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4 - 조조의 야망.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4 - 조조의 야망.

Posted at 2013.01.03 06:48 | Posted in 기획특집


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1 - 후한말의 형새.

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2 - 황건적의 난.

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3 - 유비라는 녀석.



삼국지연의가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문학작품 이란 점은 이론의 여지를 펼치기 힘든다. 하지만 대다수의 대중친화적 작품이 그렇듯이 삼국지연의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굉장히 박하다. 하지만 그러한 대문호들이 유독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으니 그가 바로 조조다. 조조 자는 맹덕. 통칭 조맹덕. 그는 삼국지연의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입체적인 캐릭터다. 유비나 관우는 시종일관 착한 놈이고, 동탁이나 여포[각주:1]는 시종일관 나쁜놈이다. 하지만 조조의 경우에는 어쩔때는 착해 보이기도 하고, 어쩔땐 나뻐보이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과 같다. 살아있는 사람과 같은 생동감. 연의에서의 조조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는 오늘날 창작되는 명작급 작품들의 주인공이나 악역이 가지는 덕목인데 수천년전 씌어진 삼국연의의 캐릭터 조조가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모두가 착한놈 아니면 나쁜놈인 연의의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이중적인 놈. 반쯤 썩은 귤도 썩은 귤이라고 그때문에 독자들에게 무진장 욕을 얻어 쳐먹지만, 이 조조가 없었다면 삼국지연의는 인기를 끓지 못했을 것이다.

레슬링 경기만 보더라도 사람들은 악역을 욕하지만, 악역이 없으면 그게 무슨 재미겠는가? 조조맹덕은 삼국지연의라는 잘 짜여진 레슬링 각본에서 가장 훌룡한 연기를 선보인 1류 악역이었다. 가끔 출몰하는 무개념 양산형 위빠들은 이러한 점을 대놓고 무시하고 나관중이 우리 조간지를 개새끼로 매도했어요! 나관중 개새끼! 를 외치기도 하지만, 나관중 이전의 삼국지소설이나 민담에서의 조조는 연의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찌질하게 나온다. 이것을 나관중이 이곳저곳에서 사료조사 하고 고문서 캐가며 희대의 간지악역으로 조조를 제탄생 시켰고, 그렇기 때문에 삼국지 연의는 재미있는 것이다.




많은 작품에서 악역은 주인공만큼 중요하다.
조커없는 배트맨이나, 디오없는 죠죠를 생각해봐라



정사에서의 조조의 모습 역시 연의와 비슷하다.
이중적이다. 하지만 그렇기 떄문이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얼핏 보면 그는 지독한 실리주의자로 보인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역사에 기록되는 스캐일의 학살극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저지른다. 한황실의 신하를 자처했지만, 인의와 명성을 갖추는 이가 황제에 오르는걸 원하지 않았다. 조조로써는 현제 정도의 그럭저럭 나이가 어리고, 자기 맘데로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의 황제가 딱 적당했다. 하지만 조조는 자신이 인정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호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또한 자신을 죽일 뻔 하기도 한 인물인 가후. 조조는 그런 가후를 자신의 측근으로 등용했다. 그의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원소 휘하에 있을때 조조 뿐만 아니라 조조가문 전체를 욕하는 글을 쓴 진림. 조조는 그 역시 등용했다. 이 역시 그의 문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조의 인재편애가 가장 극단적으로 일어난 예는 다름아닌 유비다. 사실상 유비는 조조 밑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입촉 전까지 유비가 평생 자랑하던 벼슬자리인 좌장군은 사실 조조가 유비에게 준 자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조조를 배신했다.  

하지만 유비가 조조의 뒤통수를 거하게 후려치고 한조의 마지막 충신이라는 꽤나 간지있는 커리어를 완성한 뒤에도 조조는 유비를 자신의 호적수로 인정했다. 그나마 유비를 까내린 말이 "유비는 나의 맞수이나 계략을 쓰는 것이 조금 늦구나". 정도다. 더욱이 조조는 유비를 '현덕' 이라고 불렀는데 당시 시대상에서 자를 직접 부르는 것은 꽤 친한 사람들 끼리나 하는 행동이었단걸 생각해보면 더욱 미묘해진다. 대충 후세에 조조 X 유비. 강공 조조 vs 능글공 유비. 공공 조합 BL 동인지라도 써서 팔라는 식의 묘한 츤츤 데레데레 함을 보여줬다. 어쩌면 자신만 알고있었던 유비라는 인물의 대단함을 세상이 알아가는 것에 대한 불만 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역시 좋은 BL 소재다!


이런저런 자료를 토대로 정리해본 조조는 다음과 같은 인물이었다.


