삼국의 화면을 봅니다만...
    저는 그 전의 삼국지 인물들이 더 나아보이는군요.
    • 2012.12.25 14:39 신고 [Edit/Del]
      다 취향이긔요 ㅋ 님도 검색해보면 알거에요. 심삼국 하고 코에이삼국지 이미지 말고는 일기당천, 연희무쌍, SD건담 삼국지 등의 이미지라 ㅋ
  5. 저는 탁현이라는 동네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지나가다 볼 수 있는 돼지고기 파는 사람은 장비고, 그 옆에서 그냥 나눠주며 성질 돋구는 사람은 관우,
    시장 구석에서 돗자리 짜는 사람은 유비-
    심지어 이름도 안나오는 동네 대장장이가 만든 청룡언월도를 비롯한 무기들.
  6. 이히리히디히
    항상 생각하는거지만 유비는 닮고 싶다고 닮을 수 있는 인물은 아닌듯해요. 롤모델로 삼으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할지 감도 안잡히니....
  7. 유비는똥별이
    유비는 존경할 가치가 아예 없는 쓰레기일 뿐이다. 저렇게 배신에 배신을 연달아 해놓고 나온 결과물이 이릉대첩? 캬하하, 웃겨주는구나. 그따위 병신같은 케챂잔치를 벌이려고 조조고 여포고 원소고 유표고 싸그리 배신했나? ㅋㅋㅋㅋㅋㅋ

    더군다나 유비 없이도 조조는 손권이라는 강력한 군세와 주유라는 천재 때문에 천하통일을 할 수가 없었다. 적벽대전에서 촉은 아예 아무것도 안했고 유비관우장비는 아주 철저하고 완벽하게 손권의 부하 병졸이였을 뿐이다. 적벽대전 자체가 주유의 지략과 황개의 맹활약으로 이긴거지 유비네는 암것도 안했다. 당연히 화용도도 개뻥이고!

    유비를 본받기는 너무나도 쉽고 오히려 허접하다. 왜냐하면 무리하게 병력이끌고 가서 다 쳐발리면 무조건 유비를 완벽하게 본받는거라 히틀러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유비를 아주 완벽하게 볻받는 데에 성공했다.

    시골서생 육손을 천하의 명장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준 똥별 중의 상똥별 유비 똥별의 위엄을 봐라. 유비 상대로 전투를 하면 누구나 천하의 명장이 될 수 있다.
    • BlogIcon .
      2013.09.11 00:17 신고 [Edit/Del]
      적벽에서 무리수두다가 불쑈맞고 병사들 시체밭 만들어서 밟고 간 조조도 똥별이지? 지랄은 삼갤에서 하고 그냥 곱게 짜져있어라 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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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2 - 황건적의 난.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2 - 황건적의 난.

Posted at 2012.12.07 12:43 | Posted in 기획특집


한(漢) 이라는 나라가 건국된지 어연 300년. 망할 위기는 여러번 있었고, 실제로 한번은 사실상 망했던 한나라이지만, 그럭저럭 백성들에게 지지받았고, 그럭저럭 프로파간다 전파에 성공한, 나라였기에 위기시마다 불사조처럼 살아나고는 했다. 하지만 그런 한나라의 영광도 거의 끝나가던 때. 외척들의 횡포를 잡으라고 등용해둔 환관이 외척을 때려잡은 뒤 온갖 쌩 횡포를 부리던 때였다. 나라꼴이 막장이다. 이는 곧 종교가 발돋움하기 딱 좋을 때라는 뜻이다. 예수그리스도가 기독교를 창시할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 상태였으며, 무함마드가 이슬람의 깃발을 그리기 시작한 무렵의 중동 땅 역시 소수의 거상이 절대다수의 노예를 가축부리듯 부리는 그런 시대였다. 즉 종교는 난세의 필수요소고, 난세는 종교의 필수요소다. 혼탁한 시기 민중은 종교에 의지한다. 하지만 괜히 혼탁한 시기겠는가? 난세의 종교는 썩을때로 썩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령 성경에서 예를들자면, “일요일에 사람을 살렸으니 너 이단!”을 당당하게 외친 바리세인들이 썩어빠진 종교인의 예시가 되겠다.[각주:1]



http://sstatic.naver.net/people/78/200902022135124461.jpg인물사진




요즘 이라면 기독교 계통의 종교에서 사이비가 나오기 쉽겠지만, 때는 서기 184년. 당연하게도 중국에 기독교가 들어오지 못했다. 불교야 들어오기는 했지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중국땅에서 가장 메이저한 종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건 아니었다.당시 중국땅에서 가장 잘나가는 종교는 도교다. 그렇다. 신선놀음이다. 후한말. 중국 역사에서도 손꼽힐만한 난세이니 만큼, 그 시대의 도교는 상당히 메이저한 두 개의 종파를 만들어넸는데, 그중 하나는 오늘날까지도 믿는사람이 상당수 있는 장로의 오두미도다. 삼국지에서는 그저그런 2류영주로 나오는 장로지만, 현재까지도 믿는자가 있는 도교의 매이저종파인 오두미도의 3대 교주로써 도교 역사에서는 그럭저럭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오두미도 이전, 오두미도보다 먼저 도교가지고 뭔가 정치를 해보려는 도교의 종파가 있었으니 그 종파가 바로 태평도이다. 모든사람은 하늘의 이치를 따라야 해요! 나쁜짓 하면 벌 받아요! 지금 세상은 썩었어요! 그런데 킹왕짱 대단한 매시아가 올거에요! 같은 종교의 필수요소는 갖출대로 갖춘 요 태평도는 혼탁한 사회상에 힘입어 크게크게 뻗어나갔다. 한편 그렇게 크게크게 뻗어나가는 자신의 창작물을 보면서 흡족해하던 장각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한나라는 좆나 막장인데 우리애들은 무진장 많잖아. 내가 일어서면 내가 황제되는거 아니야?"


그리하여 장각은 날로 늘어나는 신도의 쪽수를 쳐믿고, 군사를 일으키기에 이른다. 그때 장각이 꺼낸 레퍼토리는 다음과 같다. “퍼런 하늘은 이미 죽었다. 누런 하늘이 일어선다.” 음양오행설에 따라 한나라는 파란색이고, 파란색 다음의 시대는 누런 시대인데, 퍼런 시대 다음에 누런시대가 오는건, 계절이 바뀌는 것과 같은 상생이므로 노란색을 상징색으로 썻다. 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지만, 그 외에 중국애들이 누런색을 워낙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도 한 몫한다. 오행설상, 누런색은 중앙에 위치한 색. 즉 킹왕짱한 색이며, 중국신화에서 가장 쌘 신의 이름은 황제(黃帝) 즉 누런색의 신 되시겠다. 하지만 퍼런색 다음엔 누런색 이라는 프로파간다 자체는 후세에도 먹혀 들었는지 위나라의 첫 연호는 황초(黃初)이며, 오나라의 첫 연호는 황룡(黃龍)이다. 한나라를 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나라의 직통이라는 뿌뿌뿡!” 하던 촉나라만 장무(章武)라는 누런색과 상관 없는 연호를 사용했다.
그렇게 중국인의 마음속에서 영혼의 색의 역활을 하던 "누런색"  이 킹왕짱임 이라는 이데올로기와 함께 황건적은 일어났다. 그들의 상징인 노오란 두건과 함께 말이다. 물론 황건적 이라는 말은 기득권층인 한나라 에서 부른 명칭이고, 황건적 측에서는, 태평군 혹은 황건군 이라는 보다 스무스한 명칭을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황건적(賊) [도둑 적] 이라는 이름의 의미만 무시한다면, 황건적 이라는 이름도 꽤나 간지다. 물론 의미가 '누런두건낀 도적놈' 이라는 엿같은 의미여서야 본인들 스스로고 황건적 이라고 말하고 다닐수는 없다.




모 애니의 모 일진은 스스로 황건적이라고 자칭하고 다니지만, 그건 일진 이야기고.




코에이 삼국지 등에서는 안습한 능력치의 야라레 정도로 묘사되는 황건적 이지만, 사실상 한나라를 멸망시킨게 황건적이니 만큼 아주 안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황건적은 초반에는 관군을 이겼다. 한나라가 워낙에 막장이니 만큼 황건적은 금방에라도 한나라를 겁탈해 버리고, 온 천하를 누런깃발로 채울 듯 해보였지만, 황건기의가 황건적의 난으로 바뀌면서부터 이는 달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민중봉기 뭐 좋다. 세상을 단번에 바꿀수 있는 괜찮은 선택이다. 하지만 애초에 황건군이 체계와 물자를 갖춘 한나라군을 초반에 이길수 있었던 이유는 황건군에게 민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못참겠다 바꿔보자!” 라는 어디선가 들은 것 같기도 한 구호와 함께 지배지의 백성들의 호흥을 얻으며, 세력을 부풀려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황건군의 규모가 커지면서 황건군의 통치는 매~우 어려워지게 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가 약 400km다.(도로거리 기준) 사람이 걷는 속도의 평균은 약 시속 4km. 즉 쉬지않고 걸어야 4일 정도 걸린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쉬지않고 걷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자는시간, 밥먹는 시간 등등을 합하면 쉬는시간은 여행시간의 거의 절반. 즉 8일 정도는 걸어야 도착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시대는 바야흐르 한나라 말기. 산업혁명 따위는 먼 훗날의 일일 뿐이오, 중국인들이 로마인들처럼 도로덕후인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오랜기간 동안 지속된 폭정 덕에 그 도로의 관리도 제대로 안됬을 것이다. 여기서 다시금 소요시간은 뻥튀기 된다. 적어도 15일 정도는 걸어야 도착 가능하다. 더욱이 당시 사람들의 체격조건은 현대인에 비해서 매우 열약했다. 평균 4km의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현대인보다 자주 쉬어져야 한다. 여기서 이틀 정도를 더 쉰다고 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리는 거리는 약 17일이다.

물론 이건 주먹구구식으로 계산한 거리다. 하지만 당시의 주와 주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멀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뭐 말을 태워 보낼 경우 훠월씬 단축되기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설로 불리는 적토마와 같은 말들. 즉 뻥이 가미된 반쯤은 환상종인 말들이 하루에 천리. 즉 400km 간다. 이는 오늘날의 도로를 달릴 경우 서울에서 부산까지 하루만에 갈 수 있는 우월한 속도이지만, 사람 달릴만한 도로가 없는 시대에 말 달리는 도로라고 제대로 구비됬을 것 같지는 않다. 또한 하루에 천리 달리는 말이라고 해도 이틀에 이천리 달리는건 무리다. 이는 하루에 자위를 5번 할수 있는 남자가 이틀동안 자위를 10번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말 역시 사람인지라 쉬어야 한다.

즉 이것저것 긍정적으로 계산해도 서울에서 부산 정도의 거리를 말타고 거니는데는 3일 이상이 소요된다.
그리고 보면 알겠지만, 당시 중국의 주의 크기는 중원땅에 자리잡은 인구밀도 높고, 그나마 작은 주 조차도 남한땅과 크기가 삐까비까 하다.




황건적은 청주, 서주, 유주, 기주, 형주, 양주, 예주 등. 후한 13주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6개 주에 세력을 떨쳤다. 그리고 위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중원땅의 좁은 대신에 인구밀도가 높은 주들 조차도 남한 영토와 거의 삐까삐까 뜬다. 즉 황건군 끼리의 의사소통은 제대로 될리가 없다.






그럭저럭 선진국이라는 2011년의 영국에서도  처음에는 정당한 목적의 시위로 시작해서, 불을 지르고 '혼돈, 파괴 망각!' 을 외치는 대폭동으로 비화된 일이 있다.[각주:2] 2011년이 이러할진데 서기 200년은 오죽 하겠는가?  당시의 황건군은 먹고살기 힘들어 일어난 사람들이다. 즉 당장에 먹고살기 힘드니 남들것을 뺐자! 라는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매우 쉬운 상황이다. 더욱이 어중이 떠중이 도적들이 요새 잘나가는 누런두건 코스프레를 하며 도적질을 하니, 황건군이 황건적이 되는건 순식간의 일이다. 황건적이 무슨 돈이있고 빽이 있어서 반란을 일으켰는가? 그들에게 제산이 있다면 부폐한 한나라를 쳐부순다는 대의명분이오, 그들에게 빽이 있다면 바른 정치가 펼쳐지기를 바라는 민중들이다. 그 돈과, 그 빽을 스스로 저버렸으니 황건적의 몰락은 자명한 일이다.[각주:3]

그렇게 황건적의 난이 관군. 그리고 의병에 의해 진압되기 시작할 무렵, 장각이 죽었다. 지도자의 죽음. 그것은 그 지도자가 축지법을 쓰고, 공중부양을 하고, 결과적으로 세상을 바꿀꺼에요~ 라는 믿음으로 반란을 일으킨 황건적들에 있어서는 매우 크나큰 사건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황건적에 맞써서 한나라의 평화를 지키자. 라는 명분하에, 실제로는 한 몫 잡아볼 요량으로 나선 이들에 있어서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한때 한나라를 먹을랑 말랑 했던 황건적의 세력은 점점 줄어들었다.

한편 황건적을 열심히 때려잡은 관군과 의병 중에서 특별히 세명의 중요한 사람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위촉오 삼국을 새운 시조님들 되시겠다. 유비, 조조, 손견이다.[각주:4]




 

  1. 근데 성경책에서만 있는줄 알았던 바리세인이 현대의 한국에서도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다. [본문으로]
  2. 물론 이건 극단적인 경우다. 대부분의 시위는 저딴식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다 보니 저 이상의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 가령 일본의 전국시대. 인의군자로 칭송받았던 우에스키 짜응의 18번은 점!령!지!약!탈! 이었다. [본문으로]
  3. 근데 사실 이게 또 어쩔수 없다. 중국땅이 좀 큰가? 돈도 뺵도 없이 일어선 반란군들이 전국적인 인프라를 갖춘다는건 말도 안된다. 실제로 중국역사상 일어난 크고작은 종교반란중 성공한 것은 홍건적의 난 하나뿐이다. 홍건적의 난은 지배층이 몽고놈이다. 중국인이여 일어서자! 라는 명분으로 성공할 수 있었지만, 후한시대의 지배층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인이다. [본문으로]
  4. 손견의 경우에는 사실상 나라꼴 갖추기 시작한건 손책떄이며, 독립국을 표방한건 손권때 이지만. 손견의 이름은 손책이 강동을 재압하는 중요한 디딤돌 이었다. 손권은 뭐 말할것도 없이, 그 손책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았을 뿐이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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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미있는 삼국지 잘 봤습니다. 요즘 저도 삼국지2 게임을 다시 시작하고 있는데요. 그 것과 더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2. 황건적의 정치이념은 조조에게 흡수된다는 일본 학자 설에 따라
    황건적은 살아남았다고 믿어요!(청주병 말고)

    내가 굳이 황장미 팬이래서 황건당을 지지하는 게 아님!
    (지크 로자 페티다!! 에리코후 아크바르~!)
    • 2012.12.09 02:07 신고 [Edit/Del]
      흠 조조의 정치적 사상이라... 문재는 황건당의 사상도, 조조의 사상도 기록이 매우 빈약하단거... 그나마 연구가 활발한 삼국지 관련이여도 이정도니 뭐...
  3. 뭐, 엄밀히 말하자면 황건적의 난은 주준, 황보숭, 노식과 같은 최후의 명장들의 손에
    진압되었다고 봐야겠지만서도.. 그들의 부장으로 활약한 조조 유비 손견이 좀 킹왕짱이긴 했습니다.

    개인적으론 한나라를 멸망케 한 건 동탁 이 시벌내미 때문으로 봅니다. ㅋㅋ
    • 2012.12.09 02:02 신고 [Edit/Del]
      가끔식 동탁을 찬양하는 자들도 있거군요. 물론 그들이 정사와 연의에서 취사선택한 소리를 들어주는건 지적고문 입죠.
  4. 황건적과 오두미교, 홍건적과 백련교도, 홍수전과 태평천국의 난, 글구 모택동과 공산당(종교는 아니지만 사상적 구심점 역할은 했죠. 유사 종교 역할도 있긴 하구)
    중국 사회 변혁은 종교와 사상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죠..
    • 2012.12.09 01:57 신고 [Edit/Del]
      마오의 것은 그냥 종교로 쳐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맑시즘을 농민한테 적응한다라.... 참새를 싹 다 잡으면 농사가 잘될거라고 진지하세 생각하는 사람의 머리에나 나올법한 이론이에요
  5. 장각이 황제가 되건 말건, 황건의 난이 성공하건 말았건 저 규모로 민초가 들고 일어났다는 측면에서
    이미 한나라의 끝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정해졌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었죠...
    그걸 그 이상으로 끌고간 당대 인물들이 말도 안되는 존재라고 밖에는.
    • 2012.12.09 01:47 신고 [Edit/Del]
      민초가 칼을 들었을때 지배층은 그들을 도적이라 칭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그들을 도적이라 치더라도 그들은 작은 도적일뿐 큰 도적은 따로있죠.
  6.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
    알찬 주말을 보내세요~
  7. 유비는똥별이
    당시 중국 전토의 인구와 면적은 오늘날의 아르헨티나와 거의 동일했다. 280제곱킬로미터와 5천만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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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1 - 후한말의 형새.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1 - 후한말의 형새.

Posted at 2012.11.26 12:39 | Posted in 기획특집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한(漢)족 이라고 칭한다. 아시다시피 한(漢)은 중국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제국의 하나일 뿐이다. 중국 최초의 왕조는 역사적으로는 은주, 신화적으로는 하나라까지 거슬러간다. 주나라의 존속시기는 천년에 달하는 것에 비해 한나라의 경우는 전한후한을 합해서 400여년, 거기에 촉한을 어거지로 집어 쳐넣어도 450년 정도다. 물론 왕조의 수명이 450년 이라는건 상당히 긴 축에 속하지만, 한보다 시기상으로 앞섰고, 1000년이 넘는 세월을 존속한 주나라나, 말로는 중화 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문자도 언어도 생활풍습도 다르던 여러나라들을 뭉쳐, 하나의 중국을 만든 진나라도 있다.하지만 그런 주나라와 진나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漢)이 중국 왕조의 스탠다드이자,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왕조, 더 나아가 민족의 이름이 되기까지 한 배경은 다음과 갔다.



1. 사실상 하나의 중국을 가능하게 한 시발점이다.

물론 기록상으로 치면, 하은주 시절에는 하나였다가 춘추시대가 들어오면서 여러 나라로 갈라졌다 라고는 한다. 하지만 초나라의 경우에는 주나라가 거의 망한 뒤에 명목상으로 주나라를 섬기기는 하지만, 그건 명목상 그러했을 뿐이다. 초나라의 민족은 주나라의 민족과는 다른 종족이다. 유물 등으로 보았을때는 묘족의 계통일 가능성이 높다.
몇몇 사서에는 대놓고 “갓 쓴 원숭이.” 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민족이 같은민족인 ‘척’ 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 역시 중원국가들에게 여러모로 개무시 당했다. 춘추시대 초입 주나라 왕이 죽네마니 할 때 주나라 왕을 도움으로 해서 주나라의 백작 작위를 받았음으로 초나라처럼 대놓고 오랑캐 취급은 받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퓨어한 중국인 이라고 보기에는 역시 무리다.
그리고 초나라와 진나라를 합하면 전국칠웅 국력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이다. 다른 전국칠웅을 찍어누르고 통일을 한 것이 진나라이며, 그 진나라를 찍어 누르고 황제가 된 항우와 유방의 출신지 역시 초나라다. 사실 시기상으로 치면 하나의 중국 이라는 골때리는 개념을 시작한건 진나라 였지만, 그것을 시작한 방법이 다름아닌 무력을 통한 침탈 이었기에 다른 나라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니꼬운 실정 이었다.
그에 비해서 한나라는 그 천고의 악당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새운 나라 였고, 그렇기에 진나라보다는 아무래도 백성이나 사대부가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이다.



2. 중국을 아시아의 진정한 패권국가로 만들어났다.

진시황시절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시킨 빠와를 모아서 흉노족까지 멸망시키려고 했다. 법가사상에 힘있어 싸우기 딱 좋은 국가가 된 진나라이니 만큼 성과는 있었다. 하지만 결국 흉노는 멸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흉노와의 전쟁에 국력을 쏟은 진나라만 쇠약해져 결국 초나라한테 망했다.
한편 또다른 내임드 유목민족이었던 동호까지 관광태우며 철치부심 하던 흉노는, 진시황을 관광태운, 항우를 관광태운, 유방을 관광태워 한나라를 동생의 나라로 삼고, 엄청난 돈을 삥뜯었으며, 유방의 불알친구이자, 한의 개국공신인 노관은 자신이 왕으로 있던 연나라를 이끌고 흉노에 항복해버렸다. 중국민족이 나름대로 힘을 기른 진과, 한 시절이 이러할진데 춘추전국시대나, 주나라 시대는 말할 것도 없다. 군사적으로 중국의 농경민족은 북방의 유목민족에게 열새였다.
애초에 진나라도 반쯤은 유목민족 이었고 (...)
하지만 이 강대하던 흉노는 한무제 시대때 본진까지 털려버렸다. 더불어 흉노의 동맹국이었던 조선 역시 이시대에 한무제에게 멸망당했다. 다만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이니 만큼 얻은 영토의 통치권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 한편 전쟁하는데 쓴 물자와 인명은 어마어마한 수준 이었으니, 마치 루이14세 반짝 하고 좆망 태크를 타는 부르봉왕조처럼, 한나라는 점점 좆망태크를 타기 시작했고, 결국 한번 망한뒤에 광무제 유수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
거기에 한무제가 고자로 만든 인간이 다름아닌 중국 역사계의 전설 사마천 이었으니, 한무제는 대충 진시황하고 비슷한 급으로 역사에서 까인다.
하지만 그가 중국을 진정한 의미의 패권국으로 만들었고, 중국인이 중국이란 나라에 자부심을 가지도록 만들어 놨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백성들은 죽을 맛이었으니, 유교에서 말하는 성군과는 거리가 매우 먼 인물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세종대왕도 한무제를 깐 바 있다.


3. 마오쩌둥 이전까지 중국문화의 소울이었던 유학을 장려했다.

본디 유학의 출발은 킹왕짱 태평성대였던 주나라 회복이었지만, 그건 춘추전국시대 아직 주나라가 나라꼴 갖추었을 때 이야기고, 전국시대 쯤 되면 이미 그건 망상이란 것 정도는 유학자들도 알았다. 물론 그런 정신박힌 유학자만 있지는 않았을 테지만, 뭐 어딜가나 꼴통 병신은 있으니 그건 넘어가자. 암튼간에 맹자시대 이후의 유학은 이미 시망한 주나라 따위 어찌되도 상관없으니, 누가 좀 나서서 이 혼돈의카오스를 끝내줘! 하는 식으로 가고 있었다. 뭐 그 혼돈의 카오스는 진시황이 끝내긴 했지만, 아시다시피 진시황은 유학은 좆나 싫어했고, 좆나 박해했다. 그 유명한 분서갱유 크리~.
유학자는 땅에 묻었고, 유학서는 불살랐다. 그게 과장됬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진나라가 유학을 박해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후 진나라를 멸망시킨, 초나라를 멸망시킨, 한나라는 유교를 나라의 기반 사상으로 정했고, 요 기반사상은 후일, 진시황을 존경해요! 라고 대놓고 커밍아웃한 어떤 꼴통 참새 학살자가, 진시황과 비스무리한 짓(문화대혁명)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그짓 하고 난 다음에는? 오히려 중국보다 한국이 대놓고 유교지상주의 나라다.


뭐 ... 별로 재미도 없는 이야기이니 줄이면.

1. 사실상 저때부터 중국시작.
2. 좆나쌘 킹왕짱 강대국.
3. 중국인의 소울이었던 유학장려의 시작.

쯤 되겠다.


하지만 열흘붉은 꽃이없고, 100년젊은 사람이 없는법이다. 광무제라는 유씨사상 최강 먼치킨의 힘으로 한번의 몰락을 피한 한나라 였지만, 광무제가 먼치킨이라고 해서 그 핏줄까지 먼치킨 이라는 법은 없다. 당장에 광무제의 멀디 먼 친척인 유비만 하더라도 본인의 능력은 상당했지만, 그 자식놈은 호구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호구계의 레전드가 아니였는가? 후한 몰락의 원인은 외척의 발호였다. 집에서 꼬꼬마 텔레토비나 보면 딱 좋은 녀석들을 만인지상 자리에 앉혀 놓으니, 정치가 제대로 돌아갈 턱이 없다. 아빠는 이미 하늘나라에 간지 오래이니, 결국에는 엄마가 실권을 잡게 되는데, 그시대의 여성교육이란 뻔하다. 여자는 순종해야 한다, 여자는 어질어야 한다, 같은 개 풀 뜯어먹는 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여성교육을 받아온 황후들은 남편이 죽고, 지 아들내미가 황제에 오른 뒤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아버지나 오빠나 기타 일가 친척에게 HELP를 요청한다.
그러면 오빠나, 아버지는 그 HELP를 받아들이고, 정치를 똑바로 하냐 하면, 그럴 리가 없다. 황제의 외할아버지, 혹은 황제의 외삼촌 이라는 막강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그들은, 마치 물만난 고기와 같이 조정을 어퍼락 뒤퍼락 주무르며, 정치권의 일인자로 발돋움 한다. 조선말의 풍양조씨가 그러했으며, 안동김씨가 그랬다. 사실 꼭 황제의 외삼촌이나, 외할아버지가 아니여도 상관없다. 그냥 황제가 자기 여동생이나 딸을 무지하게 총애해서 비록아이는 없지만, 황후자리에 앉혀 놓기만 해놓으면 얼마든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후한 말의 간신 양기가 그러했다.
양기의 여동생 양날은 본래 황제의 첩중 하나였다. 얼굴 하나는 그런대로 예뻣던 덕에 황후까지 올라갈 수 있었지만,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고, 결국 그렇게 황제는 죽었다. 이때 양기와 하등 관계가 없는 황제가 제위에 오른다면 양기는 대번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서, 사약이나 원샷하고 죽어야 하겠지만, 그때의 양기는 이미 다음 황제 정도는 그럭저럭 바꿀 정도의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황제 버금가는 권세를 가진 양기가, 제대로된 정치인 이었다면 한나라가 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양기의 취미는 음주, 탄기(알까기). 격오(오목), 축국(축구) 등이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놀기 좋아하는 녀석이다. 말을 더듬는 식으로 좀 심약한 편이기는 했지만, 잔계산에 능했다고 사서에 대놓고 나온다. 한마디로 말해서 어버버 하면서 다 해처먹는 그런 분 이셨다.양기의 아내인 손수는 당대의 패션리더였는데, 당대 시대상으로 볼 때 높으신 분이 패션리더면 좀 답이 없어진다. 당장에 조선말의 황후였던 민비나, 청말의 섭정황후였던 서태후의 어마어마한 사치를 생각해보다. 더욱이 당시는 한나라시대. 민비나, 서태후가 사치사치 거리고 있을 때와 천년 이상의 갭이 벌어진 시대다. 그런 시대에 금가락지나, 옥가락지 같은 물건을 높으신 분의 마눌님이 수집하는데 혈안 이었으니 나라 꼴이 제대로 돌아가면 그게 이상하다.
뭐 그래도 순기능도 있긴 하다.
손수는 당대의 패션리더이자, 중국 패션계의 전설.
양기와 손수의 시대동안 손수의 덕으로 중국의 화장문화는 엄청 발전했다고 한다.
다음은 손수가 정립한 화장의정석(?) 인데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상급의 기술들이다.


1. 수미(愁眉): 근심에 잠긴 것처럼 보이게 위해 눈썹을 가늘게 그리는 화장법

2. 제장(啼粧): 눈 밑을 하얗게 칠해 울고 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화장법

3. 타마계(墯馬髻): 머리를 살짝 기울게 하여 여자의 몸가짐이 다소 흐트러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

4. 절요보(切要步): 허리를 꺾고 흔들면서 걷는 방법

5. 우치소(齲歯笑): 이가 아픈 것처럼 얼굴을 살짝 찡그리는 방법 




더욱이 손수는 계산은 빠르지만, 성격은 심약했던 남편과는 다르게 성격 역시 불같았다. 따라서 여성하위시대인 한나라시대 나름대로 입김이 쌧다. 그러다 보니 양기와 손수는 부부인데도 서로가 집 한체씩을 가지고 있었고, 양기가 집을 확장공사하면, 손수 역시 집을 확장공사하는 등의 쓸대없는 경쟁의식에 부부가 불타올랐다. 또한 양기와 손수는 일가친척들을 죄다 조정의 벼슬에 진출 실켰고, 조정은 양씨와 손씨가 판을 쳤다. 본래 이런식의 신하들은 황제가 죽음과 동시에 권력을 잃고,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표준이기는 하지만, 양기의 여동생의 남편 되시는 순제가 죽을때 이미 양기는 너무나도 큰 존재였다.
새로운 황제 정도는 자기 힘으로 정할 수 있을 정도로.
양기는 황제가 죽자 2 짜리 꼬맹이를 황제에 앉혔다. 이는 그 2 짜리 꼬맹이가 전대 황제인 순제의 외아들 이란 명분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한 이유는 나이가 어려야 양기가 어퍼락쥐퍼락 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꼬꼬마 텔레토피 황제는 3살에 서거하셨다. 영아사망률이 워낙에 높은 시대다.
3살짜리 황제가 죽은뒤, 양기는 이번에는 황족중에 8살짜리. 오늘날로 치면 초등학교 1학년 짜리를 대려다가 황제 자리에 앉혔다. 그런 꼬맹이를 황제에 앉힌 이유는 역시나 지가 다 해먹기 위함이다. 하지만 초등학교1학년 황제 질제는, 초등학교 1학년 치고는 똑똑한 편이었고, 양기와 손수가 어떤 막장짓을 저지르는지 그럭저럭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양기를 보자마자 대뜸 한마디 날렸다.



"너님이 날치기 대장군 인가요?"



어린아이답게 아무것도 모르는 꼬꼬마인줄 알고, 질제를 황제 자리에 앉혔던 양기는 ‘날치기 대장군’ 이라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아무리 양기가 대장군 이라고는 하지만, 황제가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언재든지 재거할 수 있는 벼슬아치에 불과했다. 당장은 어린 황제가 손을 쓰지 않더라도 언재든지 손을 쓰면 그는 모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양기는 어린황제 질제의 간식에 독을타, 질제를 암살했다. 서거당시 질제의 나이 9살. 초등학교 1학년에 황제에 즉위해서, 초등학교 2학년에 암살당한 병신같은 삶이었다. 어린나이에 걸맞지 않게 똑똑했지만, 어린아이 답게 신중하지 못했다. 그딴걸 말로 꺼내면 어쩌란건지 원~.
한편 좆나 패기만 넘치시던 초딩황제 환제가 죽자, 이재 그만큼 어린 유력황손은 남지 않았는지 양기와 손수는 차선책으로 15살짜리. 즉 중학교 2학년 짜리를 황제에 앉혔다. 중학교2학년. 좋을 때다. 전 세계를 손에 넣을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당당하게 하는, 어둠의 다크에서 죽음의 데스가 느껴지는 혼돈의 카오스의 시기. 그런 시기에 진짜로 지존의 자리에 올랐다. 새로 즉위한 황제 환제는, 전 황제인 초딩황제 질제 이상으로 패기만만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전임자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최측근이였던 조등과 함께 철호의 찬스를 엿보기로 했다.

조등. 그는 환관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만한 집안 출신인건 아니다. 그의 선조 대시는 조참은 한나라의 개국공신중 한명으로, 중국 역사상 최고의 승상이라는 소하의 후임 되시는 나름 래전드다.[각주:1]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직업은 환관. 즉 고자다. 환관이 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첫 번째로는 죄인이 궁형을 받는 경우고, 두 번째로는 환관의 권력이 탐나서 스스로 고자가 되는 것이다. 조등은 명문가인 조씨의 후예였지만, 집안의 중추와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갈수 있는 한계가 명확한 상황. 이 상황해서 그는 더욱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인생을 거는 모험을 했다.
그 모험은 바로 고자되기.
모험맞다.
환관시술을 받다가 죽는 사람도 상당했던 고대의 시대. 그는 권력이라는 사탕을 얻기위해 그 모험을 했고, 결국 승리자가 되었다. 뭐 그덕에 평생 색스를 못하는 몸이 되기는 했지만, 그는 권력의 중추에 올 수 있었고, 그가 지지하던 황제 후보였던 환제가 황제가 되기에 이른다. 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측근. 그야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 하지만 그 자리를 느끼기에는 양기와 손수 부부라는 장애물이 너무나도 확고하게 버텼다. 하지만 애초에 환제의 즉위 자체가, 양제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시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중학교 2학년 황제 환제는 그냥 순둥이인 척, 순둥순둥 살았고, 조등은 그 순둥이의 애완동물인 고자1호로 지냈다. 그렇게 그들이 숨을 죽이고, 기회를 맞보던 중 드디어 기회가 왔다.
그 기회는 양기와 손수가 스스로 재공했다.



양기 : 저기 있잖아. 솔까 우리가 명색이 외척인데 말이야, 지금 황제하고 우리하고 연줄이 좆도 없잖아. 이거 뭔가 장기적으로 문제가 좆나 많다고 생각해.
손수 : 나도 그생각 했어. 그래서 말이야 내 외삼촌의 부인의 전남편의 딸이 있는데 게가 한미모 하거든. 개를 후궁으로 만들고, 나중에 황후로 올리는 건 어때? 물론 전남편의 딸 이라는 신분은 병신같으니, 게네 엄마는 죽이고 말이야.



마눌님의 재안을 들은 양기는, 그 외삼촌의 마누라의 전남편의 딸. 이라는 여자아이를 보러 갔다. 근데 보러가니까 진짜로 비쥬얼이 꽤나 괜찮은게 아닌가. 이만하면 새 황제의 장난감이자, 황제와 일족의 연결선으로 좋을것이다. 라고 생각한 양기는 마눌님의 재안을 실행했다. 하지만 문재가 생겼으니, 입막음을 위해 죽이려 했던 외삼촌의 마누라가,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궁전으로 가 이 일을 다 꼰지른 것이다. 이 일을 듣고 빡친 환제는 이 일을 명분으로 하여 속전속결로 양기를 포위했다.
한편 다 틀렸다는걸 깨닳은 일세의 막장 부부. 양기와 손수는 자살했다. 이로인하여 한나라가 안정을 되찾았다면, 삼국지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환관의 도움으로 황권을 강화시킨 환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람은 믿을 수 없다. 하지만 고자는 믿을 수 있다.



그렇게 그는 대놓고 환관을 총애했다. 뭐 그 고자들은 환제 시대떄는 나름대로 밥값 했던것 같다. 양기이후 새로운 외척이 발돋움 하려고 하자 조등을 비록한 22명의 환관들은 그 새로운 외척세력을 밟아 놓았고, 그 상으로 후작자리와 함께 양자를 들여 가문을 꾸릴수 있는 권리를 하사받았다.
그렇게 그는 대놓고 환관을 총애했다. 뭐 그 고자들은 환제 시대떄는 나름대로 밥값 했던것 같다. 양기이후 새로운 외척이 발돋움 하려고 하자 조등을 비록한 22명의 환관들은 그 새로운 외척세력을 밟아 놓았고, 그 상으로 후작자리와 함께 양자를 들여 가문을 꾸릴수 있는 권리를 하사받았다. 한편 이 상을 받은 조등은 하후씨의 아이였던 조숭이라는 아이를 양자로 들었는데, 이 조숭의 아들이 바로 조조. 그가바로 위나라를 새운 시대의 영웅 조조 되시겠다. 조조의 가문은 이러한 배경을 가진 환관계의 전설 가문이었기 때문에 십상시의 삼촌이라고 나대고 다니는 지나가던 사람A 정도는 참!살! 할 수 있었던 거다. 레벨이 다르다.

한편 외척 양기에 반대하던 재야유학자 집단, 후일 청류파로 불리는 집단은 고자가 실권을 잡는다는 사실에 마음에 안들었던 고로, 그리고 환관세력이 제2의 외척이 될 가능성이 보이자 환관세력과 첨예한 대립을 새우게 되었는데 그 제야유학자 집단이 바로 청류파이다. 그리고 반대편인 환관은 자연스럽게 탁류파 라는 이름을 얻었다. 청류파는 탁류파 고자새끼들이 역적이라며, 대놓고 충돌할 기미를 보인다. 하지만 먼저 선수를 친 것은 환관세력이었고,환관세력은 청류파 주동자 200명을 감옥에 잡아 쳐넣는데 성공한다. 그리하여 청류판은 고향땅으로 내려가서 의병을 일으켜 환관과의 결전! 이라는 최후의 수까지도 생각했지만, 탁류파의 지도자인 조등은 이쯤에서 협상안을 재시한다.



조등 : 그냥 벼슬 깍는 선에서 끝낼태니 이쯤에서 화해하죠.
청류파 : 콜.




그렇게 조등은 싸움을 무탈하게 끝냈고, 그로인해 환관에 고자이지만, 수많은 선비들을 살린, 청류파 사이에서도 나름대로 존경받는 사람으로 남게된다. 더욱이 그가 입양한 아들인 조숭의 손자 조비가 훗날 위나라의 황제 자리에 오르면서, 그 역시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되니 조등 그야말로 중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환관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고자계의 전설이다. 더욱이 그는 무사히 정계를 은퇴해서 늙어 죽었으니, 정치거물로서는 이례적으로 별 탈없는 삶을 살다갔다. 고자라는 것만 빼면 말이다.


 



  1. 단 조등이 조참의 후예라는 것은 뻥 이라는 설도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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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조는 조등의 손자라는 권력만 믿고 깝친 건 아닙니다.
    지 능력이 탁월하다보니 뭐든 해낼 수 있다고 여긴 거죠.
    심지어 환관 장양을 죽이려고 혼자 쳐들어가기도..
    • 2012.11.26 15:53 신고 [Edit/Del]
      조사마의 능력이야 당연지사죠. 거의 모든 삼국지 게임에서 능력치 총합 1위를 마크하시죠. 하지만 만약 조사마의 집안이 잘나가는 집안이 아니였다면, 조사마는 유력환관을 족치는 일을 제대로 못했을 것입니다. 그정도 상황판단 능력은 있으시니까요. 죽거든요...
  2. 화장의 정석! 손수가 손수 보여주는 화장 필살기를 보고 싶어지네요.. 쿨럭.. ㅋㅋ
  3. 이히리히디히
    손나....손나.....
  4. ;;아앗... 마지막의 오나여 무슨 장면인가 싶어 무심코 검색했더니.;; 으음...;;;
  5. 미주랑
    ...결론은 뭐든지 장단점이 있는것이었군요(먼산)
  6. 좋은 정 artie la conception de ce site est très agréable et à cause de cela, l'interface de ce blog devient convivial. Mais il ya un problème qui est là n'est aucun article particulier ou une description sur le blog est fourn asdfwerwqrafd
  7. 어쩌면 중국은 너무 유화 정책을 취한게..
    나중에 앞길을 막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뭐.. 이도저도를 떠나.. 다민족 국가의 현실은 늘 위험이 상존하고 있고..
    근대화 된 지금도 그건 한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지 싶네요.
    • 2012.11.28 12:11 신고 [Edit/Del]
      근데 사실 그 큰 땅덩어리는 뭘 해도 갈등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라서. 만일 티벳문제하고 위구르 문제가 기적적으로 해결되면 동부와 서부의 빈부격차에 따른 갈등이나, 민주주의와 독재정치에 대한 갈등이 좀더 정면으로 나오겠긔요. 뭐 최소한 저것들은 한국에도 있는 구도라서 친근감(?) 은 느껴지겠네요.
  8. 유비는똥별이
    삼국지연의만 보면 중국이 왜 세계최강대국이 될 수 없고 영원히 다른 나라의 눈치밥이나 쳐먹고 사는 2등국가가 돼야만 하는지 너무나 잘 알 수가 있다.

    오직 유씨가 하면 뭐든지 다 잘했다고 박박 우기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리 업적을 세워도 병신 취급을 하는 그따위 썩어빠진 유씨 위주의 인종차별질을 해대니 중국은 후진국이자 약소국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솔까 한 이후 중국은 언제나 다른 나라의 밥이 되기만 했을 뿐이다.

    사마염이 진나라를 통일하자 그 후손들이 얼마나 병신들만 골라 태어났는지 천재인 사마의의 직계후손이라는 사실이 의심될 정도였다. 특히 멍청해서 자기가 써놓은 글도 못알아보는 사마충과 그보다 넘사벽으로 더 멍청해서 아예 거동 자체를 못하고 나이 30넘어서까지 똥오줌도 못가리는 중국 최악의 천치인 사마덕종에 에휴... 그래서 진이 망하니까 남북조시대가 됐고 이 시기에 삼국시대보다 더한 케챂파티가 벌어졌다. 결국 수양제가 천통을 하긴 했는데 이 병신같은 수나라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인 고구려의 밥이지. ㅋ 을지문덕 하나 때문에 아예 나라가 박살이 나버린게 수나라다. 게다가 그 직후 세워진 당나라도 한심하긴 매한가지라 십라똥구녕이나 후빨하다가 황소의 난으로 당나라가 망했지. 오죽했으면 최악의 오합지졸을 표현하는 말이 "당나라 군대"겠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이건 그냥 커피고 이 이후의 중국이 T.O.P.야. 이후 조운 자룡의 직계후손인 조광윤이 송나라를 세웠지만 오늘날의 몽골인 원나라에게 밥노릇을 아주 확실히 했다. 이당시 중궈놈들은 쿠빌라이의 쿠자만 들어도 공포이 지려서 바지에 오줌을 지릴 정도였다. 이후 어찌어찌해서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다. 명나라는 그나마 1~200년 정도는 제대로 나라를 다스렸다. 후한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나라를 다스린 첫 사례지. 근데 그것도 얼마 못가고 임진왜란이 발생해서 거기에 때려붓고 미친 주익균이 황제가 되면서 조정은 병신되고 그렇게 만주족인 청나라에게 잡혀먹혔다.

    거기에 이후 영국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결국 아편전쟁이 벌어지고 완전 박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다가 이후에 한반도를 놓고 청일전쟁을 벌였다가 또 박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하하하하하하~ 일제가 패망하자 공산주의에 물들어서 소련의 빵셔틀 노릇이나 하고 자빠졌다가 냉전이 붕괴되자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눈치밥이나 쳐자고 있는게 중국의 영원한 빵셔틀 현실일 뿐이다.

    만약 조조나 손견을 신으로 숭배하는 중국인이였으면 몽골마냥 사방으로 퍼져서 중국의 국토는 지금의 미주지역 전체를 합친 정도의 거대제국을 형성했을 것이다. 유비관우장비만 좋아라 하고 나머지를 죄 쓰레기취급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생각을 틀 안에 가두고 마는 꼬라지인 것이다.

    결국 유씨만 주인공이라는 폐쇄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 중국은 중화사상에 빠지게 되고 이 때문에 정복활동을 아예 하지 않아 결국 그렇게 큰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놈 저놈들의 속국인생만 계속 끝없이 영원히 반복할 뿐이다.

    결국 연의식 사고방식은 개척정신을 저해하기 때문에 영원히 꼴찌국가로 남을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산국지 최악의 무능아이자 최악의 악당은 다름아닌 유비 현덕 혼자밖에 없다. 동탁 중영조차도 유비 현덕에 비하면 아주 훌륭한 인격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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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보는 동인의 역사. 2 시작은 테즈카 오사무로 부터.거꾸로 보는 동인의 역사. 2 시작은 테즈카 오사무로 부터.

Posted at 2012.06.02 06:00 | Posted in 기획특집




사조격 되는 인물을 살펴보다 보면, 그 사조격 되는 인물. 무에 한없이 가까운 상태에서 유를 만들어 낸 그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습니다. 몰론 과거의 인물을 무조건 숭상하는 것은 위험한 행위입니다. 하지만 사조격 되는 인물들이 남김 업적을 단지 “옛사람” 이라는 이유로 지금 사람보다 못할 것이라고, 지레짐작 하고, 무시하는 것은 멍청한 일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신이 가는 길이 무엇이든 간에 당신은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만화. 그중에서도 일본만화라는 분야에서 사조격되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답은 뻔합니다. 테즈카 오사무 입니다. 철완아톰, 밀림의 왕 레오, 불새, 블랙잭 등의 주옥 같은 명작들을 남겼으며, 당시에는 원가 절감 정도로만 사용되던 리미티드 기법을 새로운 차원의 예술로 승화시키기도 했습니다. 테즈카 이후의 일본 만화가 중 테즈카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사실상 없고, 테즈카 이후의 일본 애니메이터 중에서도 테즈카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그는 미래의 트랜드를 예측했습니다. 후일 범람한 모에문화의 기원은 이미 테즈카의 만화 속에서 숨시고 있었습니다. 겉 보기에는 로리이지만 사실은 누님인 소녀 라던지, 남장여자 라던지, 동성애 라던지, 심지어 네코미미를 연상시키는 캐릭터 까지도 표현했다고 전해져 내려오니, 그야말로 시대를 뛰어넘은 만화의 신 이라는 칭호에 가장 알맞은 남자입니다. 테즈카와 함께 만화신으로 칭해지는 또다른 영웅 나가이 고 조차도 가장 존경하는 선배였던 ‘테즈카’ 가 죽었을 때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을 정도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사람.
테즈카 오사무는 그런 사람이었다.




테즈카의 위대함은 이정도로 끝이 아닙니다. 테즈카는, 자신의 평생을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발전에만 바친 그 위대한 남자는 심지어 동인지 업계의 초안을 닦아놓았습니다. 몰론 그거 없었더라도 동인지 업계는 어떻게든 이루어 졌겠지만, 그러한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테즈카 오사무 라는 인물은 역시나 만화의 신이구나’ 하는 감탄을 가져와 줍니다.






일웹에서 일반적으로 보는 일본 동인지의 시작은 바로 테즈카가 자비를 털어 출간한 만화잡지 COM 입니다. COM 역시 프로가 만화를 연재하는 잡지이니 만큼 동인과는 약간 다르지 않나? 하는 반론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COM은 일반적인 만화잡지와는 달리 철저하게 상업성을 무시했습니다. COM의 창간 목적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수 있는 잡지.” “신인을 육성하는 만화 잡지.” 척 보기에도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표어들 입니다.


표어 만으로 이 잡지가 상업적인 잡지가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COM 이라는 잡지가 무려 성인만화 잡지로 창간했다는 점은 그러한 증거가 되기 충분할 것입니다. COM의 창간년월은 1966년 12월. 이제 막 일본만화, 일본애니라는 산업이 태동하기 시작할 무렵입니다. 그리고 그당시 일본 어른들의 만화에 대한 인식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다음과 같은 점을 들며, 테즈카의 철완아톰을 디스했습니다.



 

일본이 고속철도를 만들 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꿈을 말하는 바보만화
사진은 현존 최속의 고속철도 도카이도 신칸센




최고속으로 달리는 신칸샌과 박치기를 하는 것 만큼이나 멍청한 소리 입니다만, 당시의 어른들은 진지했습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어린아이나 보는 저급문화로 평가절하하는 이들의 머릿속에는 난 어른이다. 나는 나름 고풍스러운 놈이다. 라는 하늘을 찌를 뜻한 자존감 외에도, 우린 안될거야. 하는 마리아나 해구를 뚫을듯한 자괴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바보같은 시대에 테즈카는 성인용 만화잡지 COM을 만들었습니다. 상업적으로 접근하면 답이없는 잡지 입니다만, 테즈카는 '동료 만화가들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게 해주고 싶다.' 라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성인용 잡지를 출간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만화잡지 COM을 출간한 모태가 된 <<무시 프로상사>> 는 다름아닌 철완 아톰의 팬클럽.
즉 일본 최초의 만화동인 이었습니다. 만화신 테즈카가 그들과 함께 출간한 잡지가 바로 COM인 것입니다.
COM은 당시의 만화잡지로서는 혁명적이게도 동인그룹에서 만든 화보 까지도 출간했습니다.