1.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악인이다.

2. 하지만 자신이 진심으로 감복한 인물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해준다. 



조조의 어린시절은 유복했다. 황족 이라곤 하지만 실상은 캐서민인 유비. 그딴거 없이 그냥 캐서민인 손견과는 출발선 부터가 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조조의 가문을 원소의 가문보다 한격 아례로 보는대 후한말 정치상황을 생각해보면 조조의 가문은 원소의 가문에 비해 꿇릴게 그리 없다.[각주:2] 원소의 가문 역시 탁류파에 가까운 가문이었다. 사세삼공? 물론 대단하긴 하다. 하지만 조조의 아버지 되시는 조숭은 삼공 자리를 돈으로 샀다. 환관의 양아들이 조선으로 치면 삼정승 포지션인 삼공중 하나를 당당히 차지하는 세상. 후한 말기는 대충 그런 사회였다. 환관이 정치적으로 그닥 힘없는 고자였던 조선하고는 다르다.[각주:3][각주:4][각주:5]

심지어 원소는 그 가문의 정식후계자도 아닌 첩실. 그 시작은 불안했다. 그에비해서 조조는 시작부터가 명가인 조씨가문의 정식 후계자. 그 위세가 어느정도였냐 하면은 당시 그럭저럭 잘나가던 환관인 건석의 삼촌을 매질하고도 무사했을 정도다. 물론 철차상의 문재는 없었다. 그냥 법 어기고도 내 조카가 높으신분(그래봤자 고자) 이라며 좆나 거들먹 거리는 찐따새끼를 법대로 좆나 패준것 뿐이다. 나라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환관 친적이건, 삼공 친척이건, 황제 친척이건 간에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높으신 분의 친척들이 저지랄을 하고 다니면 더욱 엄하게 벌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나라가 막장으로 돌아가던 후한 말기. 그게 제대로 될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의 조조는 건석의 권력 같은건 그냥 무시하고 건석의 삼촌을 신명나게 팼다. 그러면서 조조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조조나 유비나 젊음시절 빠따질 한번식 했다.
조조는 건석의 삼촌은 빠따로 때렸고,
유비는 독우(감찰관)을 빠따로 때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석은 조조에게 정치적 보복을 하지 않았다. 아니 보복하기는 커녕 오히려 건석이 장으로 있는 환관 직속의 무력집단인 서원팔교위의 8명 대빵중 한 자리를 조조에게 줬다. 사실 그럴수밖에 없는게 건석이라는 인물 자체가 조등이 대려다 키운 일명 조등의 라인이었고, 십상시중 대빵이라는 장양 역시 마찬가지었다. 건석은 조조에게 보복하기는 커녕 후일 자신이 대빵을 맞는 신흥 군사집단 서원팔교위의 한 자리를 조조에게 주었다. 어쩌면 인사권은 건석에게 있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건석은 자신의 삼촌을 좆나 팬 조조가 자기와 같은 반열에서 일하는걸 지켜봐야만 했다. 서원팔교위의 대빵 이라고는 하지만, 건석은 총 지휘권이 있는것이 아닌 8개의 군대중 하나를 맡은 것에 불과했다.

서원팔교위. 8명의 무장이 각각 600~700 사이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는 환관 직속의 무장집단이다. 그 목적은 황궁의 경호다. 8명의 교위들은 지금으로 치면 경호실장이라 할 수 있겠다. 건석은 그중 제1경호실장 이었고, 나머지 7명은 일단 건석의 아랫라인에 위치하기는 했지만, 건석의 직속부하는 아니었다. 건석의 위치는 대략 연의의 오호장중 관우의 위치를 생각하면 적당할거다. 서원팔교위의 8명 대빵. 요즘말로 치면 8명의 공주호위대. 아니 경호실장은 다음의 8명 이었다. 수도 낙양. 당시 인구 50만명의 도시에서 600~700명이다. 한국으로 치면 저 각각이 서울에서 1만2천 ~ 1만4천 가량의 병력을 이끓고 있는 초초초초초초 엘리트 장교들이다.


상군교위 건석
중군교위 원소
하군교위 포홍
전군교위 조조
조군좌교위 조융
조군우교위 풍방
좌교위 하모
우교위 순우경


이중 눈이겨 볼 이로는 단언 조조와 원소다. 
많은 이들이 조조와 원소가 어릴적부터 친구였다. 라고 생각한다. 여러 경향들을 보아서 아주 친한 친구는 아니였어도 그 둘이 얼굴 저도는 트고 지내는 사이었단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시대를 빛낸 두명의 군웅이 젊은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하는건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는지 조조와 원소의 어린시절에 대해서는 야사가 많다. 물론 야사이니 만큼 실제로 그런 역사가 있었다! 라고 생각하는건 무리다. 그냥 옛날부터 사람들이 정치인 가지고 술안주질 하며 놀았구나 정도로 생각하면 될것이다. 개중 대표적인 이야기로는 세실신어에 실린 신부 도둑질이 있다.