 

아톰 팬클럽의 화보집이 실린 10호.
성인 잡지입니다. 성인잡지가 이래서야 팔릴리가 없습니다.




한편 COM은 그 외에 전 일본의 동인들에게 보다 힘을 실어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창간한지 반년도 안된 1967년 4월 시작했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이름은 ぐら・こん 한국어로 음역하면 ‘그라콘’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 그라콘이 무엇인가 하면은 쉽게 말해서 ‘일본 최초의 만화 공모전(독자투고 코너)’ 입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이면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라콘은 나름대로 전일본을 휘두를, 더 나아가서 전 세세계를 휘두를 야심찬 프로젝트를 계획을 의미하기도 하였는데 그 프로젝트는 바로 전 일본의 만화가, 독자, 비평가 들이 모두 모이는 축제 입니다.


한편 COM은 그 외에 전 일본의 동인들에게 보다 힘을 실어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창간한지 반년도 안된 1967년 4월 시작했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이름은 ぐら・こん 한국어로 음역하면 ‘그라콘’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 그라콘이 무엇인가 하면은 쉽게 말해서 ‘일본 최초의 만화 공모전(독자투고 코너)’ 입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이면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라콘은 나름대로 전일본을 휘두를, 더 나아가서 전 세세계를 휘두를 야심찬 프로젝트를 계획을 의미하기도 하였는데 그 프로젝트는 바로 전 일본의 만화가, 독자, 비평가 들이 모두 모이는 축제 입니다. 오늘날의 우리가 코믹마켓 이라고 그것의 원형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만화잡지 COM은 전 일본의 동인계를 정리하는 가십거리 기사를 쓰고는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계획중인 그라콘 축제를 위한 포석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라콘축제는 결코 열리지 못했습니다. 찰스 베비지가 해석기관을 구상만 하고 만들지는 못한 것처럼, 그라콘 역시 구상은 있었지만, 그 꽃이 피지는 못했습니다. 시간과 예산이 부족했습니다. 독자투고코너 그라콘은 1971년 COM지 휴재와 함께 망했고, COM지 조차도 1973년에 아주 망해버렸습니다. 그리고 COM가 성인애니메이션의 실패라는 연타를 맞은 만화신 테즈카는 빈털털이가 되어 버렸지요.



그렇게 그라콘은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이 그라콘은 일본의 동인사의 기원이라 평할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사건입니다. 그라콘을 잊겠다는 취지로 수많은 활동이 있었고, 마침내 1975년 일본 최초로 코믹마켓이 발족 하였으니 말이죠. 만일 실패할것이 뻔하다는 이유로 테즈카 오사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일본 동인문화는 없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설령 날다가 부딛히고, 상처입고, 팔 다리가 찢기고, 떨어져 나갈지라도 그 떨어진 땅에서 눈동자만은 푸르른 창천을 쳐다보는 그것이야 말로 인생이 아닐까요~. 전 그렇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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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패를 두려워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지요 ㅋㅋㅋ
    그런 면에서 보면 동인지는 참 위대하게 느껴집니다. ㅋㅋㅋㅋ
  2. 하지만 대다수의 동인지가 ㅎㅇㅎㅇ으로 일관하는 지금을 오사무옹이 본다면... ;;
    뭐, 에바의 리테이크 시리즈는 좋아하셨겠지만요.
    • 2012.06.02 15:05 신고 [Edit/Del]
      오사무웅은 성인만화에도 관심이 많으신걸로 알아요. 이것 역시 하나의 가능성이죠. 몰론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통일된 생태계 따위는 오래가지 못하지만요.
  3. 미주랑
    ..........우와 저런일까지 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었네요...
    • 2012.06.02 15:05 신고 [Edit/Del]
      ㅇㅇ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정보조사 하닥 새삼스럽게 떠올랐어요.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분은, 저분의 리미티드 기법 때문에 애니메이터들 월급이 박봉이 됬다고도 하지만, 저분은 노조하고 주주하고 짱뜰때... 노조 편에 서신 분이에요. (자기가 사장이란건 잊어먹고 노조 구성을 했다나) 사차원 입죠
  4. ..아아 좋구나~~!!ㅋㅋ
    어느 것이든 시작은 흥미진진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되면 워 다시 개혁하면 되는 거죠.,^^
    (그 시작은 동인지로부터.., 야~~!!)
  5. 지나가던 비로그인
    죄송한데요 그 신칸센 발언 출처가 어디인가요?
    예전에 엔하위키 '데즈카 오사무'항목에서 그 이야기 봐서 그 내용을 논쟁(?)에서 꺼냈다가 출처도 못대고 깨갱...한적이 있어서... 정확한 출처 아시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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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보는 동인지의 역사. 1. 동인은 이미 오타쿠 문화의 중심!거꾸로 보는 동인지의 역사. 1. 동인은 이미 오타쿠 문화의 중심!

Posted at 2012.05.27 06:00 | Posted in 기획특집




저에게는 그리고, 저와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덕후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분들에게는 매우 슬픈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그 소식은 바로 일본의 애니메이션 업계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아래 그래프를 참조해 주세요. 대략 2006년 쯤에 정점을 찍은 뒤로 애니메이션 산업은 점점 축소되고 있습니다. 뭐 일본경제 자체가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을 찍고 있는 상황이니, 아직까지 일본 내수에 상당량을 의존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산업 역시 어려울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제작분수 뿐만이 아니라 산업의 금전적인 규모, 타이틀 수, 비디오 매출 등 대부분의 통계가 2000년 쯔음에 에반게리온과 함께 태동했다가 2006년 쯔음에 하루히와 함께 절정을 찍고, 점점 내리막을 걷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오타쿠 문화의 미래는 굉장히 암울하다 할 수 있으니, 덕도를 걷는 한명의 한량으로서 가히 통곡할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밥맛 떨어지는 이야기나 하기 위해서 이 연재물을 계획한 것이 아닙니다. 아래 통계도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본산인 애니메이션업계의 규모는 2010년을 이후로 가파르게 추락한 반면에 동인계의 규모는 되려 2006년을 규모로 가파르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 내의 오타쿠 문화가 기업의 손에서 점점 벗어나는 반면 동인의 손에 보다 많은 지분이 들어오는 다극적 체제로 전환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직접 찾아가서 동인지나 동인게임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트나, 소셜 등을 통해서 공유하는 문화가 활발해질 것입니다. 여튼간에 동인문화는 발전합니다. 대세는 동인입니다. 구역질 나서 못봐줄 일상물이 아닌 진짜로 덴져러스 하고! 판타스틱한 혁명을 만끽해줄 곳은 바로 동인이란 말이닷!


동인은 더 이상 변방이 아닙니다. 2000년 이후, 이쪽 업계에서의 의미있는 일들은 전부 동인에서 일어났습니다. 프로계에서 케이온이나 럭키스타 만들고 그렇게 케이온이나 럭키스타의 분위기 처럼 애니메이션 업계가 소리 없이 몰락하고 있을 쩍에 (케이온이나 럭키스타 팬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꾸벅) 동인 계에서는 타입문과, 동방 프로젝트, 쓰르라미가 나왔습니다. 또한 사실상 오덕의 여신위를 몇 년째 누리고 게신 하츠네 미쿠의 경우에도 시작은 분명 상업 이었지만, 사실상 동인계의 일원입니다.


동인은 프로와는 다릅니다.
동인은 돈을 노리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몰론 동인 파락호라고 불리는 동인의 분위기를 망치는 돈돈돈돈돈 하는 작자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기본적으로 동인은 프로에 비해서 돈을 잘 밝히지 않습니다. 당장에 코믹마켓에서 도우미 하는 사람들만 하더라도 그저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좋아서.' 무보수 노동을 하는 것일 뿐,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는 않습니다. 도우미들이 그러한데 만화를 직접 내는 이들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들은 순수합니다. 몰론 지나친 과대평과나 미화는 금물 입니다만, 최소한 판매량 안나오면 짤리는 프로보다는 순수하겠죠 뭐.


그리고 동인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


만화
소설
게임
음악[각주:1]


사실 동인이란게 별게 아니죠. 그져 아마추어가 꼭 돈이 안되더라도, 인터넷에 자신의 작품을 올리면 그게 동인인 겁니다. 그러다가네이버 웹툰이나, 다음웹툰 같은데 스카웃 당하는 식으로 프로로 가는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도 나름대로 동인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으며 퇴마록 같은 경우에는 인터넷 연제에서 시작하여 출판이 된 끝에 1천만부가 팔리는 대기록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진짜로 다양한 시도들이 동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본체가 그저 모에뿐인 작품이 대다수인것과는 대조적이다.
빙과 따위가 기대순위에서, 액셀월드와 페제로를 넘는거 보면 현 애니계 본체는 희망이 없을것 같기도 하다.
마치 한국의 통진당처럼.


따라서 본인은 이 시점에서 일본의 동인문화. 한국의 동인문화. 등을 유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바. 동인이라는 녀석들의 역사를 지극히 오타쿠적인 관점으로 거꾸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일본의 코믹마켓의 역사를 살펴보다가 한국의 그것도 그럭저럭 살펴보고, 4화나 5화 쯤에서는 고대시절의 동인지! 같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글쓴이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게 하는 글을 쓸 생각입니다. 몰론 제 정신상태는 지극히 … … … 비정상 입니다. 미쳤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미치고 싶고, 더 미칠 생각이니 의심하지 말아 주십시오. 미친거 맞아요~.




못해도 이정도로는 미치고 싶다.
테란의 황제에게 영광을!
  1. 인디음악과의 차이점은 지가 동인이라 하면 동인. 인디라고 하면 인디. 라고 보는게 좋을거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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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하하하...오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ㅋ
    동인지 작가로서 성공하면 애니메이션 회사에도 취직가능하고...참 ㅎㅎ
  2. 일본에서는 동호회가 발달했지요. 학교에서의 부활동도 마찬가지고요. 어떻게 보면 동인활동이 사회인의 부활동 쯤 되는 듯 싶습니다. 앞으로 일본 동인계에서 명작을 기대해봐야겠네요^^
  3. 빙과, 빙과..
    그저 사토 사토미가 모에할 뿐이라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오래간만에 항변을 해보기도 하고...
    하지만 이번시즌 최고는 우주형제!!!!!!!
  4. 미주랑
    ...한국엔 일본 만큼 2차 창작이 뜸한것 같습니다. 지금은 덜하지만 3년 전에 거센 바람 처럼 불어온 UCC열풍이 생각납니다...하지만 하악하악하고 모에모에한 동인지는 안나왔죠. 매우 안타깝습니다.
    • 2012.05.28 16:16 신고 [Edit/Del]
      찿으면 있습니다. 라는 진리를 조심스럽게 말해 봅니다만, 사실 찿는다고 해소되는 갈증도 아니고, 찿으면 더 많은 것을 찿고 싶어지죠.
  5. 가끔 2차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한국 컨텐츠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게 해당 컨텐츠를 활성화시키는데 얼마나 지대한 공을 세우는지는 일본의 사례에서 알 수 있죠- 일본의 시장이 얼마나 큰지 행사장을 가보고 느꼈습니다 -ㅅ -....;;;;;
  6. ㅎㅎ 그러게요. 근데 전.. 동인지 하면 성인물이 자꾸 생각나서 헤헤헤
  7. 새아빠아기
    동인문화... 아주 좋은 현상입니다. 현대의 기업들(자본즐)은 특정 비율의 이윤이 안나오면, 절대로 투자하지 않습니다. 전세계 어느기업도 순수하게 사회문화에 기여하고자 돈안씁니다. 이젠 그건 과거의 낭만일 뿐입니다. 한국의 재벌 2세들의 아버지가 삼성가와 현대가를 일으킬때 떡볶기 순대 크림빵 팔라고 일군 재벌이 아니죠....

    자본의 결말은 극히 탐욕적입니다

    그런차원에서 바라보는 동인문화는 일반인들에게 좀더 문화적 혜택을 제공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만..... 결국 자본앞에는 무릎꿇을수 밖에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역설적으로 한국의 동인 문화가 못크는건 시장이 조성이 안됐단 말이고, 시장은 자본과의 결탁없이는 불가능하지요..... 결국 동인문화는 자본에
    의해 소멸될겁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는 순환을 반복하겠지요
    • 2012.06.03 02:09 신고 [Edit/Del]
      쩝. 글쌔요. 이병철 정주영이도 돈만 됬으면 떡볶이 순대 크림빵 팔았습니다. 현대는 일단 그렇다 치지만, 삼성의 경우에는 막말로 사카린 밀수로 일군 기업인데... ... 쩝. 확실히 자본이 개입되면 애가 맛이 가버리는 것은 저도 동의합니다. ㅜㅜ
  8. 놀이라는 것은 그래서 위대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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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역사. 7 - 안드로이드 혁명! <완>구글의 역사. 7 - 안드로이드 혁명! <완>

Posted at 2012.04.07 06:30 | Posted in 기획특집


안드로이드는 오늘날 가장 많이 팔리는 스마트폰 운영체제 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의 대명사를 애플의 ‘아이폰’ 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단순 판매량만 따진다면 안드로이드의 판매량은 아이폰의 2배가 넘는다. 다만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통해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통해 버는 돈은 그저 ‘스마트폰 확산을 통해서 얻어지는 광고수익 + 검색수익’ 정도다. 아이폰이 확산이 되던, 안드로이드가 확산이 되던 구글로서는 다를 것이 없다. 실재로 안드로이드폰의 점유율이 아이폰의 두배인 지금에 와서도 구글은 오히려 아이폰에 내거는 광고로 더 많은 돈을 번다.

구글은 앱 판매를 통한 수익을 포기했다.

애플의 경우 ‘앱 스토어’ 에서 생기는 수익의 70%를 개발자가 가져가고, 30%를 애플이 가져간다. 안드로이드의 경우에는 70%를 개발자가 가져가는 것은 같지만, 30%를 구글이 가져가는 것이 아닌 이통사가 가져간다. 이런 이통사 위주의 구조는 안드로이드가 점유율을 확대하는대 일등공신 이었다. 애플의 '우리가 다 먹겠다.' 씩 태도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세계의 1위 통신업자들은 '우리는 돈 욕심 없다.' 라고 나오는 구글의 재의에 호감을 느꼈다.

그들 역시 아이폰이 두려웠던 것이다. 미국 최대의 통신사 였던 ‘버라이즌’ 은 이재 AT&T에 앞서 있다고 말하기 힘든 처지가 되었고, 많은 국가의 ‘아이폰’ 을 출시하지 않은 1위 통신사들 역시 비슷한 꼴이 되었다. 다 안드로이드가 강세를 넘어 초강세인 한국의 경우 여전히 SKT가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시다. 몰론 거기에는 KT와 LGT특유의 버벅거리는 무선 인터넷도 한 몫 했다.

안드로이드폰 이라는 대체제가 존재하고, 각국의 1위 통신사들이 한수 양보하고 아이폰과 계약한 지금에 와서도 그정도이다. 하물며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그들 통신사는 어땠을까? 그들 역시 아이폰이 무섭게 점유율을 느끼는데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피쳐폰의 시대가 저물어 간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는 감 좋은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플에게 숙이고 들어가기는 싫었다. 그리고 스티브잡스라는 인물의 괴퍅한 성격을 보면 숙이고 들어간다고 해서 무조건 받아줄지도 의문이었다 (…)

그 와중에 안드로이드가 등장했다. 그리고 계약조건도 미치도록 좋았다. 안 받아들일리가 없었다.





애플과의 라이벌 구도

안드로이드를 통해서 스마트폰 시장의 구도는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그 전까지의 스마트폰 시장의 구조는 애플의 독무대였다. 비록 점유율 면에서는 림에 조금 뒤졌지만, 그 이득은 림을 뛰어 넘었다. 그리고 애플은 점유율 역시 매 분기마다 꾸준히 확대했다. 그대로라면 애플이 스마트폰 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독점 하는 것은 시간 문재였다. 많은 사람들이 애플의 경쟁상대로 예상했던 MS의 경우, 모바일 시장에서는 그저 삽을 푸고 있었을 뿐이다.

여담이지만 아직까지도 삽을 푸고 있다 (…)
뭐 하는 거냐 MS (…)

하지만 구글이 나옴으로 해서, 그 구도는 완벽하게 깨져 버렸다. 애플의 독주는 멈추었다. 고가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여전히 잘나가는 애플 이지만, 스마트폰 시장을 독과점 하려는 애플의 크고 아름다운 꿈은 깨져버렸다. 하지만 애플이 입은 피해는 MS나 림 그리고 노키아가 입은 피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안드로이드라는 대체제의 등장으로 MS의 윈도우폰 OS 와, 림의 블랙배리 OS, 그리고 노키아의 심비안 OS 는 존재 자체가 지워졌다. 그런 게 있었던 것 같기는 하는데 신경쓰는 사람은 없다. 몇몇 IT NERD 들만 빼고.

하지만 가장 화를 낸 것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였다.
그 이유는 스티브의 성격이 더러워서가 첫번째였다. (관련 문건을 접하면 접할수록 잡스사마의 성격은 폭풍이다.)
두번째 이유는 위에서 말한대로 독과점 계획이 작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앤디 루빈이 한때 애플에서 근무한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이 아저씨가 앤디루빈.
안드로이드의 파파다.


앤디루빈은 엔지니어 커리어를 애플에서 시작했다. 애플, 중소기업,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여러 기업을 정진하던 그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때려치고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함께 회사를 새웠다. 초창기의 스마트폰을 만들었던 데인저 라는 회사였다. 데인저의 CEO였던 그는 도대체 뭐가 맘에 안들었는지, 데인저까지 때려 치우고 다시 회사를 만들었다. 그 회사의 이름이 바로 안드로이드 였다.

안드로이드사에서 안드로이드os를 만든 그는 자신의 OS를 팔기 위해 이곳저곳을 정진하다가 마침내 구글에 OS를 팔았다. 그때가 2005년 7월 이었으니, 구글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스마트폰 OS를 만들 생각을 한 것이다. 아이폰이 탄생한 2007년 1월 9일에 앞서있다. 하지만 먼저 시장에 온 것은 애플이었고, 먼저 시장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도 애플이었으니 잡스는 안드로이드에 어마어마하게 격노했다.

거기에 앤디루빈이 애플의 직원 경력이 있으니, 애플에서 아이디어를 빼왔을 것이라는 생각 역시 있었다.

그리고 잡스는 그 유명한 "안드로이드를 조지기 위해서 열핵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 라는 말까지 했다.

뭐 레리페이지는 이러한 잡스의 격노가 쇼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말이다.
사석에서 그 둘은 친구였데나 뭐레나... 하지만 레리와 칭구칭구 하고 논게 쇼일 가능성도 없진 않다.
진실은 저 ~ 너머에.

하지만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의 라이벌 구도가 양사에게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었다. 소비자들이 광고를 거의 믿지 않는 시대다. 뉴스에 한번 나와 주는 것은, 광고에 10번 나와주는 것보다 효과가 있다. 그런데 두 스마트폰의 라이벌 구도가 생기면서 뉴스와 신문에 두 회사의 스마트폰이 자주 소개 되었다. 그리고 언재부터인지 사람들은 스마트폰은 현대인의 필수품이며!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은 원시인이다!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스마트폰의 보금율은 라이벌 구도를 타고, 확대해 나갔다.

어떤 사람들은 애플이 독점을 했어도 지금처럼 애플이 돈을 긁어모으지는 못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안드로이드가 없었다면 라이벌 구도를 통한 마케팅 효과는 없었을 것이며, 스마트폰의 보급률 역시 지금같지는 않았을 태니 말이다. 뭐 그렇게 뉴스를 통한 마케팅을 타고, 안드로이드호는 순향했다.



안드로이드의 파트너들.

안드로이드를 통해 재미를 본 회사로는 역시 대만의 HTC를 빼놓을 수 없다. HTC는 최초의 안드로이드폰 G1을 비롯해서 수많은 안드로이드폰을 팔아재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사이의 어딘가 정도의 규모였던 HTC는 안드로이드를 통해 명실상부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전까지 소니 에릭슨의 ODM 이나 하던 HTC는 이미 점유율과 수익 양쪽 면에서 소니 에릭슨을 안드로메다 넘어 알파 센터우리로 보내 버렸다.

하지만 규모의 경제 시대에서 HTC보다 몇배나 덩치가 큰 갑이 친이 안드로이드 시장으로 납시자, HTC는 안드로이이드의 주도권을 빼앗겨 버린다. 그 갑이 누구인가 하면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이미 안드로이드 업계에 들어올 때부터 너무나도 덩치큰 갑 이었다. 만약 노키아가 자체 소프트웨어인 심비안을 포기하고, 안드로이드에 붙었다면 삼성과 좋은 경쟁이 되었을 태지만 아시다시피 노키아는 고집피우다가 망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산업을 크게 하고 있기에 반도체 공급이 원할 했으며, 이는 보다 좋은 가성비를 내기 좋다, 단 소프트웨어 능력은 좀 후달리기에 실 가성비는 좀 후달릴지도 모르지만 뭐 소프트웨어건 뭐건 간에, 부품 성능이 아주 차이가 많이 나면 그딴거 없다.

그리고 그냥… 긴 설명하기 귀찮고…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히트치기 전부터 HTC+LG전자+소니에릭슨+ZTE+화웨이 한것보다 높았다. 그렇게 HTC는 북미시장을 뺀 모든 시장에서 삼성전자에게 안드로이드의 왕좌 자리를 내주게 된다. 그 증거로 HTC에서 만들던 구글의 레퍼런스 폰을 이재는 삼성에서 만든다.
 



하지만 사실 HTC는 행복한 거다. LG전자나 소니에릭슨 등은 아직까지도 안드로이드로 의미있는이득을 못보고 있다.
더욱이 삼성전자 1위, HTC2위의 안드로이드 세계가 계속해서 지속될 것 같지 않다는 점에서 그들의 미래는 더욱 어둡다.

뭐하나 확실한게 없는 것이 지금의 IT 업계다. 하지만 그중 그나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것은 화웨이와 ZTE 두 기업의 안드로이드폰 판매량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할 것이라는 거다. 당장에 중국시장만 하더라도 세계 시장의 사분의 일. 결코 무시할게 못된다. 그리고 중국은 중국답게 중국다운 방법으로 자기내들 재품이 자국시장을 평정하도록 도울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도움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가격 면에서 중국 스마트폰은 월등한 경쟁력을 가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실 HTC는 행복한 거다. LG전자나 소니에릭슨 등은 아직까지도 안드로이드로 의미있는 이득을 못보고 있다.
더욱이 삼성전자 1위, HTC2위의 안드로이드 세계가 계속해서 지속될 것 같지 않다는 점에서 그들의 미래는 더욱 어둡다.

뭐하나 확실한게 없는 것이 지금의 IT 업계다. 하지만 그중 그나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것은 화웨이와 ZTE 두 기업의 안드로이드폰 판매량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할 것이라는 거다. 당장에 중국시장만 하더라도 세계 시장의 사분의 일. 결코 무시할게 못된다. 그리고 중국은 중국답게 중국다운 방법으로 자기내들 제품이 자국시장을 평정하도록 도울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도움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가격 면에서 중국 스마트폰은 월등한 경쟁력을 가졌다. 당장에 생산량만 늘리면, 중국 시장에서 100% 팔린다. 그렇게 번 돈으로 공장을 짓고, 그렇게 지은 공장으로 다시 생산을 하고, 식으로 반복하다 보면 저 두 짱깨 회사의 점유율은 무지 불어나 있을거다. 하지만 역시나 중국산 이라는 -백만불 짜리 프리미엄은 세계시장, 특히 고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이들의 활약을 힘들게 한다.

결국 돈이 벌리는 것은 고가스마트폰인데 말이다.
과연 이들과 삼성전자의 대결이 어찌될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안드로이드의 시대는 앞으로도 계속.

안드로이드는 리눅스 기반의 OS 이다.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안드로이드 OS가 프리웨어인 리눅스 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때 리눅스의 창시자 리누스 토발츠가 '세계정복을 할거에여!' 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안드로이드의 등장으로 리누스 토발츠의 세계정복발언 무시하기가 힘들어졌다. 세계 IT의 중심이 점점 컴퓨터 중심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옮겨가는 가운데, 리눅스 기반 운영체제가 윈도우의 점유율을 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아니 당장에 스마트폰 보급률이 핸드폰 만큼 되면 윈도우 점유율 넘는다.
몰론 안드로이드가 핸드폰 점유율 50% 정도는 해줘야 겠지만 지금 하는 꼴 봐서는 그정도는 나오고도 남는다. 자자! 세계를 정복하라! 리눅스여! 몰론 본인은 리눅스 쓸 줄 모른다. 뭐 안드로이드 폰을 쥐어주면 그걸 쓰기는 하겠지. 그리고 내가 지금 글을 싸지르고 있는 티스토리도 서버는 리눅스일 가능성이 높으니, 뭐 어찌저찌 간접적으로는 쓰고 있긴 하다.

어쨋건 간에...

안드로이드는 구글의 사악해지지 말자 정신에 너무나도 알맞은 물건이다. 안드로이드를 통해서 구글은 별 이득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덕분에 소비자는 몇배나 싼 가격으로 스마트폰을 쓸 수 있다. 이건 애플빠인 나 조차도 인정하는 점이다. 누군가는 안드로이드의 코팅이 후지니 어쩌니.. 하면서 안드로이드를 디스하기도 하지만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이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

윈도우폰?

일단은 바다나 이기고 오라. 아 올해 초 점유율에서는 이겼을지도 모르겠다. 헐값으로 뿌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새일을 끝내자마자 다시금 판매량이 뚝 떨어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MS에게 입김을 이것저것 받는, 더군다나 판매량이 그리 많지도 않은 윈도우폰이 좋을리가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금 당장은 윈도우폰 떄문에 적자를 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나아질 것 같지는 않는다.


바다?

어떤 사람들은 안드로이드의 코팅은 불안전하며, 바다가 그 대체제라고 주장하기도 하더라...
그런데 바다의 코팅이 안드로이드보다 좋을까? …



힘들다. 애초에 바다는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한 보험에 가깝다. 굉장한 악제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삼성은 '바다' 를 만드는데 그리 많은 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IOS?

애플이 머리에 총 맞지 않은 이상 IOS를 공짜로 뿌릴일 없다. 머리에 해드샷이라도 맞지 않는이상 말이다. 아마 애플은 주구장창 수익최대화식 구조로 나갈 것이다. 그리고 애플이 그렇게 나가는 한 점유율은 안드로이드의 것이다. 안드로이드를 때려잡자던 '스티브잡스' 도 '저가 아이폰' 을 생산해서 진짜로 때려잡으려는 짓은 안했다. 근데 팀쿡이 그럴까? 자기 살 깎아가면서까지?

...

가능성 희박하다.

따라서 앞으로도 안드로이드의 시대는 계속 될 것이다.

후기 -

연재물은 블로그의 꽃 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역시나 힘듭니다. 그리고 그 내용물을 다시 읽기 겁납니다.. 흐규 ㅜㅜ
저작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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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생하셨어요~
    소설보다 더 재밌게 읽었습니다. ^^
    분명 안드로이드는 많이 쓰는데 애플보다 아래에 있는 듯한 느낌...
    이 묘한 느낌은 대체 뭔지 말입니다.
  2. 월터아이작슨이 잡스의 안드로이드에 대한 분노는 쇼가 아니라 진심이라고 했다는군요-

    음... HTC가 윈도폰을 만들 때만해도 '성장이 빠른데?'정도였는데 빠르게 안드로이드 폰을 내놓으면서 어느새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군요...;;;
    • 2012.04.07 11:48 신고 [Edit/Del]
      하지만 삼성이 선전하면서 점점 기울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 7%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ZTE+ 화웨이) 역시 무시할게 못되죠
  3. 미주랑
    ...연재물 쓰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모르는걸 많이 알게 되어서 기쁩니다...그런데 이 글을 읽고 드는 생각은 역시나 너도 살고 나도 살고 하면 둘다 이익본다는거군요. 구글이 애플처럼 욕심냈다면 애플과 같이 나란히 달리는건 상상도 안되었을지도 모르겠군요...그런면에서 보면 구글이 대인배인걸까요?
    • 2012.04.07 11:49 신고 [Edit/Del]
      뭐 사악하지 않은 기업입니다. 제가 애플빠이긴 하지만 도덕성 이란 측면에서는 구글이 훨씬 뛰어난 것이 사실이며, 거기에 이의 제기할 생각 없습니다.
  4. Starcandy
    이번 1분기 예상 전망도 여전히 바다가 윈도우폰에 앞서고 있습니다. 참고로 윈도우폰은 작년 1분기부터 계속 밀리고 있죠.
  5. 우후훗
    아, 안드로이드. 전 개발자 대학생이기에 너무나도 싫어하는 운영체제입니다. 만약 개발 환경을 바꿔주지 않으면 진짜 우리 모두 다 떠나버리고 텅빈 마켓만 남을 것 같아요.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아요. 진짜.
  6. 라얄디
    글이 재밌네요......전문가들의 딱딱한 문체가 아닌 디시풍의 문체가 있어서 끝까지 다봤습니다
    • 2012.04.12 12:05 신고 [Edit/Del]
      전문가들의 딱딱하고 짧은 문체는 원래 가독성이 좋으라고 그렇게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간략함만을 추구하다 보니 되려 가독성이 떨어지는 모순을 가지고 있지요.
  7. 7편 잘 읽었습니다. 이번 편의 마지막은, 문단 중복이 있네요.

    그리고 ㅔ와 ㅐ를 일부러 틀리시는 것은, 노이즈 마케팅이신지 궁금합니다. 이상하게 그 곳에 눈길이 오래 머무르게 되네요. 새로운 것 하나 이재야 알개 되었습니다.
  8. 5c
    재밌네요.. 저가형 아니폰 5c 가 발표되었는데 ..우려하시던일이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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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역사. 6 -구글의 다양한 시도들.구글의 역사. 6 -구글의 다양한 시도들.

Posted at 2012.04.01 06:49 | Posted in 기획특집

 구글은 어느새 검색시장의 절대적인 갑이 되었다. 몇몇 국수주의가 강한 나라 (중국 이라던지...) 에서는 여전히 뿌리를 못내리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구글은 검색점유율 7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5년 전부터 그러했다. 사실상 검색시장 이라는 시장을 혼자 먹고 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후니, 빙이니 하는 검색엔진이 없는건은 아니지만 그런 검색엔진이 사라지만 구글을 좋아하기는 커녕, 독점법의 철퇴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애플이 철수한 컴퓨터OS 시장에 홀로남은 MS처럼 말이다. 몰론 애플은 지금 이순간에도 맥시리즈로 어마어마한 이익을 보고 있기 때문에 컴퓨터 시장에서 철수할 것 같지는 않다. 하나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MS는 독과점 금지법의 난도질에 회사가 쪼개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70%의 점유율. 이것은 독과점 금지법의 날이 퍼렇게 서려있는, 현대의 자본주의에서 이룩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다. 구글이 검색 시장에서 더 이상 올라갈 곳은 없었다. 많은 나라의 사람들은 검색 이라는 말 대신에 '구글링' 이라는 단어를 쓴다. 많은 사람들의 뇌속에서 '검색엔진 = 구글' 이다. 더욱이 그런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라 세계인의 절반에 달하니 구글 이라는 기업이 검색엔진 시장에서 미끄러져, 1위 자리를 내주는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최소한 앞으로 10년 안에는 말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구글은 보다 새롭고 획기적인 검색 서비스를 계발하거나, 검색과 외에도 사용자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여러가지를 출시하고는 했다. 이는 구글 특유의 규칙인 '회사내 시간의 20%를 자유로이 사용하는 20% 법칙' 덕분이기도 했지만 구글 이라는 회사가 검색 분야에서는 여유만만 한것도 큰 이유였다. 국방력이 어느정도 있는 국가가 되어야 신무기 계발이니, 국방개혁2020이니 할 수 있는 것과도 일맥 상통한다. 만약에 한국에 탱크한대 없어봐라... 무슨 신무기니, 무기 국산하니 하겠는가? 티거라도 좋으니... 당장 탱크수입이나 할것이다.




하지만 검색시장에서 구글의 위용은, 밀리터리 계에서 천조제국군의 위용에 버금갔다. 저정도로 압도적인 위용을 갖추고 있으니, 탱크에 레이저포를 달아볼까? 전투용 로봇을 만들어서 쇼미더머니만 있으면 병력피해 없이 싸우는 전쟁 어때!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옳다. 자고로 한참 물 올라왔을때, 다음 먹거리를 생각해야 하는 법이다. 그거 게을리 하다가 망한 회사는 무지 많다.

아래는 구글이 한 이런저런 시도들이다. 가만히 보면 '저새끼들 진짜로 지구정복 이라도 할 생각이냐?!' 라고 생각하는 시도도 꽤 있다.


◆ 구글어스

구글어스는 구글이 재공하는 지도 서비스다. 2005년부터 배포가 된 이 서비스를 이용해서 당신은 전 지구 곳곳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사진을 전송하기 때문에 당신은 앉은자리에서 평양 시내의 풍경이나, 아프리카 어딘가의 사자가, 아프리카 어딘가의 톰슨가젤을 잡아먹는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혹자에 따르면 구글이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서 만든 프로그램 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혼자 독점하지 않고, 외부에 유출한 것을 보니 그럴 생각은 없는거 같다. 아니 그전에 인공위성을 소유한 국가쯤 되면 구글어스에서 주는 지리 정보 정보는 자체 조달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


인공위성을 소유하지 못하거나, 접근권한이 없는 단체에서는 결코 모르던 정보를 구글 어스를 통해 알수있다.
와!!! 신난다!!! 


이로인해서 소말리아의 해적들이나, 이탈리아의 마피아들, 중동 어딘가에 짱 박혀 있을 알카에다 까지도 고급 지리정보의 활용이 가능해 졌다. 뭐 소말리아 해적들이나 알카에다는 '구글 어스를 다룰 지능도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이탈리아 마피아들의 경우에는 화이트칼라 주제에 마피아짓이나 하고 있을 작자들도 꽤 있어 보이니, 구글어스를 이용해서 이탈리아 정규균을 정찰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 참고로 이탈리아 마피아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로니의 치세동안 정부에 선전포고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진압이 되었겠지만 애초에 진압 한두번 해가지고 범죄조직이란게 사라지는것도 아니고... 마피아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조직이고... 이탈리아 군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헤타레니...

여튼간에 구글어스는 만일 당신이 세계정복을 노리는 사람이라면, 하지만 그러한 드높은 꿈과는 다르게 돈이 별로 없다면 애용해야 할 물건이다. 또한 만약 당신의 꿈이 트레져헌터여도 구글어스는 애용해볼만 한다. 구글어스 가지고 이곳저곳을 살펴보면서 어딘가의 범죄직이 보물을 묻어놓는 모습이나 포착하도록 하자. 일확천금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단 화질면에서 좀 애로사항이 꽃핀다)



구글어스로 본 소말리아 어딘가의 군사기지


◆ 유튜브





구글이 초대형 인수합병으로 먹은 세계 제일의 동영상 서비스이다. 여담이지만 한국인은 동영상을 올리지 못한다. 그는 한국의 잰장맞을 본인확인 시스템 때문이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잘 찾아보면 어둠의 자료가 꽤 많다. 몰론 어둠의 자료를 본격적으로 찾고 싶으면 유튜브 보다는 토렌트를 쓰는 것이 수십배는 효율적이다.

하지만... 토렌트는 모바일에서 안되잖아...

◆ 구글 애드센스.


2003년. 그러니까 구글이 막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할 때쯤 만든 물건이다. 많은 사이트 운영자들및, 블로거들의 용돈벌이 수단이기도 하다. 본인 역시 예용하고 있으며,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구글 애드센스로 1달 라노벨 값 정도는 겨우겨우 벌어들이는 분들 있으실 것이다. 

구글 애드센스는 가장 보편적인 인터넷 광고이고, 아마추어가 접할 수 있는 인터넷 광고 중에서는 가장 수익률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한국 인터넷 환경에서는 큰 돈 기대하기 힘들다. 한국이란 나라가 머리통이 커질때로 커져서 광고 수익률이 상당히 안나오기 때문이다. 가령 디시는 구글 애드센스 광고 클릭율이 안나와서 한번 망했다.

현재 커뮤니티 사이트 대다수는 운영자가 직접 광고런칭이나, 구글 애드샌스 하기 보다는 다음이나 동아일보 같은 곳의 품에 안기는 전략을 쓴다. 루리웹 이라든지, MLB파크라던지... 광고 수익이 잘 나왔다면 계들이 그런 방법을 썻을까?

구글 애드센스는 이래뵈도 구글의 주요 수입원중 하나다. 내 애드샌스 광고 가지고도 구글은 10만원 정도 (...) 벌었을 것이다.


◆ 구글 애널리틱스.


구글이 재공하는 통계 서비스이다. 사이트나 블로그 등을 관리할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이것만 보고 있으면, 사이트나 블로그가 망한다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 아 그리고 구글애널리틱스에서 재공해주는 방문자수 통계 정보는 네이버나 티스토리에서 재공해주는 통계보다 적게 나온다. 참고로 구글에서 재공해주는 정보가 진실에 가깝다고 한다. 티스토리의 정보는 중복 방문자가 있으면 그것까지 계산한대나 뭐레나.


◆ 구글 바디 브라우저


인체대탐험이다. 지금은 표본 몇개를 탐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20년후 구글에서는 자기 몸을 스캔 뜬 뒤 자기 몸을 탐험하는 구글 바디 브라우저를 만들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병원 몇개 문닫는 소리가 들려온다 ...

◆ 구글 크롬.


구글에서 만든 웹 브라우저다. 본인이 찬양에 마지않는 녀석이다. 잡기능을 과감히 빼버리고, 속도를 중시한 것이 인상 깊으나 사실 안정성 면에서는 파이어폭스에 뒤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속도는 확실히 파이어폭스를 압도하니, 파이어폭스와 크롬중 무엇을 쓸지는 너님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도록 하자.

하지만 취향 막론하고 익스는 쓸게 못된다.


◆ 구글랩스


상기와 같은 구글의 여러가지 서비스 중 시험단계에 있는 서비스를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곳이다. 하지만 얼마전에 문 닫았다. 그 이후로 구글이 예전같이 않아! 를 외치는 목소리도 많다. 이 이야기는 좀더 나중에 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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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구글이 발명한 요상야릇한 프로그램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역시나 그중에서 가장 성공한 프로그램은...



이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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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글 어스는 처음 나왔을 때 개인정보 관련 문제가 참 많았죠.
    국가 정보 문제도 정말 많았고..


    그나저나 이 빌어먹을 구글 자식들
    애드센스 서비스만 하고 피드백이 없어...........-_-
    소비자가 봉이냐!!
  2. 구글이 확실히 위대하긴 하죠. 더구나 안드로이드를 만든 속도나 지금의 점유율을 보면 이것도 기적이죠. 과연 구글이 앞으로 어느 분야를 차세대 주력으로 삼게 될 지도 관심이 많습니다. ^^
    • 2012.04.01 11:54 신고 [Edit/Del]
      흠.. 자동운전을 주력분야로 삼는것도 생각해볼만 할 것입니다. 또한 의학분야 역시 ... 흠... 구글이라는 기업이 정보기업이기 떄문에 어느쪽으로 다각화를 하든간에 시너지는 있습니다.
  3. 미주랑
    ...역시 이런 쪽 지식이 많이 부족한지라 저게 뭔지는 모르겠군요.
  4. 안드로이드...ㅎㅎㅎ
  5. 비밀댓글입니다
  6. 릿찡님의 상상력인가요?

    아님.. 천재성인가요?
    같은 정보도 어쩜 이렇게 맛갈나게 전달하시는지..
    릿찡님의 이런 표현들이 절 즐겁게 하네요.

    구글 맹신내지는 찬양에 지친 저한텐 말이지요. ㅎㅎ
    (이것도 찬양글인가요? ㅎㅎ)
  7. 와 이제서야 다 봤어요! ㅎㅎ
    기다리기 지쳤어 ㅋ 한번에 읽기스킬을 시전하였는데 어째 또 기다려야하는..ㅎ
    어서주셔요
  8. BlackHound
    오 표현력도 대단하시고, 글도 야무지게 잘쓰시는듯;;
    근대 구글이 안드로이드 만들엇단건 첨 알았습니다 ㅎㄷ; <- 삼성에서 만든줄 ㅋㅋ.. 구글이 폰만드는것도 아니고 ㅋ;
    (..만드나요?.. 만드니까, 만든건가?..)
    최근들어 넥서스다 머다 구글이 걍 검색기능 만 하는줄 알았는대.. 구글 참 많은것에 도전했었군요 ㅎ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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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역사 <5> 세계로 뻗어나가라! 비상하는 구글!구글의 역사 <5> 세계로 뻗어나가라! 비상하는 구글!

Posted at 2012.03.29 06:00 | Posted in 기획특집


위대한 인물의 인생에는 전성기가 있다. 판타지 덕후 식으로 말하면 '마법의 가을' 이라고 말할수도 있겠다.[각주:1]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마법의 가을' 이결코 인생의 최고 시기는 아니라는 거다. 인생 최고의 시기를 죄다 마법의 가을로 때려 받는다면 '빌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 설립 이후에는 계속 마법의 가을 이내요.' 같은 어정쩡한 경우가 생긴다. 아! 그것은 끝나지 않은 가을... 하긴 빌게이츠는 약과다. 얼마전에 뒤진 북쪽나라의 모 돼지왕의 경우에는 태어나면서 부터 마법의가을 이었다.



약속된 주지육림!!!


이런건 아니지 않는가. 인생의 전성기 혹은 마법의 가을이란 어떠한 개인이 마치 신들린 것처럼 웅비해나가는 어떤 한 시기를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조조에게 있어서 마법의 가을은 황제를 웅립하고, 한조의 수호자 타이틀을 따낸 뒤 성큼성큼 세력을 확장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며, 유비에게 있어서 마법의 가을은 한조의 진정한 후계자 타이틀을 따낸 뒤 입촉을 한 그때일 것입니다. 그 짧은 시기 동안 마법처럼 유비와 조조는 자신들의 세력을 수십배 뻥튀기 했고, 자신들의 나라를 새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구글 이라는 조직에게도 마법의 가을은 있었다. 구글이 첫 흑자를 본 2001년 에서 구글이 시장에 기업공개를 한 2004년 사이의 구글은 그야말로 욱일승천하는 태양처럼, 창천을 향해 치솟는 이무기 처럼 성장했다.

하지만 맨땅에 해딩한다고 해서 물가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무기는 하늘로 승천하여 용이 될 그 때를 위해서 수십년이고, 수백년이고, 수천년이고 여의주를 품으며 폭풍이 거쌜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충분한 여의주와, 적절한 환경을 가진 이무기는 하늘로 승천하고 그 길로 용이 되는 것이다.




어느 한순간 갑자기 성공한 것 같지만 그런 것이 아닌 것이다. 구글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글은 제대로 흑자를 보기 전부터, 세계로 뻗어나가기 전부터 이미 흑자를 볼 수 있는, 그리고 세계로 뻗어나갈수 있는 여의주를 품고 있었다. 그 여의주는 바로 구글의 광팬 들이었다. 광팬 혹은 빠돌이 빠순희. 저러한 말의 어감은 많은 이들에게 부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사실 어떠한 기업에게 열성 추종자가 있다는 것은 기업 이장에서는 굉장히 축복받은 것이다.

열성 추종자들은 비가오나, 눈이오나 마치 종교와 같이 그 기업에 돈을 가져다 바칠 것이며, 딱히 마케팅을 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가족에게, 친구에게 혹은 모르는 사람에게 까지 (이쯤 되면 민폐의 영역일지도 모르지만) 그 회사의 재품을 홍보해줄 것이다. 어느새 전 세계에 생긴 구글의 열성 추종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돈 한푼 받지 않고, 입으로 혹은 채팅으로 그것도 아니면 블로그로 구글을 홍보했다! 더욱이 구글은 공짜로 사용할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글을 홍보하는 일은 딱히 민폐로 여겨지지도 않았고, 안티를 생성하지도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이 천만안티를 몰고 다니는 것과는 대조적인 일이다.

그렇게 별다른 광고 없이도, 구글은 점점 세계 제일의 광고기업이 되어가고 있었다. 거기에 2003년 구글이 100여개의 언어를 지원하면서 그러한 물꼬는 더더욱 커졌다. 구글은 실존하는 언어는 몰론이고, 클링온어와 같은 가공의 언어 까지도 재공했다.

2003년 7월. 야후는 구글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우리끼리 검색을 해보겠음! 이라는 고집을 부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구글에게 있어서 그것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도리여 야후의 그 객기는 야후라는 포털사이트. 한때 세계를 정복하다시피 했던 그 크고 아름다운 사이트의 몰락의 서곡일 뿐이었다. 야후는 당시 지들이 아라서 검색서비스를 하고, 광고를 받기 위해서 약 20억 달러의 돈을 썻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엄청난 악수일 뿐이었다.




빠돌이들의 무료홍보, 그리고 야후의 뻘짓의 힘에 더불어 폭풍같이 성장한 구글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너무나도 폭풍같이 성장했기에 생긴 문재가 하나 있었다. 미국의 법상 일정규모 이상의 자산을 가진 기업은 반드시 기업공개를 해야만 했다. 레리와 세르게이는 혹시라도 구글의 중추적 비밀이 새어 나갈수 있는 기업공개를 그닥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더욱이 구글이 기업공개가 되면 그들이 부자란 사실은 만천하에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사생활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법이 그러한데 어쩌겠는가? 결국 레리와 세르게이는 구글의 기업공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기업공개 방식은 다른 회사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똘똘했던 레리와 세르게이는 기업이 시장에 주식을 공개할 때 몇몇의 자본들이 의도적으로 기업의 가치를 저평가 하고, 그 기업의 주식을 산뒤, 추후 기업의 주식이 오를 때 차익을 실현시킨 다는 것을 알았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기업이 주식을 통해서 이익을 보는 것은 단 한번 뿐이다. 추후 자사주 팔거나, 주식을 유상증자 하는 등의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자사주 매각이나, 유상증자 같은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기업은 하지 않는다.

당시 월가에서는 (당시만의 문재가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유망한 기업의 주식공개시 시세를 조작하여 싸게 사버린 다음에, 추후 그 기업의 가격이 정상적인 수준이 되면 되파는 방식으로 돈을 버는 이들이 있었다. 구글로서는 단 한번인 주식공개를 통한 자금조달에 대한 비싼 수수료를 바치는 샘이다. 레리와 세르게이는 단 한번뿐인 구글의 주식공개 자금을 월가의 더러운 자본에게 빼앗기는 것이 싫었다.

구글은 인터넷 경매를 통해 직접 기업공개 가격을 정해버렸다. 이러한 기업공개가 구글에게 이득을 가져와 주었는지, 혹은 손해를 가져와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월가 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기업공개를 하는 방식은 너무나도 구글다운 방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저러한 방법을 통해서 구글의 지분을 산 이들은, 아마 구글의 빠돌이 빠순히들이 상당히 다수일 것이다. 몰론 그러한 빠돌이, 빠순히들 역시 투자를 통해서 돈을 벌려는 생각이 없다 하면 거짓말 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은 단기적인 시세차익을 노리고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구글이라는 기업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했을 것이다. 기업으로서는 이러한 장기투자를 하는 주주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구글의 첫 주식공개 가격은 약 85달러였다. 650달러에 달하는 지금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은 시가총액 이지만 LG 전자 보다는 2배쯤 크다. 레리와 세르게이는 순식간에 벼락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돈 욕심은 그다지 없었다. 또한 당장 돈을 쓸 꼐획도 없었다. 나도는 전설에 따르면 레리는 구글이 주식공개가 된 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엄마하고 상의해 봐야겠어.