어린시절의 조조와 원소는 못말리는 악동이었다. 한번은 어떤 집에서 갖 결혼한 신부를 홈친뒤 도망가는 대담한 일을 즐겼다. 신부를 홈치고 겁탈한 뒤, 걸음아 나살려라 도망갔는데 원소는 그만 가시덤불에 빠져버리고 만다. 이에 조조는 "도둑이야!" 라고 큰 소리를 쳤고, 원소는 다급한 나머지 혼신의 힘을 발휘하여 가시덤불에서 빠져나왔다. 조조의 이 빛나는 기지덕에 조조와 원소 두사람 다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 외에 대부분의 조조원소 관련 야사에서 조조는 무서운 아이이고, 원소는 왠지 모르게 취급이 박하다. 뭐 역사적인 폐베자이며 지기 힘든 상황에서 깨졌다는 걸로 보아서 그런 취급이 당연하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지기 힘든 상황에서 깨진 항우의 역사적 취급이 상당히 좋다는걸 생각해보면 왠지 묘한 일이다.[각주:6]




사실 대부분의 매체에서 남자다움을 마음껏 뽐내는 이들은 인기가 좋다.
카미나, 흰수염, 왕기, 한마유지로, 이스칸달 ... 서구권 슈퍼히어로물로 가면 안 그런 인물을 찾기가 더 힘들다.
지적인 히어로라는 배트맨 조차도 만화책의 묘사를 보면 말보다는 근육으로 대화를 할 것 같은 생김새다.



젊은 조조는 기득권자였다. 따라서 처음에는 그 기득권 안에서 사회를 바꿔보려고 했다. 건석의 삼촌을 좆나게 쥐어팬 뒤 뭔가 느껴진게 있는지 높으신 분들 아는 분이라고 봐주기. 높으신 분들에게 돈맥이고 이익얻기. 즉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 상소를 황제에게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황제가 되기 전 본래 장사꾼이 꿈이었던 영제는 오히려 자기가 직접 주간해서 벼슬자리를 팔아 막장이된 황궁 제정을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나라 전체가 황제의 것인데 황제라는 인간이 황궁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좀먹는 매관매직을 주관하고 있으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턱이 없다. 그리고 이때부터 조조는 한나라 황실에 대해서 무지하게 실망했던 걸로 보인다.

당시 황제였던 영제는 매관매직을 주관하는 쇼킹한 일을 할 망정 최소한 지 앞가림은 할 줄 아는 황제였다. 영제를 빼고는 당시의 2대권력이었던 십상시와 하진 역시 각각 영제의 보모(;;;) 와 손위처남 이었으니 서로 다투기는 할 망정 그 선을 넘지는 않았다. 당장에 영제가 십상시 10명하고 하진 1명. 11명 집합시켜 놓고 “니들 싸우지 마삼. 내가 대빵이란거 잊지말고.” 하면 그 11명은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희가 친한걸 증명하기 위해서 축구팀이라도 만들죠. 숫자도 딱 11명이내요. ㅎㅎㅎ” 같은 맘에도 없는 소리나 지껄어여 할 판이었다. 즉 황제가 정신만 차리면 막장이된 한나라의 회복의 발판을 만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매관매직을 직접 주관하는 장사꾼 황제에게 뭘 바라겠는가 ㅇㅅㅇ.;;;; 영제는 딱 자기 앞가림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없는것보단 나았다. 

딱 자기 앞가림만 하면서 나라를 좁먹었던 암군 영제는 놀자판 인생을 살다가 34살에 덜컥 죽어버린다. 죽음의 원인이 너무 놀다가 지쳐 죽었는지, 그게 아니면 암살당했는지 그런건 모른다. 하지만 죽음의 원인이 뭐였던 간에 그의 죽음은 그 전에는 서로 눈치만 보고 앉아있던 심상시와, 하진 세력이 대놓고 쌈박질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그렇게 황건적의 난과 함께 전반부의 굵직한 사건인 십상시의 난으로 이어진다.
사진은 뭐... 매관매직 해서 날아 팔아드신 영제 되시겠다. (묵념 ...)