보통 이럴떄는 쌔근한 스포츠가 라도 한대 뽑느것이 보통이겠지만 역시 구글의 창업자들은 보통은 아니었다.

 

PS- 티스토리 글 작성, 편집기 업데이트 됬는데... 농담 아니고 너무 꾸려서 못 써먹을 지경이라고 봄. 티스토리는 그전 버전하고 동시에 사용하게 해주던가 해줘야 할거임요.

  1. 마법의 가을 : 국산 판타지 명작. 드래곤라자에 나오는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 어떤 인물의 전성기를 말한다. 그 마법의 가을 동안 루트에리노 대왕은 바이서스 왕국을 새웠고, 후치 네드발은 세계를 구했다. 추후 후치네드발은 '나의 마법의 가을은 끝났다며.' 17살의 애송이 주제에 늙은이 궁상을 피운다. 하지만 스티브잡스 처럼 인생에 있어서 마법의 가을이 두번 이상 오는 인물도 있다. [본문으로]
신고
  1. 벌써 5부군요- 잘읽었습니다-

    아... 에디터가 마이너 업데이트를 했네요 ㄱ-;;
  2. 마지막 부분.
    정말이지 이전 에디터가 훨씬 좋은데 말입니다. -_-
    • 2012.03.29 11:10 신고 [Edit/Del]
      미리 시범운영은 해보고 했으면 좋겠군요. 가령 구글의 경우에는 애널리틱스 같은거 업데이트 할때 두개 동시에 사용하게 하는데요
  3. 오늘만...오늘만..버티면 불금이 돌아옵니다.ㅎㅎ
    밤부터 비가 온다니 늦게 다니시는분들은 꼭 우산챙기세요.
    즐거운 하루 되시구요~
  4. 저 같아도 일단 스포츠카라도 뽑았을 텐데...^^
    잘 보고갑니다^^ 목터져라 웃는 행복한 하루 되세요^^
  5. 저는 우선 집부터...ㅎㅎㅎㅎㅎㅎ

    PS. 저도 에디터로 글 몇개 수정하고 이전 버전으로 돌려놨는데도
    그 수정한 포스팅은 이전 버전으로 안돌아오는 슬픈 현실에 좌절... ㅜ.ㅜ
  6. 미주랑
    ...후치네드발은 17세 가을에 세계를 구했죠...그해 겨울엔 수많은 이들이 얽혀 모헙을 했고요.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 2012.03.29 16:48 신고 [Edit/Del]
      사실 따지고보면 네드발이 '나의 마법의 가을은 갔구나.' 라고 궁상떤 것은 백작 작위에, 평생 쓸 돈에, 미소녀 아내까지 있으니 '앞으로는 목숨 건 여행 안해!' 라는 의지표현일지도
  7. hus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한 7~8년 전 동기들이 안쓰던 구글 하나로 검색의 달인 됐던게 기억나네요.
    지금도 고화질 사진이나 그림 필요하면 구글 돌림니다.
    그나저나 광고글이 없네요. 비실명 댓글인데..
    • 2012.03.29 16:49 신고 [Edit/Del]
      랄까나... 까말하고 광고글 신청 정도는 해봤는데 책리뷰 같은걸 따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보험광고 같은건 하기 싫습니다.
  8. 구글의 주식공개는 전설적이지요.

    거기에 조금 더 보태면.. 주식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주식과 그냥 일반 주식의 가치도 나누어 공개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건 뭐.. 기존의 자본 시장에서 주식을 통한 자금 수혈한다는 측면에서 혁명적인 사건이었고..

    말이 많을 수 있지만 그런 부분에서 개인적으론 잘한 일이라고 생각을 가지고 있네요. ㅎㅎ

    오늘도 좋은글 재미있게 잘 풀어주셔서 잘 읽고 갑니다.
  9. 저도 티스토리 에디터 꾸려서 못쓰겠더라구요 ㅋ
    예전버젼이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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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역사 <4> 레리, 세르게이, 에릭 슈미트의 삼각체제.구글의역사 <4> 레리, 세르게이, 에릭 슈미트의 삼각체제.

Posted at 2012.03.23 06:43 | Posted in 기획특집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의 브린의 성격이나, 일화 등등을 살펴보자면 그들은 꼰대라는 존제를 싫어했음이 분명해진다. 몰론 그들 자신들 역시 회사의 창업주이며 회사에서 매우, 매우, 매우 높으신 분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꼰대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높으신 분일망정, 업계의 사정을 모르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그런 꼰대는 아니었다. 레리와 세르게이는 자신들이 다스리는 조직. 즉 구글의 창립자였다. 당연히 그들은 구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회사의 높으신 분이었지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꼰대는 아니었다.

조직의 높으신 분에 꼰대가 들어온다면 그 피해는 막심하다. 존 스컬리 체제의 애플이 어떻게 되었는지, 혹은 소련의 정치장교가 소련군에 어떠한 재앙을 가져왔는지를 생각하면 감이 잡힐 것이다. 몰론 인류의 역사는 방대하고 기니 만큼, 역사를 살펴보면 꼰대라고 불릴만한 인물. 자신이 다스리는 조직에 대한 지식이 없는 많은 거라고는 나이밖에 없는 인물이 대단한 일을 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꼰대가 조직의 중심위치에 섬으로 해서 조직이 망하는 경우는 그보다 훨씬 더 많다.

누군가는 '삼성전자' 의 예를 들어서 꼰대인 이건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잘 돌아가지 않은가 하고 반론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희는 그정도로 오리지널 꼰대는 아니다. 애초에 삼성전자라는 기업 자체가 이건희가 새운 기업이며, 삼성을 새울 당시의 이건희는 연이은 사업 실패로 막바지에 있던 터라 상당히 절실한 기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대성공을 하여 이건희를 삼성제국의 황제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고로 이건희가 가진 삼성전자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 역시 잡스가 가진 애플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에 비해 작지는 않을 것이다.



몰론 이건희가 처음 삼성을 새울떄와 지금의 삼성은 사정이 다르다.
이거희가 최신의 IT 산업에 적합한 지식을 100% 알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희는 삼성전자의 성공과 함께 나락에서 천상으로 승천한 인물이다.
삼성전자라는 조직에 대해서 이건희가 남다름 애정을 품고 있는건 확실하다.

레리와 세르게이는 구글을 오로지 돈으로만 보는 꼰대가 구글의 CEO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돈이 아닌 비전을 볼 수 있는, 그리고 IT 업계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인물. 패기는 있지만 경험이 부족한 구글에게 '완숙한 피를 수혈해 줄 수 있는 인물.' 그것이 바로 레리와 세르게이가 원하는 CEO 였다.

에릭 슈미트는 어느정도 그 요건에 걸맞았다. 몰론 100% 맞지는 않을 것이다. IT 업계에 대한 경험은 충분했지만 에릭은 원레 구글의 기술. 즉 검색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그가 구글의 CEO 면접을 본 것은 구글에 돈을 꿔준 클라이너 퍼킨스에서 일단 구글을 만나는 보라고 사정사정 했기 때문이었다. 에릭은 구글을 만나는 것이 진~짜~로~ 귀찮았지만 유력 벤처캐피탈 과는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았기에 일단 레리와 세르게이를 만나는 보았다.

그리고 의외로 레리와 세르게이는 에릭 슈미트를 마음에 들어 했다!!



혁명가 기질이 (정확히 말하면 MS까 기질이...) 약간은 있어보이는 레리와 세르게이는
에릭 슈미트가 선 마이크로 시스템의 CTO로 있으며 자바 게발에 일조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자바는 윈도우건, 맥이건, 리눅스건 구동 가능한 언어로 반 MS 진영이라 할 수 있다.
 
 
자고로 웃는 얼굴에 침 뱉는 것은 힘든법이다. 에릭 슈미트 역시 자신의 경력을 높게 평가해주는 구글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리고 노련한 노장인 그는 구글의 창립자인 두 젊은이들의 얼굴에서 무언가 새로운 가능성을 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2001년 에릭은 아직 적자투성이였던 어린 기업. 구글에 합류했다. 레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에릭 슈미트라는 구글을 상징하는 삼각의 편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아 참고로 에릭 슈미트는 레리, 세르게이 보다 월급 많이 받았다.

에릭슈미트가 CEO가 된 후 한 일은 지금까지 구글이 가지고 있었던 영세업체적인 요소를 없애는 일이었다. 

가령 그전까지 레리와 세르게이는 회사 명의의 신용카드를 직원에게 나누어 주었다. 참으로 멋있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위험한 일이기도 했고, 에릭 슈미트는 그러한 패단을 당장 없앴다. 또한 슈미트는 그떄까지도 중소기업용 회계프로그램을 쓰고 있던 구글의 회계를 오라클에서 재공하는 회계관리 프로그램으로 바꾸었다. 레리와 세르게이는 다음과 같이 반응했다.

 
그거 돈낭비 아닌가요?
그냥 이렇게 하는게 더 싸게 먹혀요.


솔찍히 말하면 나 역시 중소기업용 회계 프로그램과, 오라클에서 재공해주는 대기업용 회계 시스템이 도대체 뭐가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에릭은 끝내 레리와 세르게이를 설득했다. 그렇게 에릭 슈미트 라는 걸물의 합류와 더불어 그전까지 단순한 공돌이 집단이었던 구글은 점점 더 기업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글의 핵심가치가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구글의 핵심 가치는 다음과 같다.



회사 밖에서는 사용자가 왕이다.
회사 안에서는 공돌이가 왕이다.



 '고객이 왕이다.' 라는 관용어는 오늘날 상식과 같이 통용된다. 단 구글의 경우에는 고객을 누구로 할지가 상당히 난감한 행위였다. 구글에 광고를 주는 회사가 구글의 고객인지, 구글에서 검색을 하는 개인이 구글의 고객인지 상당이 했갈리는 행위다. 만일 평범한 회사 같았으면 당연히 돈 주는 사람이 왕 ㅋ 굳 ㅋ. 이라고 말하고 물주가 하라는 대로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렸을 것이다. 그리고 휘둘리면서도 물주가 휘둘리는 대가로 준 결코 적지 않은 돈을 보면서 창업자들은 다음과 같은 표정을 지을 것이다.




하지만 구글은 달랐다.
그들은 광고주가 자신들의 흠패이지를 덜 근사하게 만드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만약에 광고주가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그로 인해 사이트가 덜 깔끔해 진다면? 구글은 고려조차도 하지않고 광고주의 말을 거절했다.

아니 덜 깔끔해지니 마니 하는 것을 떠나서 스타워즈 배너 같은 이정도는 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것까지도 거절했다. 아마 구글이 스타워즈 배너를 다는 나는 조지 루카스 웅이 돌아가시는 그날일 것이다. 몰론 그날은 무료로 스타워즈 배너를 달겠지. 어찌 되었던 간에 이윤이 목적인 기업이 돈욕심이 없다니 (...) 경제학자들이 경제학 교과서를 집어던진 뒤 FUCK YOU! 를 외칠만한 일이다.

기업이기는 하지만 돈욕심을 안내는 기업.
그것은 구글의 다음과 같은 비공식 사훈에서 잘 나타난다.


사악해지지 말자.


이러한 사용자중시주의는 당장은 손해를 봤지만 장기적으로는 구글 이라는 기업을 세계 1류로 만들었다. 어느정도 도덕적으로 깨인 경향이 있는 IT 계열의 많은 인재들이 구글로 몰려들었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구글만세! 를 외치면서 구글을 공짜로 홍보해졌다. 당장에 애플빠인 나만 하더라도 크롬 써요! 크롬 좋아요! 라는 말을 입에 달며 살고 있다. 뭐 실재로 좋기도 하고 말이다.

구글의 사용자 중심주의 만큼이나 중요한 문화는 바로 공돌이 중심주의다. 흔히 말하길 구글은 공돌이들의 천국 이라고 한다. 공돌이가 편해야 회사가 잘 돌아간다. 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던 구글의 창업자들은 회사의 직원수가 10명이 겨우 넘은 중소기업 시절에 요리사를 영입하려 시도했다. 그것도 호텔주방장 급의 일류 요리사를 말이다! 해당 요리사는 처음에는 구글의 스카우트를 무시했지만 추후 구글이 성장한 뒤에는 재발로 구글에 면접을 보러 왔다고 한다. 그리고 채용되었다.

그렇게 뷔페 사내식당이라는 구글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그 외에도 육아휴직 (엄마에게 18주, 아빠에게 14주), 무료 핼스클럽, 사원이 기부를 하면 회사가 그만큼 기부를 하는 기부 시스템 등의 극상이라 할만한 사원복지를 구글은 재공한다. 그렇게 대부분이 공돌이인 구글의 직원들은 최선의 상황에서 코드를 짤 수 있었고, 능률은 수배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구글의 처사를 보고 불합리하다. 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IT기업에게 있어서는 공돌이들 이야말로 최고의 재산이다. 하루하루 코드를 짜는 우리의 공돌이, 공순이들. 한국의 경우에는 프로그래머를 소모품 취급하는 행태가 만연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일이다. 창의적인 부분은 해외의 크리에이터에게 일임하고, 우리나라 프로그래머는 하루하루 코드를 짜개할 뿐, 그리고 10년이 넘어 월급이 올라고 하면 잘라버릴 뿐 ... 그리고 고용여건은 당연히 최악.

이딴 환경 속에서... A급 인재가 나올수 있을까?
설령 A급 인재가 우연히 이 시궁창에 발을 담구었다 해도 그 A급 인재는 시궁창 물에 깜짝 놀라서 발을 빼버리고 말것이다.
솔찍히 까고 말해서 공돌이들의 월급을 많이 주는 것이, 진짜 하는 일 없어보이는 CEO 들 월급 듬뿍 주는 것보다 훨씬 좋다. 몰론 훌룡한 CEO 들도 있기는 하지만 회사가 무얼 하는지도 모르고, 회사에 대한 예정도 없는 꼰대새끼들이 돈을 왕창 받아가는거 보면 그저 배알이 꼴린다.



 
하는 일 없어 보이고, 실적도 개판인 꼰대 CEO가 돈을 왕창 얻어가는 것은
월가 시위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어재는 월가를 ㄱㄱ 했다.. 내일은 워싱턴을 ㄱㅌ 할거다.


다만 공돌이들이 구글의 업계 최고급의 사원복지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엘리트 이여야만 했다. 

엘리트...
엘리트...
엘리트...
제기랄...
엘리트...
엘리트...

구글은 명문대 졸업생만 받는다.
몰론 코팅실력도 보지만 명문대 졸업장도 본다.

다만 너무 재수없어 하지는 말자. 미국의 명문대 졸업생들은 아무래도 한국의 명문대 졸업생들 만큼 재수없지는 않은 모양이니 말이다. 당장에 <<빅뱅이론>> 을 보자. 별로 재수 없지는 않다. 몰론 그런 미드를 대놓고 믿는 것 역시 바보 짓이지만 최소한 그런 미드가 방영이 되는 것을 보면 학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풍토는 없는 것 같다. 여튼간에 20대에 칼텍에서 교수 하고 있는 빅뱅이론 주인공들 정도면 구글에서 딱 원하는 인재일 것이다.



 
설령 업계 경험이 풍부한 백전노장이라 하더라도 학벌이 꽝이면 구글은 채용해주지 않는다. 어찌보면 한국과 일맥상통하는 회사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가만히 생각해보니 엘리트건, 하류인생이건 간에 소모품으로 부려먹는 대기업이 더 공평한 것 같기도.... ..... ......

대한민국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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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면 공부좀 열심히 해서 구글에 도전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그걸 하려면...
    영어공부, 프로그램 공부, 외국유학 등등.. 할게 너무 많군요...ㅜ.ㅜ
  2. 명문대출신을 선호한다는 면에서는 MS와도 비슷하네요. 하긴 그 뒤에 사원을 무조건 믿고 저 정도까지 복지를 해주려면 최소한의 보장은 있어야겠지만요. 구글이란 기업이 어째서 이미지가 좋게 남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잘 알았습니다.^^ 애플의 기업문화와 비교해보면 공돌이 위주의 기업 Vs 디자이너 위주의 기업 이란 이미지도 있는 듯 싶네요.
    • 2012.03.23 14:44 신고 [Edit/Del]
      애플도 공돌이 위주의 기업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디자이너 역시 근무를 하겠지만 디자이너는 소수이며, 그래픽 디자이너의 경우에는 공돌이로 보는게 나을 태니까요.
  3. ㅋㅋㅋ 펌질을 장려하신다니 ㅎㅎㅎ 힝~너무 재미있어요.
    혹 실수로 내일 임시저장본 또 올리시진 않을려낭? F5번 누르고 있는 1人 ㅋ
    저도 크롬써요~구글만세!
  4. 릿찡님 오늘은 스피드로 읽었어요..ㅋ 바빠서.. 시간나면 다시 볼게요^^
    릿찡님의 포스팅은 언제나 흥미로워요^^
    행복한 금요일, 활짝웃는 금요일 되세요^^
  5. 네네치킨
    저는 파폭써요 원래 크롬 썼는데 속도만 빠르더라고요
    • 2012.03.23 16:22 신고 [Edit/Del]
      파폭은 안정성이 좋다능요. 일단 액티브 엑스 재외하면 익스보다 딸리는 기능이 하나도 없고, 속도나 기타등등에서 익스를 앞서니만큼.
  6. 말많아도 개발자에겐 천국인 곳이 맞죠.
    다만, 그 철학이나 비전이 본토에만 머물지 로컬 시장까지 미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비슷한듯 한데 한국 구글과 다소 차이가 있더군요.
    물론 한국 구글 개발자들도 좋은 개발자가 많지만요 .

    시스템은 네이버, 다음도 비슷하게 가려고 하는데 이게 당췌 따라하기만 해서는 안되는거라..
    딱 거기까지란 생각이네요. ㅎㅎ 좋은글 잘보고 가요.
  7.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
  8. 시간은 모든걸 잊게 하고 사랑은 모든걸 기억하게 합니다.
  9. 사실 학부 강의는 거기서 거기고, 학벌을 챙긴 사람들의 공통점은 노력과 성실성 바탕위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크죠. 박사부터는 좋은 교수 만나서 지도 잘해주는 사람이 아닐지 생각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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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역사 <3> 기업으로서의 첫걸음.구글의역사 <3> 기업으로서의 첫걸음.

Posted at 2012.03.19 06:16 | Posted in 기획특집

언잰가 기자 한 명이 빌게이츠 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의 라이벌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빌 게이츠의 라이벌 하면 우리는 보통 스티브 잡스를 떠오르지만 당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CEO도 아닌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시기 였기에 감히 빌 게이츠의 라이벌 운운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빌 게이츠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무인지하 만인지상. 세계 IT의 황제일 뿐 아니라 세계 경제의 황제이기 까지 한 사나이. 거칠것이 없는 최 전성기 였다. 그때의 빌게이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창고 어딘가에서 코드를 짜고 있을 젊은이들."


빌게이츠가 이 말을 할 떄 쯤인 1998년 6월. 구글을 탄생했다. 그들이 창업을 한 장소는 바로 켈리포티니아에 있는 한 창고였다.
그때 레리와 세르게이는 허드랫일을 해줄 쫄따구 한명을 고용했는데 그의 이름은 크레이그 실버스타인. 레리, 세르게이와 마찬가지로 스탠퍼드 대학의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아마도 처음에는 학비나 벌어볼 요량으로 구글에 취직했을 실버스타인은 훗날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실리콘 벨리의 다른 1류  IT 기업이 그렇듯이, 우리도 창고에서 시작했습니다."


창고에서 시작한 기업은 어떤 기업일까? 아무래도 번듯한 사무실이 아닌 창고에서 시작했으니 만큼 경제적 사정은 그리 좋지 않을 것이다. 매월 매월 직원들 월급을 어떻게 줄 것인가가 사장의 주요 스트레스인 기업. 즉 영세기업. 구글도 처음에는 바로 그런 기업이었다. 하지만 자금도 없는 주재에 기업을 시작했으니 만큼 한가지는 탁월할 것이다. 그 한가지는 바로 기술이었다. 돈도 없고, 경영학 따위는 머리만 아프지만, 내 기술 하나는 자신있다. 하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창고에 IT 기업을 여는 것이다
.
구글 역시 다른 것은 몰라도 기술 하나는 자신있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창고는 너무 좁았는지 구글은 5개월 후 스탠퍼드 대학가에서 2km 정도 떨어진 그럭저럭 운치있는 2층 사무실로 이사를 갔다. 기업의 초창기에 쓸대없이 돈을 쓰는 것은 금물 이지만 레리와 세르게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레리와 세르게이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학생 출신이고, 구글 역시 초창기에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학생이 주요 고객층 이였다. 구글의 거의 유일한 소비층인 스탠퍼드 대학교의 학생들이 입소문을 어떻게 내주냐에 따라서 기업으로서의 구글의 명운이 갈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탠퍼드 대학교에는 우수한 공돌이들이 많다. 더욱이 그 공돌이들은 레리와 세르게이의 후배들이다. 한다리, 혹은 두다리 건너면 말을 건낼 수 있는 그런 사이었다. 즉 스탠퍼드 대학교 근처의 사무실은, 스탠퍼드 출신인 레리와 세르게이 입장에서는 사업이 확장되면서 인재를 구하기 딱 좋은 그런 자리였다.

레리와 세르게이는 1999년 1월 스탠퍼드 대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구글에 입사하면 공짜, 음료와 공짜 스낵을 준다는 광고를 하면서 우수인재 확보에 열을 올렸다.



제아무리 우수한 인물이라도 사업이 커지면 혼자 모든일을 다할수 없다.
우수한 인재를 많이 얻는것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입아프다.



그렇게 확보한 스탠퍼드 대학표 브랜드 인재 중에서는 한국계도 있었다.
데니스 황. 한국 이름 황정목. 그는 영문 위키백과에도 항목이 작성 되었을 정도의 유명인이다. 현재 구글에서 인터네셔널 웹마스터 직책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그 유명한,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구글 로고를 디자인했다. 몰론 구글의 로고가 워낙 많이 바뀌는 지금에 와서는 그 혼자서 모든 구글 로고를 디자인 하지는 못한다. 여담이지만 황정목 역시

"만일 내가 한국에서 교육 받았으면 망했을듯."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사람은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왔다가, 다시 미국간 사람으로 한국과 미국 양쪽의 교육을 전부 경험했다. 그런 사람이 한 발언이 저러니 ... 뭐 한번쯤 생각해볼 문재다.



구글 로고 디자이너 황정목

인재는 그럭저럭 해결했다고 하지만 초창기의 구글은 결코 이득이 나는 기업은 아니었다. 적자를 보거나, 흑자를 겨우겨우 저공비행하는 수준 이었다. 그런 구글이 망하지 않고 버틸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구글의 기술력에 관심을 보인 두개의 투자회사의 투자 덕분이었다. 각강의 투자회사의 이름은 클라이너 퍼킨스와, 세쿼이아 캐피털 이엇다.

그들이 구글에 투자한 금액은 합산 2500만 달러. 우리돈으로 약 300억원. 지금 생각해도 많은 돈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구글에 돈을 빌려주었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이다. 세계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보면 500억은 되는 돈이라 할 수 있다.뭐 초창기에 그 두개의 투자회사는 수익도 안나는 기업에 투자했다고, 투자자들에게 엄청 쪼임을 받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뭐 (...) 벤처투자 역사상 최고로 현명한 투자중 하나로 칭송받고 있다.
 
2000년 6월. 구글이 회사로서 창립된지 2년 쯤 되었을 때 구글은 드디어 야후와 검색엔진 재공 계약을 맺었다.
그로 인하여 구글은 한시름 놓기는 했지만 여전히 구글은 돈을 많이 버는 IT 기업은 아니었다.

레리는 농담으로 다음과 같은 말까지 했을 정도다.


"세르게이가 나이트 가서 여자 못 꼬시는데 적자나는 기업 사장이라서 그럼요 ㅋㅋ"

여담이지만 레리는 구글의 사장이 아닌 CEO 였다. 뭐 그냥 사장이나 CEO 나 높고, 아름다운 자리이기 때문에 이름을 붙인 것이지 별 의미는 없던 것 같지만 말이다. 여튼간에 구글과 돈은 큰 인연이 없었다. 인연이 굳이 있다면 돈을 버는 쪽 보다는, 돈을 쓰는 쪽 이었다. 레리와 세르게이가 '오버추어' 광고 시스템을 채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버추어 라는 마법의 광고 시스템. 요즘은 대세를 넘어서 검색업계의 상식 수준이 된 광고 시스템을 채택하면서 부터 구글은 흑자를 보는 회사가 되었다.

오버추어 전까지의 인터넷 광고는, 아니 광고시장 자체는 굉장히 불합리했다. 만일 당신이 샤프팬슬과 지우개를 생산하는 기업을 가지고 있고, 그럭저럭 돈이 있어서 좆선일보에 광고를 낸다고 치자. 그로 인해 어느정도 사람이 모이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굉장히 비효율적인 광고법이다. 좆선일보를 보는 모든 이가 샤프 팬슬을 사용하고 싶어하는 이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광고 노출수 대비 실제 수익이 무지무지하게 낮을 수밖에 없다. 신문광고 뿐만 아니라 TV광고, 잡지광고, 그리고 애드센스 광고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버추어 광고는 달랐다.
다른 광고가 마구잡이로 쏘는 기관단총이라면 오버추어 광고는 유도탄 이었다.




오버추어 광고는 특정 검색어를 입력한 소비자가 특정 광고를 보개 만드는 광고방식 이다. 아무래도 지우개 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는 이는 지우개를 실제로 구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말인즉 지우개 전문 홍익교재 공업사, 지우개 비티비 기프트 등의 광고를 클릭할 가능성 역시 높다는 이야기다.

오버추어 검색광고를 처음으로 도입한 사이트가 구글인 것은 아니었다. 오버추어 광고를 처음 도입한 곳은 '오버추어' 라는 회사다. 오버추어 회사에서 쓰는 광고니까 오버추어다 (...) 하지만 구글의 검색엔진 성능은 제일 이었다. 그러다보니 구글은 다른 오버추어 방식의 광고를 쓰는 곳보다도 차별화된 실적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

2001년 구글의 순이익은 700만 달러. 우리돈으로 약 800억원이다.
회사가 적자를 봐서 여자를 못꼬신다고 불평하던 세르게이 브린.
그는 흑자를, 그것도 어마어마한 흑자를 보는 IT 기업의 최대주주 2명중 한명이 되었다.

 


그리고 세르게이는 결혼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무리봐도 세르게이가 손해다.



그에 비해서 레리는
...
...
...
...

몰론 외모가 다는 아니겠지만 세르게이가 심히 안습해 보인다.

한편 구글이 아직 압도적인 흑자를 기록하는 회사가 되기 전인 2000년 12월. 구글은 두 창업자의 결혼파트너 보다도 훨씬 중요한 파트너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회사의 CEO 였다. 임시방편으로 레리가 CEO를 맞고 있기는 했지만 레리나 세르게이나 공돌이 출신 인데다가 기업을 경영한 역사도 그리 길지 않았다. 그들 역시 전문적인 CEO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참고로 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CEO는 다름아닌 이사람이다.



구글을 열핵병기로 공격하겠다.


만일 레리와 세르게이가 이분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면 일이 참 재미있게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아이폰을 구글에서 출시한다던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IT 업계를 삼분하는 두 기업이 열핵전쟁을 할 가능성이 없어지면서 인류는 한층 평화로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는 대로 이분은 얼마 후 애플의 CEO로 복귀했으며, 레리와 세르게이는 다른 CEO를 구해야만 했다.

투자캐피탈 에서는 이런저런 CEO들을 구글에 소개시켜 주었고, 그 CEO 들 역시 구글이라는 회사를 마음에 들어했지만 레리와 세르게이 에게는 눈에 차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CEO는 우선 책상물림이 아닌 공돌이 출신, 그리고 그들에게는 없는 폭넓은 업계 경험을 가진 인물이었다.  

2000년 12월. 그런 CEO 후보가 드디어 애플에 찾아왔다.
그는 버클리 대학교 공학박사 출신으로,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다.
선마이크로 시스템의 CTO로 근무하면서 현재 C와 함께 가장 많이쓰이는 언어인 JAVA의 계발에 한 몫을 했다.

그의 이름은 에릭 슈미트 였다.


 
신고
  1. 안녕하세요. 해커 C 다녀갑니다ㅎㅎ

    대부분의 시대의 혁신을 가져오신분들은 시작이 화려하지 않다는..

    ㅎㅎ 기차안에서 모바일버전으로 잘보고 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2012.03.20 12:45 신고 [Edit/Del]
      천년의 세월을 살아온 거목일지라도 그 시작은 자그마한 새싹일 뿐입니다. 새싹에는 이미 거목이 될 가능성이 있었고, 거목이 될 의지 또한 있었겠지요. 지금의 새싹 들에게도 거목이 될 의지만 있다면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2. 너무도 재미있는 구글의역사 잘보고갑니다^^
    그나저나 황정목씨 자랑스러운데요^^
    행복한 하루 되시고요^^ 오늘도 힘내세요^^
  3. 아 싫어... 내일 낼 글이었는데... 난 왜이레 ㅜㅜ
  4. 내일 낼 글이었는데 오늘 발행되면 진짜 안습.
  5. 아아아아 여기서 끝나면 어떻해요!!! 너무 재밌어요 ㅜ_ㅜ
    어서 다음글 주세요 예!!! 빨리 줘요 두번줘요
  6. 미주랑
    ...오타 발견. 넘어가기 힘든것같은데 '애플에 찾아왔다' 부분. 다음글 기대하겠습니다.
  7. 이런식으로 또 이야기를 풀어쓰시다니.. ㅋㅋ
    재미있는데요. 저의 딱딱한 역사 체험기완 또 다른 재미를 주시네요.
    근데 이번에 래리가 이혼한다고 했나요? 에릭이었나.. ㅎㅎ;;
    • 2012.03.21 12:17 신고 [Edit/Del]
      에릭이었죠. 듣기로는 수조원대의 이혼이랬나... 에릭의 과실이여서 에릭이 결혼기간 동안 번 돈을 반띵해야 한다고 하는군요... 쩝... 그러니까 남자들은 결혼을 멀리하고, 오른손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8. IT를 어려워하는 분들에게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군요~^^ 잘 보고 갑니다.ㅋㅋ
    창고에서 나오는 열정~!! 정말 멋지게 생각합니다!
  9. pinusligida
    글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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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역사. <2>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두 영웅의 만남구글의 역사. <2>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두 영웅의 만남

Posted at 2012.03.17 06:01 | Posted in 기획특집



많은 위대한 IT 기업은 두명의 천제의 만남으로 인해 이루어 졌다. 애플의 경우에는 스티브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이 두명의 천제 스티브가 함꼐 꿈을 꿈으로 해서 만들어졌고,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에는 빌 게이츠와 폴 엘런 이 두 천제의 의기투합에 의해 새워니다. 그 외에도 많은 기업이 두명 혹은 그 이상의 동업으로 첫걸음을 걷고는 한다. 
아무래도 혼자 기업을 열면 아무래도 나태해지기 쉽다. 하지만 둘이서 기업을 열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감시자가 되기에 쉽게 나태해 질 수 없을 것이다.

구글 역시 다르지 않다. 구글의 시작은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이 두명의 천제의 만남 이었다. 
세인들의 평에 따르면 사업계획가 실행에 있어서는 나으며, 컴퓨터 공학자 본연의 능력 즉 코팅 실력 등에 있어서는 세르게이가 낫다고 한다. 하지만 레리든 세르게이든 간에 그들의 프로그래밍 실력은 A급 이었다.
혹자는 그들의 생김새만 보고서 저 평범한 두명의 젊은이가 세상을 바꾸었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몰론 믿으면 그게 바보다. 평범하긴 개뿔. 레리건 세르게이건 스탠퍼드 대학교 출신이다. 장난 아니게 똑똑하다. 몰론 미국은 좋은 대학 나왔다고 한국처럼 신으로 취급하는 문화는 없으니 그것 만으로 위너 오브 위너 오브 위너는 아니겠지만, 여튼간에 똑똑하다는 보증수표는 되어준다.

더욱이 그들은 그 스탠퍼드 대학교의 박사과정을 수료하는 학생들 이었다. 즉 미래의 교수들 이었다는 것이다. 
전 미국에서 상위 1%의 똑똑한 놈들이 모인 스탠퍼드의 공과대학. 그중에서도 상위 1%에 속하는 녀석들이 바로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이었다.
 


 스탠퍼드 대학교는 한국의 모 연예인이 졸업한 것으로도 유명한 대학이다.
그리고 몇몇 정신병자 새끼들이 그 연예인이 이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악플을 단걸로도 유명하다.
한 가수가 나왔고, 나오지 않고 가지고 설왕설래가 오갈 만큼 대단한 대학이다.
서울대는 스탠퍼드 앞에서는 명함이나 겨우 내미는 수준이다.
뭐 그래도 명함은 내민다 ...


레리와 세르게이는 참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진 인물이었다. 우선 두명은 같은 스탠퍼드 대학교 출신이고, 1973년 출생으로 나이 또한 같다. 사실 1973년 출생자가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사용 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지만 이 두명의 영웅의 아버지는 모두 컴퓨터 사용자였다. 레리의 아버지는 컴퓨터를 가르치는 교수였고, 세르게이의 아버지는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리고 두 명 다 어린 시절 몬테소리 교육을 받았다.

몬테소리 교육이 무엇이냐 하면은 권위를 부정하고 자발성을 중시하는 미래 지향적인 교육이다. 몬테소리 교육 에서는 때려서 시킨다. 억지로 시킨다. 따위의 개념은 없다. 그저 아이들이 알아서 학습을 할 만한 환경을 조성함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학습을 하도록 유도할 뿐이다. 이쯤 이야기 한다면 알겠지만 몬테소리 교육은 한국의 교육과는 정 반대편에 있고, 한국의 교육계 에서는 몬테소리를 못된소리 라고 말하면서 배척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통용되는 교육 방식은 조선놈들은 때려야 말을 잘듣는다니 뭐....

아무튼 간에 나이, 특기, 아버지 직업, 교육 환경 등등에서 공통점이 많은 두 구글의창업자. 세르게이와 레리는 1995년 대학에서 기념비 적인 첫만남을 가졌다. 유비 관우 장비 처럼 처음 만났음에도 형제와 같은 감정을 두사람은 느끼... 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가진 공통점 만큼이나, 두사람의 성격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레리는 무언가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혼자서 사색하며 궁상 떠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세르게이는 무언가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일단 부딛히는 것을 좋아했다.

두 사람의 성격은 한마디로 말해서 극과 극 이었다. 처음부터 친할리가 없었다.
훗날 레리 페이지는 세르게이 브린과의 첫만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까지 했을 정도다. 



처음 브린을 만났을때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개미 눈꼽만큼의 호감도 느낄 수 없었다.


세르게이 브린이 남긴 말은 레리 페이지보다 좀더 쌈빡했다.



우리는 서로를 미워했다.

보통 관심사가 같으면 어지간하면 친하게 지낼수 잇는데 같은 중증의 컴퓨터 덕후끼리 최악의 첫인상을 받다니 성격이 안맞기는 진짜 안맞었던 모양이다. 여튼 그때는 그 누구도 세르게이와 레리가 동업을 할 것을, 그리고 그들이 새운 회사가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릴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당사자인 두명의 영웅. 세르게이와 레리 까지도 말이다.

두 사람은 사소한 일에서도 말다툼을 했다.

분명 레리는 세르게이를 싫어하고, 세르게이는 레리를 싫어했지만 서로 말은 하고 산 것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불쾌한 감정을 보일지언정 서로에게 무관심 하지는 않았다. 그 누가 그러던가? 호감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닌 무관심 이라고. 이 둘은 서로를 죽일듯이 미워할망정 서로에게 무관심 한것은 아니었다. 서로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미움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서로 이야기를 계속 했다.

그것은 아마 인간적으로 본 상대방은 싫어하지만, 상대방의 실력 만큼은 인정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어느새 그들은 무엇인가를 계기로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 계기가 무엇이였는지는 알수 없다. 그들은 인터뷰에서 어느날 갑자기 우리는 소울프랜드가 되었다! 정도로 말했을 뿐. 정확히 어떤 일을 계기로 사업이라는 크나큰 일을 같이 할 정도의 친구가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서로가 실력은 인정하고 있었을 둘이 힘을 합해서 무언가 어려운 문재를 해결했을 수도 있고, 서로간의 수많은 공통점을 우연히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단순히 좋아하는 취향의 여자가 같아서 음담패설을 같이 하다가 친해졌을 지도 모르고, 좋아하는 영화가 같아서 거기에 대해서 대화를 하다가 친해졌을지도 모른다.

여튼간에 그 둘은 서로 못잡아먹어서 난리인 양숙에서 소울 프랜드로 관계가 월등히 계선되었다. 대충 그전의 레리와 세르게이의 관계가 원작의 조로와 상디의 관계라면 소울 프랜드가 된 레리와 세르게이의 관계는 동인녀들 망상속의 조로와 상디의 관계... 는 생각해보니 아니다. 그건 우정을 넘어선 어둠의 다크에서 죽음의 데스가 느껴지는(...) 무언가이니 말이다.




구글이 탄생하기 전에도 검색엔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야후가 있었고. 한국인에게는 별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본토에서는 나름대로 선전한 알타비스타가 있었다. 그리고 알 만한 사람은 알고있는 라이코스란 녀석도 그때까지는 생존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인포시크, 익사이트, 웹크롤러 등등. 그런 사이트가 있기는 있었나? 하고 이름조차도 가물가물한 기업들이 지들 나름대로 검색엔진을 서비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검색엔진은 전부 키워드만 가지고 검색을 하는 검색엔진 이었다. 그러한 글들에서 자주 노출되는 글은 내용이 좋은 글이라기 보다는 그냥 키워드 단어를 어거지로 쑤셔넣고 있는 글들이 많았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에는 아직 까지도 키워드 검색기술이 주로 쓰이고 있으며 덕분에 나는 굳이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이라는 이름을, 요 글의 재목에 넣고, 본문에서도 최대한 반복해서 쓰고 있다. 당연히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이라는 키워드에서 상위노출이 되기 위함이다.

이런걸 검색 최적화 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블로그질 하려면 저런거 대놓고 하지는 않더라도 어느정도 알고 있으면 좋다.

여튼간에 키워드 가지고만 검색을 추출하니 극단적으로 말해서 알바가 손을 보지 않으면 이명박 이라는 재목의, 내용 역시 이명박 이라는 이름을 1000번쯤 반복하고, 이명박과 별다른 관련이 없는 이명박 이라는 재목을 넣은 사진이 상위노출이 되는 사태가 생길수도 있다. 뭐 그정도로 극단적인 글이라면 알바들이 철퇴를 내리겠지만, 어찌 되었든 키워드 검색은 대충 쓸만한 글을 찾기는 그럭저럭 좋을지 몰라도 아주 좋은 글을 찿기는 힘들었다.

까놓고 말해서 네이버나 다음에 뭐라뭐라 치고, 처음 나오는 패이지 보면 그 질이 그리 좋지는 않은 경우가 많다. 키워드 위주의 그리고, 자사의 정보만 대놓고 보여주는 갈라파고스 검색엔진의 함계랄까나?




범인의 경우라면 여기에 대해서 ‘아직 인공지능이 개발이 안되서 이런 일이 일어나군요! 인공지능 개발 원추!’ 따위의 생각이나 하겠지만 시대의 천재. 레리 페이지의 생각은 좀 틀렸다. 그는 지금보다도 훨씬 뒤떨어진 1990년도 후반의 기술을 가지고도 사람들이 좋아 할만한 정보만 꼭꼭 집어서 상위노출 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매우 단순한 하나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말이다.
 
그 단순한 하나의 아이디어는 바로 외부에서 많이 링크를 퍼간 글일수록 질이 좋은 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많이 퍼간 글일수록 질이 좋다. 이 간단하고도, 확실한 전제에서부터 구글의 핵심 기술이자 세계 검색엔진 시장에, 더 나아가서 세계 인터넷에, 더더 나아가서 그냥 세계에 무지막지한 대변혁을 밀고올 ‘패이지 랭크’ 라는 기술이 탄생하였다.
패이지랭크 기술의 알고리즘을 그려넣으면 다음과 같다고 한다.



나도 이해 못하겠고, 이해하라고 올린 것도 아니다. 
공돌이는 이해 할지도 모르겠다... 
 

레리 페이지는 어느덧 자신의 소울 프랜드가 된 세르게이 브린을 요 일에 끓어들이기로 했다. 여기서 잠깐 음모론을 펼쳐보자면 레리 페이지는 이때 까지도 세르게이 브린을 짜증나는 녀석 취급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르게이 브린의 수학실력과 공학 실력 만큼은 레리 페이지가 생각하기에도 진퉁 이였기에 이 일에 끓어드린 것이다. 그리고 세르게이 브린 역시 레리 페이지의 아이디어에 반해서 재수없는 놈이기는 하지만 같이 작업을 한 것이다 ....

뭐 소울 프랜드가 된 후에 작업을 했건, 작업을 한 뒤에 소울 프랜드가 되었던 간에 세르게이 브린을 프로젝트에 끓어드린 레리 페이지는 매우 괜찮은 선택을 한 것이었다. 세르게이 브린은 특유의 천재적 능력으로 데이터마이닝 기술을 구글의 검색에 복합시키 놓았다.  두명의 천재는 아마 공돌이 답게 같은 랩실을 썻을 것이며, 같은 밥을 먹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1996년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그들이 만든 최초의 검색엔진 백러브를 만들었다.

그리고 1997년 그들은 백러브를 좀더 개량한 검색엔진을 만들어 냈는데 처음에는 100의 100승 이라는 뜻. 즉 좆나게 많다는 듯의 구골 (googol) 이라는 단어를 쓰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googol.com 은 이미 다른 사람이 도매인을 선점하고 있었다. 어쩔수 없이 레리와 세르게이는 구골이라는 이름을 아주 약간 비튼 이름을 자신들의 검색엔진에게 붙여주게 된다.



구글


그렇다. 1997년. 현존하는 세계 최강의 그리고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이 탄생한 것이었다. 레리와 세르게이는 그들의 걸작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어렴풋이 예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IT 업계의 높으신 분들은 그들만한 안목이 없었다. 당시 대부분의 IT 업계는 검색기술 이란 것을 한물 간 기술로 생각하고 있던 터라 구글 이라는 새로운 검색엔진을 굳이 구매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어떤 IT회사 CEO는 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고객들은 검색 따위에는 관심 없습니다.

세르게이와 레리가 구글을 만든 것은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몇날몇일을 끙끙되며 만든 그 걸작을 돈도 안받고 헐값에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단 한곳. 구글에게 관심을 보인 기업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 역시 구글의 검색엔진을 비싼 값 주고 사는 것보다는 그냥 라이센스좀 주는 대신에 임대 하는것을 원했다. 그 회사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하지만 레리와 세르게이는 돈이 없었다. 그들은 돈을 꾸기 위해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야 했는데 그들이 돈을 꾸기 위해서 찾아간 사람 중 한명인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창업자 중 한사람. 안드레아 벡톨샤임은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지도 않은 체 그들에게 돈을 꾸어 주었다. 10만달러라는 거금을 말이다. 그 정도 되는 사람에게는 10만 달러라는 돈이 그리 큰 돈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 직감으로 구글이라는 검색엔진 기술의 가치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정도 돈을 선뜻 꾸어준 것이리라.

10만 달러를 빌리는데 성공한뒤 레리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버거킹에서 햄버거 파티를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구글의 두 창업자는 이곳저곳에 손을 빌려 1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마련했다.
마침내 1998년 9월 7일. 그들은 역사적인 첫걸음을 걷고야 말았다.
그 날은 검색엔진 구글이 아닌 회사로서의 구글의 탄생일 이었다.

그들이 회사를 설립하기 직전 담당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사업이 성공하면 좋지만 사업이 실패해도
그냥 대학으로 돌아오면 되. 너희는 천재잖아.


하지만 세르게이 브린과, 레리 페이지는 그리 안일한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단 그것은 단순한 돈 욕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다른 사업가들에 비해서 돈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자식과도 같은 세계 제일이라 믿어 자신하는 검색엔진 구글이 빛을 보지 못하도 묻히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구글이라는 검색엔진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욕심. 그것이 바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욕심 이었겠지.

우리집 어딘가에 굴러다니는 경품으로 얻은 창업지침서 (정가 1만 8천원) 에는 '사업하다가 안되면 ㅇㅇ 라도 하지 뭐.' 라고 말하는 사람은 결코 사업을 시작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 역시 경영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진지함' 이라고 못밖아 놓았다. 오늘날 가장 성공한 사업가 중 두명인 레리와 세르게이 역시 그러한 진지함을 분명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진지함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욕심 역시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여튼간에 1998년 켈로포니아 멘로파크에서
레리 페이지를 CEO 로 세르게이 브린을 사장으로 한 회사, 구글이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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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주랑
    ...........으음...재미있는 소설의 뒷페이지가 찢겨나가 못읽고 있는 기분이 드는군요. 이런거는 좀 한번에 기~~일~~게 연재가 되면 좋을텐데...요즘 인터넷문화가 긴 글은 안읽는 분위기라고 들었습니다...이래서 어렸을때부터 책을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라는건 쓸데없는 소리이고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글이 빨리 나오기를 기대해야겠군요!
    • 2012.03.17 13:08 신고 [Edit/Del]
      랄까나 글 읽는 사람을 읽어요. 인터넷 문화 떄문에 글 안읽는다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들리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애초에 긴 글 안읽는 사람들이에요.
  2. 아 언제 또 연재시작한겁니까 ㅋㅋ
    1편부터 달려야겠음
  3. 구글이 정말 대단하죠...
    만들어진것부터해서... 운영도
  4. 지나가던애
    보는내내 천제를 천재로 바꾸고 싶어 죽을것 같군요
  5. 아니 이런 글은 언제 올리신 거예요.
    이런 좋은 글은 저희 사이트에도 좀 올려주시지. ㅋㅋㅋ

    그나저나 이번 연재는 몇편까지 진행되나요.. ㅎㅎ 기대됩니다.
  6. 지나가던아
    보는 내내 재목을 제목으로, 끓어들인을 끌어들인으로 바꾸고 싶어 죽을 것 같군요.
    재미나서 그런 겁니다.
  7. 세인들의 평에 따르면 사업계획가 실행에 있어서는 ?? 나으며, 컴퓨터 공학자 본연의 능력 즉 코팅 실력 등에 있어서는 세르게이가 낫다고 한다.

    래리가 빠졌나 봐요. ^^
  8. 그리고, 대단한 정도가 아닌 우리나라 탑대학의 탑 클래스 학생들도 박사 지원시 떨어질까봐 원서 못 쓰는 학교입니다.
    물론 학부는 박사보다 쉽다고 하지만...

    아무리 학부라도 스탠포드를 글짓기로 입학하는 건.... 글쎄요...... 의심은 충분히 가질만 합니다.
  9. 불가리
    철자 참 거슬리네요. 천제가 아니라 천재, 재목이 아니라 제목 등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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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역사. <1> 인트로. 검색엔진이란 녀석의 위력.구글의 역사. <1> 인트로. 검색엔진이란 녀석의 위력.

Posted at 2012.03.14 06:15 | Posted in 기획특집


 

.인.뜨.로.

내 블로그 유입의 85%가 검색유입 이니만큼 당신 역시 네이버나 다음 혹은 구글 검색을 통해서 요 페이지를 보고 있을 가능성이 85% 이다. 당신은 나에 대해서 좆또 모르고, 나 역시 당신에 대해서 좆또 모른다. 당신은 그저 구글에 대한 정보, 혹은 다른 것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서 검색엔진 에다가 검색어를 입력했을 것이다.

당신이 입력한 검색어가 구글 혹은 구글과 관련이 있는 검색어던, 혹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검색어던 간에 당신이 사용하는 검색엔진은 당신이 원할 것으로 짐작되는 자료를 찾아 당신에게 리스트를 쭉 뽑아주었을 것이다.그리고 당신은 그 리스트 중 하나인 요 글을 클릭했다. 당신이 클릭 이라는 매우 수고스러운 행위를 했다는 것은 이 글이 당신에게 필요한 글일 가능성이 높다는 뚯이다. 이 글은 당신의 심심함을 잠시나마 해소시켜줄지도 모르고, 당신의 레포트에 약간이나마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당신은 나에 대해 모른다. 그리고 나 역시 당신에 대해 모른다. 당신과 나는 한국어를 쓴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 사람이다. 아니 그것조차도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당신은 구글 번역기를 돌리며 세계의 웹을 유랑하는 고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영어를 쓸지도 모르고, 일본어나 중국어, 혹은 프랑스어나, 스폐인어 아니면 포르투갈 어를 쓸지도 모른다.

아니 당신은 사실 지구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신은 크립톤 행성이나 사이어 행성 출신일지도 모르고, 명왕성인 혹은 안드로메다인 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어딘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은하계에 군림하고 있는 통합정보 사념체, 혹은 그 단말인 대 유기 생명체 콘택트용 휴머노이드 인터페이스 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나는 당신에게 한마디만 하겠다. 나카토짱 카와이~ 아 당신이 나카토 짱이 아니라 아사쿠라 짱이라면 미안하다.)




당신과 나는 아무런 접점이 없다. 하지만 ‘그녀석’ 때문에 아무런 접점이 없는 당신과 나는 이렇게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는 글을 보아서 좋고, 나는 한명이라도 더 내 글을 읽으니까 좋다. 혹 당신이 구글 애드센스라도 클릭해서 내게 푼돈이라도 안겨주거나, 덧글이라도 달아줌으로 해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의 추가적인 정보공유라도 하도록 한다면 나나 당신이나 더욱 좋다.

뭐 당신이 구글 애드센스를 클릭할지, 덧글을 달아줄지 아니면 그냥 이 글을 다보고 뒤로가기를 누를지, 최악의 경우에는 ‘이거 뭐야!’ 를 속으로 외치며 글을 다 읽기도 전에 뒤로가기를 누를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아무튼 간에 그 모든 것은 바로 검색이라는 녀석을 통해서 이루어 졌다. 몰론 아닐 가능성도 15% 정도는 존재하긴 한다. 내 블로그 방문자수의 15%는 검색이 아닌 다른 경로이니 말이다.

하지만 당신은 85%의 확률로 ‘그녀석’ 을 통해서 이 글을 보고 있다. 그녀석의 이름은 검색이다.
검색이라는 녀석은 대단하다. 검색이라는 녀석은 엄청나다. 모르긴 몰라도 검색은 근 20년간 인간이 발명한 것 중 10 손가락 안에 드는 대단한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거기에 내 10손가락을 걸으라고 한다면 걸 수 있다. 몰론 그 내기를 하는 사람 역시 내 10손가락에 상응하는 물건을 걸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많은걸 바라지는 않고, 현찰가치 100억달러 이상의 것이면 된다. 1000일 정도 정진하면 5서클 정도의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서나, 미래에서 온 미소녀 안드로이드(카메론 필립스 정도의 성능) 같은걸 걸어도 대환영이다.  내 손가락은 소중하니까 손가락을 만들어 달 수 있는 대체기술이 계발되기 전까지는 말이지

단 검색엔진이 20년 안에 만들어지지 않았을 경우는 재외한다.

하지만 그 20년이 체 되지 않은 역사 동안 검색엔진 이라는 녀석은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가령 한국의 네이버를 보자. 한국인 치고 네이버를 쓰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인구는 5천만 명이다.
아직 정신세계가 형성되기도 전의 꼬꼬마 들하고, 정신세계가 급속도록 붕괴중인 (아마도 새누리당을 찍을 것으로 추정되는) 치매걸린 노친내들 합해서 5천만 명이다.

하지만 하루에 네이버에 들어오는 사람의 수는 3천만명이다.(…)

몰론 그 중에서는 중복해서 들어오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다. 아침에 자기 IP로 들어오고, 점심 먹다가 스마트폰 으로 들어오고, 오후에 도서관 컴퓨터로 들어오고, 야밤에 PC방 컴퓨터로 들어오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 하더라도 한국인의 절반 가까이, 혹은 절반 이상이 오늘도 네이버에 접속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꽤나 보수적으로 계산 하더라도 말이다. 네이버는 그야말로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그 옛날 조중동의 권력은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옛날 조중동 권력도 지금의 네이버의 권력에 비하면 작다. 지금의 네이버는 KBS, MBC, SBS 그리고 조중동이 가진 것과는 다른 어딘가 다른 차원의 것이다. 만일 당신이 한국의 정치인이라면 당신은 속히 네이버를 평정해야 할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네이버의 뉴스 링크를 닫을 수 있고, 그로 인해 네이버를 대중들과는 거리를 둔 체 알바와 디시충이 섞인 이들만 네이버 덧글을 달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리고 혹시나 네이버 뉴스에 들어온 지나가던 사람 1은 네이버 뉴스의 덧글을 보고 그게 여론이라고 착각할 거다.

지나친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몰론 한국의 정부는 네이버를 평정하는 독재 비스무리한 일 따위는 한 적이 없다. 그리고 네이버는 뉴스 링크를 닫지도 않았고, 그로 인해 네이버의 여론이 획기적으로 변하지도 않았다. 이건 그냥 말 그대로 예를 든 것일 뿐이다. 철저한 거짓이다. 아 참고로 이명박이 남자란 것도 거짓이고, 당신이 있는 행성의 이름이 지구란 것도 거짓이며, 1, 2 다음의 숫자가 3 이라는 것도 거짓이다. 사실 1, 2 다음에 오는 숫자는 9이다. 이는 네이버가 평정되지 않았다는 말 만큼이나 확고한 사실이다.

-다음의 경우에는 현 대표이사인 이재웅일 비롯한 간부진이 도덕적인 사람이기에 그나마 네이버 보다는 나을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하는 짓거리를 보면 그리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네이버 보다는 낫다. 하는 딱 그정도의 수준이다. 한국의 초록색 정당의 도덕성이 딱 파란색 정당(얼마전에 분홍색으로 바꾸었지만) 보다 났다. 정도의 수준이듯이 한국의 파란색 포털의 도덕성 역시 딱 초록색 포털 보다 낫다. 정도의 수준이다.-




한국 최대의 검색엔진인 네이버가 이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세계 최고의 검색엔진인 구글은 어느정도일지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보다 구글의 권력은 별거 없다. 아니 사실 구글의 권력이 별로 없다기 보다는 구글은 어마어마한 권력을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악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래도 한국보다는 비교적 선진국인 미국이니 만큼 그런 것을 용인하지도 않을 것이며, IT 업계에 부정적인 기독교가 아직까지도 세력이 지대한. 인간이 흙으로 빚어져 창조 되었다는 판타지 소설을 진심으로 믿는 녀석들이 있는 미국이니 만큼 구글을 주시하는 눈 역시 상당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천주교에서는 그 소설 그냥 소설이라고 인정하는 쪽으로 가고있다.)


미국의 똑똑이들이건 아메바 수준의 지능을 가진 멍청이 들이건 구글을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애초에 구글이라는회사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Don't Be Evil [사악해지지 말자]


몰론 이 말을 대놓고 믿는 것도 바보짓이다. 구글 역시 얼마든지 돈 앞에서는 사악해 질 수 있다. 구글 역시 위치정보 전송으로 홍역을 치른 적이 있고, 구글의 창업자 레리와 세르게이의 멘토였던 스티브 잡스가 사실상 개척한 것이나 다름없는 스마트폰 시장에 무혈입성 했으며 (여기에 대해서 애플빠의 편협한 시선이라고 평할 분들도 있을거다. 나 애플빠 맞다. 하지만 최소한 잡스 보다는 레리 세르게이가 도덕적인 사람이란것 정도는 인정한다.), 자사의 SNS 를 출시하면서 트위터, 패이스북 등의 SNS 기업과 대놓고 대립각을 새우고 있다.

하지만 구글 트렌드 같은 혼자서 독점하면 진짜 재미있는 돈벌이가 생길 것 같은 정보를 쿨하게 공개하는 것을 보면 구글은 역시 악 보다는 선에 가까운 기업이다. 그리고 그 구글을 새운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역시 선에 가까운 사람들이며 영웅이다. 그리고 구글을 새우지는 않았지만 구글을 이야기 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한명인 에릭 슈미트 역시 마찬가지다. 설령 좋은 남자는 아니었을 망정, 좋은 CEO 이고, 영웅적인 CEO 이다. (에릭 슈미트는 본인의 바람으로 인한 이혼 소송으로 진땀을 빼고 있다.)




구글의 3영웅이나, 잡스, 빌 같은 사람들이 있으니 만큼 조지W부시나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이 윗대가리를 차지하는 상황에서도 미국 이라는 나라가 그럭저럭 강대국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아닌지 싶다. 뭐 여튼 간에 그래서 지금부터 약 5화나 10화 완결로 구글의 역사에 대해서 썰을 풀어보려고 한다. 뭐 아무쪼록 잘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래에 있는 손가락 버튼 눌러 주었으면 더욱 좋겠다.


신고
  1. 집에 널려있는게 구글 관련 도서들인 만큼 구글에 대한 관심이 많은 입장에서 매의 눈으로 보겠어요 (?)
  2. 미주랑
    ....구글의 역사라...스티브 잡스만큼이나 기대가 됩니다. 좋은글 바래봅니다.
  3. 쭉 읽다가 맨 아래에 있는 글을 보고 얼떨결에 눌렀어요. ^^
  4. 미주랑
    .....댓글 확인겸 다시 읽어보는데.......왜 난 절반 이상이 이해가 되는걸까....그리고 머리랑 아래를 바꾸셨군요.

    이뻐~
  5. 아즈
    구글의 영향력 무섭죠...
    역시 우리나라에서의 네이버의 영향력....무섭죠....
    네이버는 검색 결과에 손을 대는 것 같아서..ㅋ

    울 나라가 한글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망했을 겁니다...네이버는...
    • 2012.03.14 22:03 신고 [Edit/Del]
      랄까나 울 나라가 한글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굳이 네이버라는 기업이 생길 필요가 있었을 까요. 야후 쓰다가.. 구글 썻겠죠 ㅎㅎ
  6. 음...
    글에서 좆이 나오는 건 좀.. 그래요~.
    제가 할 땐 모르겠는데, 다른 이가 이 단어를 쓰면 좀.. 상당히 거북스럽더라구요.
    특히나 여성 성기를 뜻하는 단어를 쓸땐 좀.. 더 그렇구 말이죠.

    그래서.. 그래서, 추천 안 드릴려구 했었는데...
    이미 추천누르고 글을 읽었단 생각이 스치고...
    음~

    근데, 제가 표현(?)할 땐 괜찮다가도 남이 하면 그리 불편한 이유가 뭘까용? @,.@
  7. ..댓글 달기 시작한 지 일주일 째, 나는 무엇일지 아닐지 모른다. 현실 생활에 충실한 댓가로 인터넷 세계에 대해 소홀해지는 만능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아직 패턴은 정해지지 않았다. 정형화되는 것은 재미없지만 재미를 쫓아 사는 사람인만큼 릿찡님의 글을 팬 수준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음.., 이미 팬이었지, 후일을 기대만땅하기 시작했다,ㅋㅋ-이런체도 재밌나요?O?
  8. 한국 기업이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생각의 틀을 깨야 할 것 같습니다.
    네이버가 잘하고는 있지만 글로벌 스텐다드가 아니듯..

    지금 잘나가는 상황과 로컬시장에서의 성공을 외곡시켜 해석하고 그것을 영위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아쉬울때가 있어요. 좋은 지적과 비평을 적어주셔서 오늘도 한번 깊이있는 생각하다 가네요. ㅎㅎ

    남은 하루도 즐거운 시간보내세요.
  9. 정신세계가 급속도록 붕괴중인 (아마도 새누리당을 찍을 것으로 추정되는) 치매걸린 노친내들 합해서 5천만 명이다.
    당신이야 말로 정신이 임계치에 다달았군요

    내 클릭
    :클릭
    빼줘세요
    :클릭으로 가
  10. 으휴 보나마다 아이폰들고 지하철에서 애니나 주구장창보는 넘이렸다.
    문재인안되서 섭해서 어쩌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1.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도구, 손가락은 소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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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ro스티브 잡스 이야기 9. -잡스 사망. 그리고 그 후The Hero스티브 잡스 이야기 9. -잡스 사망. 그리고 그 후

Posted at 2011.11.11 06:00 | Posted in 기획특집
 


영웅의 죽음


잡스가 사망한 날. 아직도 그날이 내 뇌리에 남는다. 몰론 아직도 그날이 생생한 이유는 그 날이 비교적 최신이기 때문 이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기일은 2011년 10월 5일 이었다.
 
지금으로부터 한달전. 그리고 내 양력 생일 3일 전이다. 그 외에 10월 5일은 원피스의 마르코와 러브 플러스의 미나카가 태어난 날이기도 하다. 이딴 이야기나 쓸 만큼 10월 5일은 특색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그 날에 죽음으로 해서 10월 5일은 비로서 하나의 특색을 가지게 되었다. 잡스가 오프라인 세상에서 로그아웃을 한 날이라는 특색 말이다.

사인은 지병인 췌장암 이었다. 잡스의 췌장암은 수술이 가능한 특이한 췌장암 이었지만 그마저도 죽음을 3년 정도 늦추는 것에 불과했다.
하기사 모든 병은 죽음을 정복하는는 것이 아닌 죽음을 늦추는 것에 불과 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스티브 잡스가 죽었을 때의 나이는 56세. 이 시대에 50대면 아직 한창인 나이다. 너무나도 아깝다. 그가 더 살았다면 더욱 많은 것을 보여주었을 텐데 말이다. 너무나도, 너무나도, 너무나도,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다.




잡스는 인생의 최후반기 그동안 자신이 보여주었던 것 이상의 것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러면서 그는 조금씩 죽어갔다. 2000년 7월 잡스의 사진을 보면 쿵푸팬더의 팬더마냥 살이 올라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살이 빠져나간다. 아래의 사진은 한 언론사가 2011년 입수한 잡스의 사진이다. 그 당시에는 조작사진 이라는 의견이 대세였지만 잡스가 결국 세상을 떠난 지금에 와서는 진품일 확률이 높아진 사진이다.

잡스가 죽었다.

애플빠들은 교주를 잃었다고 세상은 말한다.
애플빠들은 무기력 해질거라고 병신은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원피스와 잡스.


만화 원피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화 보는 애들 보고 더러운 오타쿠라고 하는 놈들도 원피스는 본다. 그만큼 원피스는 대중적인 만화다. 원피스에서는 시대의 전설급인 인물로 '골D로져' 그리고 '흰수염 애드워드 뉴게이트' 가 나온다. 이들이 죽었을때 원피스 세계관 내의 로져빠, 흰수염빠들은 어떤 짓을 했는가?
우리 로져느님이 죽다니 하면서 의기소침했는가?

결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제2의 골D로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바다로, 바다로 나섰다.
그렇게 원피스 세계관 내에서의 난세. 정부의 권력보다 도적의 힘이 더욱 강한 시대 대해적 시대가 시작되었다.


토막상식 원피스 세계관의 세력비.
혹시 해군본부가 흰수염 해적단을 이겼다는 것으로 원피스 세계관 내에서 정부가 킹왕짱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다. 몰론 단일 세력으로는 세계정부가 가장 강한 세력이 맞다. 하지만 흰수염이 가지고 있던 힘이 원피스 세계관의 해적이 가진 모든 힘은 아니다. 흰수염은 4황이라 불리는 4명의 거대 해적 중 톱일 뿐이다.
만일 흰수염 해적단 그리고 사황의 다른 일원인 샹크스의 붉은머리 해적단이 연합을 해서 해군본부에 쳐들어 갔다면 오히려 당하는 쪽은 해군본부가, 더 나가서 세계정부가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재로 흰수염 해적단과 붉은머리 해적단의 동맹은 세계 정부에게 큰 위험이 된다는 묘사가 작중에 나온다.



로져의 죽음은 되려 제2의 로져가 되려던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흰수염이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잡스에 열광했던것은 그냥 잡스가 예쁘고 쌔끈한 물건을 만들어서가 아니다. (몰론 그거 때문에 열광하는 님들도 있긴 할거다) 오로지 열정 그리고 일신의 능력만으로 개인용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의 개념을 창조해가며 시대를 바꾸어간 그 모습에 반했던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나는 잡스 처럼 될 거다."

원피스 식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해적왕이 될 남자다!"

그 자격이 없다고? 하긴 그딴 생각이나 하고 있으면 그거야 말로 자격이 없는거다. 초창기의 루피가 어떠 했는가? 그야말로 4개의 바다 중에서도 가장 약한 바다인 이스트블루에서나 놀고 있던 몸이었다. 그가 그랜드 라인에 들어갔을때 크로커다일이라던지 하는 현실론자들은 해적왕 이라는 루피의 꿈을 비웃었다.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이 바다를 깊게 아는 자일수록 그런 말은 함부로 담지 못한다."

하지만 로져는 뭐 처음부터 해적왕 이었는가? 역시 이스트블루에서 뒹굴걸이던 백수(?) 였다.
현실로 돌아가면 잡스는 뭐 처음부터 세상을 바꾼 남자였나? 하피문화에 흠뻑 젖어있던 잉여 였다.



몰론 루피는 악마의 열매 능력자다.
하지만 그가 악마의 열매를 먹지 않았다면 바다에 나가지 않았을까?
설령 죽는다 하더라도 나갔을 것이다.
실재로 이자식... 꿈과 목숨의 무개 중에서 꿈이 더 무겁다고 생각하는 녀석이다.

만일 우리도 루피처럼 원하는 것을 위해서 목숨을 걸 각오가 있다면 저 바다에 나갈 자격이 있는 것이다. 아 몰론 그러기 위해서 군자금 부터 모아야 되겠다. (세상은 원레 이런겨 ...) 일단 1억 정도는 모와두기 바란다. 컴공과 라던지 그런쪽에 나와다면 자기 기술만 가지고도 뭐라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뭐...;;; 세상은 돈이야! <<분명 잘 나갔던거 같은데 왜 문장이 이따구로 진행될까...



잡스 이후의 애플


잡스 이후의 애플을 논하는 것이야 말로 이 글의 본편이다. 내 의견이 아닌 세계 최고의 IT 블로거 '호레이스 데디우' 의 의견은 이렇다.

"잡스 이후에도 애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애플은 잡스의 최고의 발명품이다."

이 빠심이 잔뜩 들어간 한마디를 분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잡스는 이미 죽기 전부터 자신이 없더라도 애플이 여전히 창의적이고, 여전히 혁신적이고, 여전히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시스템과 문화를 장착시켰다는 이야기 이다. 실재로 잡스는 죽기 3, 4 개월쯤 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장 내가 교통고로 죽어도 애플은 돌아갈거임."

실재로 애플은 잡스가 죽은 뒤에도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폰4s는 휴대폰 역사상 제일 이라고 할 정도로 잘 팔리고 있고, 애플의 주가 역시 잡스가 죽기 전보다 오히려 지금이 훨씬 더 높다. 애플의 현 시가총액은 377.5십억 달러로 구글에 삼성전자를 합한 것 이상의 금액이다. 애플보다 시가총액이 높은 기업은 전 세계를 통틀어서 엑손모빌 단 하나뿐이다. 엑손모빌의 현 시가총액은 282.3십억 달러다.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보다 1.65배 비싸다.
애플은 삼성그룹 전체 보다 1.68배 비싸다.
애플은 구글보다 1.7배 비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잡스가 없는 것이 애플에 아무런 타격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창의성이 애플의 발목을 잡을수 있다.
몰론 애플은 잡스가 없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업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잡스가 보여준 그 통찰력.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사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무엇을 원할지 생각해서 재품을 만드는 잡스 식의 통찰력을 애플의 남은 인원이 보여줄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한 대답은 회의적이다.
잡스의 천제성을 대체할 만한 것은 없다.

한 5년 ~ 10년 정도는 생전 잡스가 남겨놓은 유산을 사용해서 어찌저찌 버틸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잡스의 약발이 떨어진다면 애플은 그저 그런저런 기업. 돈 많고, 브랜드 가치 높고, 돈 잘버는 그저그런 1류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몰론 애플 내에서 잡스 만한 천제가 다시금 나와준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뭐 쉬운일인가 (...)


그리고 또한가지 걸리는 점은 신임 선장인 팀쿡의 리더쉽이다. 팀쿡은 잡스 만큼의 카리스마를 가지지 못한 인물이다.

 



팀쿡이 아이폰4S 에 대한 프레젠 테이션을 했을 때 그는 잡스 만큼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의 설명은 단조로왔고, 핀트가 어긋나 있었다. 그는 그저 아이폰4S의 스팩만 설명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팀쿡의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실망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올라온 기사를 보고 하루종일 의기소침했다. 그 다음날은 10월 5일 이었다.)

만일 잡스였다면 별로 의미 없어 보이는 스팩을 설명하는 대신에 개인비서 SIRI에 대한 설명을 중시했을 것이다. 실재로 아이폰4S에 대한 리뷰 중 상당수가 SIRI에 대한 리뷰이다. 하지만 팀쿡은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시리에 대해서 잡스만큼 맛깔나게 말할 자신이 없는 나머지 그냥 스팩이나 옮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2인자로서의 팀쿡의 능력은 검증받았다. 하지만 1인자 로서는?
아직까지는 실망스럽다. 몰론 추후 팀쿡이 카미나 사후 시몬의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애니메이션 <<천원돌파 그랜라간>> 중
그랜단의 2인자 이기는 했지만 카리스마는 전무했던 주인공 시몬은
의형제이자 1인자인 카미나가 죽은 뒤 좌절해서 자기 일도 재대로 못하면서 조직에서 쩌리가 됬다.
하지만 조직 전체가 위혐에 쳐하자 각성하여 모두에게 1인자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길게 놓고 두고 볼 일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잡스 말고 애플의 정신적 지주가 될 만한 사람을 애플의 회장직으로 모셔오는 것도 괜찮다. 마침 적당한 사람이 한명 있다. 워즈니악 이다.



영국 고대의 영웅 베오울프는 50명의 전사의 힘을 가지고 있다.
워즈의 엔지니어 능력 역시 50명의 엔지니어의 능력 이라고 한다.

 

실재로 워즈는 지난 4월 애플로의 복귀 의사가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리고 잡스 역시 죽던날 워즈에게 애플로의 복귀를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만일 워즈가 애플에 복귀 한다면 그에게 단순한 엔지니어 일을 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몰론 워즈는 뛰어난 엔지니어 이다만 직책의 문재이다. 워즈가 엔지니어를 하던, 코드작성을 하던간에 그의 직위는 '회장' 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만일 그가 애플에 복귀한다면 애플에서 근무하는 수많은 공돌이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줄 것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권위가 부족한 초임 CEO 팀쿡을 지지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워즈와 팀쿡의 의견이 따로 논다면 그것은 아마 재앙일 것이다.

애플의 사원들은 자신들의 톱이 워즈인지 쿡인지 갈팡질팡 할 것이며 어쩌면 양측으로 갈려서 분열할 지도 모른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찍어 누르더라도 잡스 VS 스컬리 시즌2를 찍는 것이니 결코 좋지 않다.



결론 없는 결론


잡스가 없다고 해서 세상의 혁신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혁신을 누가 일으킬지는 아직가지 모른다. 마크 주카버그가 그 주인공일 수도 있고, 아마존의 CEO가 그 주인공일 수도 있으며 제3의 인물이 그 주인공일 수도 있다.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온갖 언론들은 마치 자신이 안다는 듯이 포스트 잡스는 누구인가? 하는 재목의 99%의 선전성과 1%의 내용으로 이루어진 기사를 작성할 것이다. 그리고 나도 정 때울 포스트가 없으면 그딴 포스터나 작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글의 결론은 뻔하다.

아직은 모른다.

그렇다 아직은 아무것도 알수없다. 그저 그냥 이 너무나도 재미있는 시대의 흐름이나 지켜보고 있다가 무언가 돈푼이나 벌 기회가 있으면 그 기회나 잡으면 될 일일 것이다. 굳이 결론을 내리자면 역시나 세상은 돈이 전부~! 이려나... 근데 지금 이시대는 자본주의 아닌가? 자본은 곧 돈이다. 이 시대는 돈의 시대다. 쉬쉬 하기는 하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 돈 가지고 안 되는거 별로 없다.

결론은 돈이다. <<응?!




PS - 오타는 그냥... 컨샙이라고 칩시다. 5년 가까이 오타 문재로 속 썩이니 이재 고칠수 있을거란 희망도 버렸어요 ;;;


신고
  1. ㅎㅎ 릿찡님 또 이렇게 연결지어주셨네요~ ㅎㅎ 역시 센스 최고세요 ㅎㅎ
  2. 2인자를 키워주고 돌아가셨으면 좋았을 것을...아~. 아쉽움이 좀 남습니다. 워낙에 시대의 영웅처럼 묘사되었던 인물이라서 마이클 조던의 뒤를 이를 사람이 없던것 처럼 그 차이가 컸던 것일까요? ...
    • 2011.11.11 16:20 신고 [Edit/Del]
      쩝. 팀쿡은 관리 라는측면에서는 잘 해줄 것입니다. 비록 잡스와 같이 되지는 못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제국인 애플을 운영하는 일은 그럭저럭 해날 것입니다.. 아마도
  3. 정말 안타깝습니다.ㅠㅠ
    놀러다니다가 왔습니다.
    처음뵙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종종 놀려올께요.
    좋은날 되셔요.
  4. 5년 가까이.., 오타,ㅋ 그게 릿찡님의 매력이니까,(언어가 전달되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냥~!!!!!)
    ..저 어쩌면 초호화 유람선 탈지도 모르겠습니다,(안 돌아가도 된다고해서;;)^^

    원래 1인이 빛나려면 주변이 다 죽어나가는 법이거든요,

    인재 하나 키우는 것은 그런 법이랍니다, 1:000의 법칙이랄까요?
    그니까.., 뭐 한동안은 괜찮을거야,ㅋㅋ
    (왜 제게 엑박이~!! 릿찡님 그림선정센스 좋은데..ㅠㅜ)
  5. 대단한 인물인거 같아요..
    재미있게 잘읽고 갑니다..
  6. 미주랑
    ...음 저만 그런가요 안타깝게도 사진이 안보이는군요. 드디어 길었던 스티브 잡스이야기가 끝이 났네요.

    잘 읽었고 덕분에 현시대의 대단한 인물을 한명 알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오타는...이젠 귀여운데요?(어이 위험발언)
    • 2011.11.11 16:18 신고 [Edit/Del]
      아니 님만 안보이는 것 같지는 않네요. 에구궁. 어딘가 오류가 있는거 같아요. 확실히 사진 오류에 비하면 오타는 귀여울지도 <<응?!
  7. 용새끼
    아 원피스랑 연결하셨네요 ㅋㅋㅋ 좀 오글ㅋㅋㅋ여튼 잘보고갑니다
  8. 충격요법 좀 쓰께요~ ㅋㅋ
    릿찡 찌질아!
    맞춤법에 왕도는 없다!
    또한, 그 누구도 완벽히 맞춤법 맞춰 글 쓰는 양반 본 적 없다!
    다만 끝까지 오타를 고치려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글쓰는 그 날까지 노력해라!
    말 안들음.. 죽기전에 해머꿀밤 맞는다!
    .
    .
    .
    어떤 교?
    충격 좀 받았는교?
    뭐시라? 충격이 전혀 안 와?
    그래?.. 그럼 뭐.. 사람 불러야대~, 사람~
    • 2011.11.12 12:39 신고 [Edit/Del]
      흠.... 왕도는 없는 것인가.
      근데 맞춤법을 만약에 고쳤다면 아마 블로그 시작 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름. 지금쯤 어딘가의 땅꿀에서 땅굴을 좀더 풍성하게 만들 방법이나 강구하면서 (방법만 새악하면서 ;;;) 살고 있었을지도.

      여튼간에 이번 겨울에는 고치도록 노력 해야겠듬요.
  9. 번외로...
    일본애니메이션을 보면, 아주 충~실히 거시기.. 세계 돌아가는 걸 반영했단 걸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원피스도 그렇다 생각해요~
    다른 애니도 그렇고...

    그렇게 보자면,
    세계정부니 뭐니 하는 것들..
    아니, 전에 나디아에서도 이에...

    쉿~
    너무 많은 걸 까발리면 쥐도새도 모르게...
    ㅋㅋㅋ
    • 2011.11.12 12:40 신고 [Edit/Del]
      모든 애니가 그런건 아니에요. 원피스 정도 되니까 그런거지... 나디아라. 하지만 나디아에는 한가지 오점이 있죠.

      안노 히데야키 왈.

      가고일 그새끼들은 왜 세계정복 하려고 난리임. 그런 끝네주는 기술력 있으면 지들끼리 잘 살고 말지 (...)

      감독이 저말을 하고 있으니 ;;;
  10. 스톤콜드
    조나단 아이브는 잡스하고 비슷한 디자인감각을 가졌다고(잡스가 자기의 소울메이트라고 했다던가?) 팀쿡은 살림꾼이니 둘이 잘 맞아 돌아가면 계속 잘나갈수 있지 않을까? 근데 아이폰 4s는 반응이 신통치 않다고 하는 기사도 있던데여...
    • 2011.11.12 12:41 신고 [Edit/Del]
      랄까나.... 아이폰 한국서 11월 11일날 출시되었고, 현재 50만~80만 예약 되었다고 추산되고 있습니다. (...) 한 1주일 쯤 지나서 그런 기사가 올라왔다면 고려해볼 가치라도 있겠지만 그건 언플입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는 제고가 거의 없는 수준이고요
  11. TN
    엑박엑박[중얼중얼]...뭐랄까 저는 정작 외국에 있었지만 4s가 출시된지도 몰랐습니다[]그러고 잡스옹돌아가시고 그후로 애플스토어에서는 잡스옹추모하기에 iSad, 학교에선 스티브잡스 붐!이 잠깐 일어났었죠. 뭐랄까 다만 이번에 삼성님이 넥서스랑 노트를 동시에 발표하시는거 보면, 잡스의 카리스마와 능력이 없는한 무조건 1위의 판매량/회사가 되기는 간당간당할것같습니다; 하지만 아마 애플이 이번 4s로 충전완료 하고 잡스의 그림자없이 다시 예전처럼 선다면 그건또 누구도 모르는 이야기...겠죠...
    +그나저나 잡스옹 가시기전에 세계적인 스맛폰 배틀을 시작하신.......4s vs 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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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ro스티브 잡스 이야기 8. -잡스 정상의 자리에 서다!The Hero스티브 잡스 이야기 8. -잡스 정상의 자리에 서다!

Posted at 2011.11.05 06:00 | Posted in 기획특집




아이폰

현재 애플의 브랜드 가치는 매우 높다. 코카콜라를 뛰어넘는 브랜드가치, 즉 세계 1위의 브랜드 가치를 애플이 가졌다는 조사도 있을 정도다. 몰론 그것은 애플에게 우호적인 조사의 이야기이다. 솔지히 까고 말해서 애플 이라는 브랜드의 인지도는 아직 코카콜라 만큼 높지는 않다.

그러한 애플의 브랜드가치를 높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를 한 상품. 우리가 애플 하면 딱 이거! 하고 떠오르는 상품이 바로 아이폰이다. 아이폰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핸드폰이다. 그리고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잘나가는 핸드폰이다. 지구에 있는 모든 핸드폰 회사가 핸드폰으로 벌어들이는 돈의 60%가 애플이 아이폰으로 벌어들이는 거다. 그나마 아이폰 버전이 늦게 나오고, 삼성이 좀 잘나가는 통에 60%로 떨어졌지만 올 초까지만 하더라도 70% 였다.

하지만 잡스의 원래 계획은 이정도로 크지 않았다. 잡스는 전체 핸드폰 시장에서 1% 정도의 점유율을 기록하면 성공 이라고 생각했다.

애플의 현재 핸드폰 시장(스마트폰 시장이 아니다) 점유율은 약 5%다. 애플은 그리 점유율이 높지 않다. 하지만 애플은 그 5%의 점유율로 전체 핸드폰 시장의 돈의 70%를 쓸어 담고 있다. 만일 애플의 계획대로 1% 정도의 점유율만 유지했다 치더라도 애플이 쓸어담는 돈은 핸드폰 시장의 13% 이상이다. 잡스가 아이폰에게 원한 것은 대중성이 아니였다. 바로 최고급 이었다. 아이폰은 본디 상위1% 만의 핸드폰 으로 설계된 물건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원래의 계획은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면 계획 역시 바꾸는 것이 좋다.
그걸 못한 히틀러는 백수시절 계획한 세계정복 플랜되로 러시아를 침공했다.
그리고 깨졌다.



2007년 6월 29일 세계 핸드폰 시장의 역사를 다시 쓸 그 재품이 탄생하였다. 사실 아이폰이 최초의 스마트폰 인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폰이 없었으면 스마트폰 이라는 아이디어는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전에도 터치로 작동하는 폰이나 모바일 기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격은 더럽게 비싼 주재에 감압식 터치 시스템은 한 6개월 쓰다 보면 터치가 제대로 안먹혔다. 더군다나 가만히 침대에 누워서 편안하게 인터넷을 서핑할 정도로 인터패인스가 좋지도 않았다. 그냥 터치가 되는 폰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폰은 달랐다. 아이폰은 개떡같은 감압식이 아닌 정전식 터치를 썻다. 정전식 터치는 손가락 두개를 사용한 조작이 가능할 뿐더러 감압식 보다 잘 안망가 진다. 오늘날 감압식 터치를 쓰는 스마트폰이 없다는 것만 하더라도 정전식이 감압식에 비해서 우수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세대의 아이폰. 색깔은 저거 하나였다.
오늘날의 화이트와 블랙이 반반씩 섞인 느낌이다.


아이폰은 최고의 mp3 이기도 했다. 아이폰은 동 시대에 발매된 아이팟 터치 1세대에 있는 기능이 모두 있었다. 그 전까지의 mp3 기능을 하는 핸드폰이 핸드폰 에다가 mp3 기능을 약간 붙여넣은 정도였다면 아이폰은 역으로 mp3가 전화 통화가 되게 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아이폰은 mp3를 뛰어 넘은 물건이었다. 아이폰은 전화다. 즉 무선 통신이 된다. 즉 무선 인터넷 역시 가능했다. 그 전까지의 쪼만한 화면의 시시한 무선 인터넷이 아니었다. 모바일 전용 패이지 뿐만 아니라 컴퓨터 패이지 까지도 탐색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폰의 화면 크기는 컷다.

음악을 듣는일.
동영상을 보는일.
인터넷 서핑을 하는일.

이 세가지에서 아이폰은 최고였다. 최고의 최상의 극상의 모바일 기기였다. 하지만 아이폰이 당시 핸드폰 시장의 강자였던 노키아나 삼성전자의 자리를 위협할 거라고 보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목표가 점유율 1% 짜리 스마트폰 이었다. 하지만 노키아 수뇌부 에서는 자신들이  못 만들던 이상적인 스마트폰을 애플이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 큰 충격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겉으로는 아이폰이 자신들을 위협하지 못한다고 말한 노키아 였지만 속으로는 그것이 아닌지 노키아 간부중 한명은 자신의 집에 아이폰을 가져왔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함 이었다. 아이폰에 관심을 보인 것은 그 중역 보다도 중역의 딸이었다. 중역은 딸에게 아이폰을 가지고 놀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밤이 되자 딸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이 요술 전화기를 베게 밑에 넣고 자도 되요?"

이때 노키아의 중역은 소름이 돋았다. 자신의 회사가 몇년후 망하니 마니 할 정도로 위험헤 진다는 것을, 그리고 그 위험의 원인은 딸이 말하는 요술전화기. 즉 아이폰일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아이폰1은 성공적 이었다. 원 목표였던 1%의 점유율은 그럭저럭 차지했다. 하지만 원하는 정도의 수익은 얻지 못했다. 그것은 애플이 휴대폰 시장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보조금 이었다. 보조금은 휴대폰 시장의 수익 구조에서 상당히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하지만 그것은 초창기 아이폰의 이야기일 뿐이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애플은 수많은 핸드폰 회사 중에서도 보조금을 가장 많이 받아먹는 회사에 속한다. 애플의 영업이익률이 무지막지하게 높은 이유 중 하나도 이 보조금 때문이다. 몰론 아무 기업이나 따라해 가지고는 안된다. 스마트폰 이라는 분야에 한정에서는 그야말로 절대적인 브랜드가치 조사에 따라서는 세계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가졌다고 판단되는 애플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어찌 되었던 간에 아이폰은 핸드폰 시장의 패러다임 그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노키아와 LG는 애플 이라는 폭풍에 쓰러졌다. 블랙베리의 림 역시 엄청난 고전을 하고있다. 삼성의 경우에는 그나마 대처를 잘했기에 살아 남았는데 삼성이 애플의 핵심 부품업체 라는 점도 애플을 따라하기에 유리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삼성이 배꼇네 뭐네 하면서 욕할 일은 아니다. 삼성이 한 일은 비도덕 적인 일이 아닌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빨리 애플을 따라하지 못하고 팅자팅자 놀다가 유상증자 1조원 하는 캐막장의 상황까지 온 LG가 나쁜거다. 내가 삼성 까이기는 하다만 만약 삼성이 LG 꼴이 나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되긴 뭐 어떻게 되냐... 제2의 IMF 가 벌써 왔을 것이다~.

잡스도 말했다. 훌룡한 예술가는 배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홈친다.
빨리 대응하지 못한 노키아와 LG는 예술이고 자시고 간에 지금 회사가 완전 맛이 가버린 상태다.



차라리 노키아는 윈도우폰에 최후의 희망이라도 걸어볼 수 있으련만
LG 전자는 답없다. 세탁기? TV? 모니터? 에어컨?
모두 3~5년 안에 대륙에 장악되기 딱 좋은 상품들이다.


본격적인 잡스 신드롬이 이때부터 불기 시작했다. 이떄부터 애플빠가 된 얼치기들도 많으며 본인 역시 그러한 사람 중 한명이다. 하지만 본인은 최소한 잡스 사후의 애플을 걱정하는 워즈니악의 논평을 보고 "저 듣보잡 뚱떙이는 누군가요?" 를 외치지는 않는다. 워즈니악을 듣보로 알고, 잡스만을 오직 최고로 아는 애플빠돌이 무리들. 그러한 무리들은 이 시기에 탄생했다. 

ps- 워즈니악의 저러한 논평은 애플의 회장직을 자신에게 달라는 말로 풀이된다.
      실재로 잡스는 죽을때 까지 워즈가 돌아오기를 원했고, 워즈 역시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리고 워즈가 애플에 돌아온다면 그가 맡을 위치는 회장직이다.
      50명분의 일을 하는 천제 기술자로서 그리고 IT업계의 래전드로서 그는 정신적 지주가 될것이다.




아이패드



잡스가 내놓은 역작으로 아이패드 역시 빼놓으면 안될 것이다. 처음 나올 당시에는 그냥 크기만 커진 아이폰으로 평가받은 아이패드 였지만 사실은 아이폰이 크기가 작아진 아이패드 였다. 프로젝트 자체는 아이패드가 먼저 출발했었다. 뭐 여튼간에 이 최초의 테블릿PC는 등장과 동시에 여러 신문사에 무지막지하게 까였다. 신문사에게만 까였냐? 블로거 에게도 까였다. 전 세계의 블로거들이 이 크기만 커진 아이폰에 대해서 악평을 했다. 커뮤니티에서도 깟다. 커뮤니티의 나름 내임드들 아이패드는 성공 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그인간들 그러한 발언에 대해서 대부분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뭐 사실 너무 깔 것은 없다. 항상 맞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아이패드 역시 대성공 이었다.




아이패드는 최초의 태블릿PC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끔식 아이패드 이전에도 태블릿 PC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컨샙, 러프화에 불과한 물건이거나 태블릿PC라고 부르기 힘든 수준의 물건들이다. 그뿐인가? 그러한 물건들 대부분은 아이패드가 나온 이후에 나온 것이다. 아이패드는 세계 최초의 태블릿 PC가 맞다.

최초의 태블릿 PC는 2010년 4월 20일 출시되었다.



세계 최고의 IT 기업


어느새 애플은 MS를 능가해 버렸다..


시가총액.
순이익.


기업의 가치를 가늠하는데 각각 1위의 척도와 2위의 척도이다. 이 두가지 척도에서 애플은 MS를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시간을 기준으로 현 애플의 시가총액은 370억 달러다. 한국 돈으로 치환하면 420조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오늘 급등해서 주당 주가 100만원에 시가총액 150조원 에 근접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의 3배가 약간 안되는 정도의 시가총액이다. 구글의 2배가 조금 안되며, 마이크로 소프트의 1.5배를 추월하는 수치이다. 삼성그룹 전체와 비교해도 1.5배가 넘는다.

세계 최고의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석유와 룩펠러의 액손모빌과 비교하면 4억달러가 적다.
근소한 차이로 애플이 2위다. 하지만 이 두 회사는 세계 시가총액 랭킹을 현재 업치락, 뒤치락 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시가총액 순위는 다음과 같다.

1위 액손모빌          : 3780억 달러.
2위 애플               : 3746억 달러.
3위 마이크로소프트  : 2232억 달러.




뿐만 아니라 애플은 재무상태도 매우 건전한 상태이다. 애플의 현금성 자산은 현재 90조원이 넘어갔다. 어지간한 대기업 하나 정도는 현찰박치기로 사버리는 것도 가능한 수준이다. 가만 있어도 20년 동안 회사가 유지될 수준의 현금이다. 그에 비해서 애플은 부채가 없다.그렇게 애플은 잘나가고 있다. 지금에 비하면 아주 약간 처지지만 1년 전에도 잘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애플의 미래에는 검은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바로 췌장암 환자 잡스의 건강문재 였다.


당시 애플 빠들의 반응은 두가지 였다.
1. 돈도 많은데 설마 돌아가실까?
2. 잡느님이 만들어 놓은 시스탬이 있어!

그리고 애플 까들의 반응은 한가지 였다.
- 잡스 죽으면 애플 역시 무너진다.


그렇게 빠와 까의 설전 중에 잡스의 죽음이
오늘의 시대를 만든 영웅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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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용새끼
    아이폰시리즈중에 전 저 1세대의 디자인이 개인적으로 괜찮더군요 ㅇㅇ 여튼, 다 썩어가는 사과를 이젠 세계가 탐내는 사과로 바꾼 잡스의 능력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합니다. 사실 1위기업들은 치고올라갈때까진 혁신적인 모습들을 보이지만 1위라는 프리미엄을 달고나면 혁신성은 감소하고 뻔한 업그레이드만 하는데 잡스는 항상 혁신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추측기사, 블로거, 커뮤니트사이트등의 정보는 진짜 참고용입니다. 입으로나 손가락으로는 아주 뭔들 못하겠습니까? 아 그리고 단지 잡스만 빠는 앱등이들은 참..
    보기에 안좋더군요. 아 잘보고갑니다
    • 2011.11.06 13:09 신고 [Edit/Del]
      랄까나 저도 어떤 면에서는 잡스만 빠는 앱등이에 가깝기도 합니다만 ... 그래도 님한테 욕을 안 얻어 먹는것은 잡스의 좋은 점 뿐만 아니라 잡스의 나쁜 점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 이겠지요. 잡스 뿐만 아니라 역사에 있어서 크나큰 일을 하고 간 사람들 살펴보면 확실히 인간적인 면에서는 쓰레기 같은 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쩝. 빨아도 거기까지 빨아서는 안되겠지요.
  2. 미주랑
    ...안써봐서 몰랐는데...정말 세계적으로 대박났다는걸 이제서야 알게됩니다. 좋은거 알려주시네요.
    • 2011.11.06 13:10 신고 [Edit/Del]
      ㅇㅇ 대박 낫지요.. 까말하고 이건 과대 평과 이지만 애플과 구글을 미국 경제의 새로운 희망으로 조명하기도 합니다 (.,.)
  3. 휴 ~ 역시 릿찡님 ㅋ
    재밌게 정독하고 가요. ㅎㅎ
    이제 얼마 안남은듯 .. 왠지모르게 아쉽군요. ^^
    • 2011.11.06 13:10 신고 [Edit/Del]
      쩝... 이거 다음의 시리즈는... 쩝. 뭘로하지... 한국 인터넷 의 역사라도 연재할까.. ㅎㅎ 재밌게 봐주셔서 즐겁습니다.
  4. 와우.. 대단하네요..ㅎㅎ.. 아이폰 사고 싶어지네요..ㅎㅎ
  5. 아이폰이 더 갖고 싶어졌다능...ㅎ
    잘 보구 갑니다~!!
  6. 좋은 주말되시길 바래요^^황금너구리 들렸다가 갑니다.ㅎㅎ
  7. 애플 그래도 재밌는 사람들이 마니 들어갔을테니까, 버틸 듯.

    파장이 클수록 대박으로 망하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지만,
    미국에는 애플 외의 괜찮은 기업이 거의 없지요, 나름 총력을 기울일 터이니 안 망할 회사랄까요?
    (쓰레기 짓만 안한다면야.., ㅋㅋ)

    에휴.., 거기도 살고 울도 살아야되는데, 여하간 쥔님 말 잘 들어서 손해 볼일은 없으니까 말입니다.ㅎㅎ;;
    • 2011.11.06 13:11 신고 [Edit/Del]
      랄까나 미쿸은 애플 말고도 괜찮은 기업이 많습니다. IT 업종으로만 국한을 해도 애플, 구글 , MS, 오라클, 인텔, IBM 등의 기업이 전부 미국 기업입니다. 참고로 저 기업 하나하나가 한국 최대의 기업인 S전자와 비슷하거나 더 큽니다 . (...)
    • 2011.11.11 13:27 신고 [Edit/Del]
      큰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미국을 버텨줄 기업말입니다,ㅋㅋ
  8. 비밀댓글입니다
  9. 잘읽고갑니다
    다음 글도 기대합니다!!
  10. TN
    사실은 아이폰 4쯤이 나오기 전에는[] 제 주위에는 아이폰은 무거운 불편한 핸드폰+엠피[]...라는 의식이 꽤나 있었습니다[]..저도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기에 아이폰은 그냥 제꼈죠[]몇년전까지만해도 주변에서 잘나가는건 아이폰이 아닌 블랙베리였던것같네요. 스마트폰열풍이 불기 전에는 아이폰보다는 아이팟터치쪽이 더 잘나갔던것 같기도하고....요즘은 학교에서 보이는폰들은 블랙베리,갤2, 아니면 아이폰...이네요[]
  11.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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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성격있음
    내용 중 보조금이 제조사의 영업이익율을 높인다는 부분이 이해가 안되는데 설명 좀 부탁 드릴 수 있을까요?
    • 2012.10.05 19:21 신고 [Edit/Del]
      여기서 말하는 보조금은 폰 하나 팔릴때마다 통신사가 애플에게 주는 돈을 말합니다. 통신사나 기기사가 소비자에게 주는 돈이 아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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