 
  1. 다만 여포의 경우 남녀관의 사랑이 중요한 가치가 된 현대에 와서는 로맨스가이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 [본문으로]
  2. 물론 세력으로 그렇단 거지. 심적으로는 고자후손이라고 암암리해 무시하는 풍토는 있었을 것이다. 아니 분명 있었다. [본문으로]
  3. 물론 아주 힘이 없지는 않았다. 대충 박근혜 비대위원들이 그당시 환관 포지션이라고 보면 적절할거다. 환관 대빵은 비서실장쯤 된다. [본문으로]
  4. 다만 조선은 왕권 자체가 강한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환관의 권력 역시 그닥 강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5. 라고는 하지만 조선 전성기. 즉 전기에는 쌧다. 하지만 왕권이 강하면 비서실장은 나름의 권력을 휘두르기는 하지만, 왕을 능멸하거나 하지는 못한다 [본문으로]
  6. 그건 항우가 굉장히 단순무식한 인물. 즉 민중의 교감을 얻기 쉬운 인물이라서 그렇다. 실제 항우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지화된 항우는 대략 그렇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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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조의 가문이 원소보다 못했다는 건 아니지만,
    파급력에서 조조는 원소의 상대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반동탁연맹이나 한복 아래에서 뒤엎고 세력을 구축한 것까지도
    전부 원소의 네임밸류로 이루어진 것이었죠.

    물론, 원소가 무지막지하게 쎈 녀석이긴 했습니다만.
    (관도 이전까지 조조가 원소를 이길 줄 알았던 놈은 별로 없었..)

    오히려 조조의 가문은 권력은 있었지만, 명망이 시망이었던지라
    전국 군웅에 대한 영향력은 없었어요. 원소는 서자인데다 양자였지만,
    나중에 가선 원술보다 더 영향력이 커졌죠.
    물론, 원소가 원술 따위보단 몇 배 더 잘난 놈이라 그랬던 거지만요.




    • 2013.01.03 13:45 신고 [Edit/Del]
      뭐 물론 그런 감도 있죠. 권세가 있는 가문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고자가문.. 사람들의 두려움을 얻을 수 있을망정 존경심을 얻을수는 없으니까요. 어디가서 당당하게 떠들고 다닐 내임벨류는 아닌거죠.
  2. 이스터
    주석에 조금 발을 걸자면 조선의 왕권이 그닥 강한적이 없다니요 ㅡㅡ;;
    조선의 왕권이 본격적으로 약해지기 시작한건 성종부터 입니다.

    문물정비 가령경국대전이라는 법전을 정비같은 신권강화 체계의 완성등 으로 계기가 되었습니다.

    헌데 연산군 이 개ㅎㄹㅅㄲ 때문에(언문투서 사건을 계기로 훈민정음을 탄압하고 분서갱유를 하며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훈민정음 혜례본을 없애려던 어이없는 생퀴임.
    만일 연산군만 없었다면 조선은 한문보다는 훈민정음을 주로 쓰는 나라가 될수도 있었음요 아오!!!)

    아주 왕권이 개작살나버렸고 신하들은 이러한 노이로제에 시달려서 왕권 강화에 아주 학을 떼며 반대하는 배경이 되었지요 ㅡㅡ
    • 2013.01.03 13:45 신고 [Edit/Del]
      쩝... 확실히 조선 전기.. 임진왜란 이전을 뺴먹었군요... 각주 달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조선후기가 제가 알고있는 조선의 스트레오 타입이 되어버린 듯 ;;;
  3. bl얘기만 눈에 들어오는 아이는 나빠여!!!!!
    ㅎㅇㅎㅇ..
  4. 나도 bl에 눈이 가는 1인... 쿨럭..

    "나의 현덕은 나만의 것이라야 해! 세상이 현덕의 매력에 빠지도록 내버려둘 수 없어!"
    그리하여 조조의 유비파멸작전이 개시되었으니...
    일그러진 사랑, 그러나 조조 그 또한 BL물의 주인공임을 어이하랴...

    이거이거 정말 좋은 bl소재인걸요!!! ^^
    • 2013.01.03 13:46 신고 [Edit/Del]
      여담이지만 현덕 이라고 자를 부르는건 친한 사이에서만 허락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조조는 유비 입촉 후... 즉 대놓고 유비가 적대시 할때도 현덕 현덕 했습니다. !!!!
  5. 잘 보고 갑니다^^
    아무쪼록 남은 하루도 좋은날 되시기 바랍니다!
  6. 죠커나 죠죠나 조조나 'ㅈ'라는 평행이론 _ 멍.....()
  7. 조조가 순욱을 죽게 한 후 유비가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죠.
    조조가 죽고난 다음에도 조비에게 서신을 보냈다고 하기도 하고.
    현재만이 아니라 당시로서도 양자는 서로를 꽤나 의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8. sereobeyi
    정말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삼국지 기획특집. 다음편도 기대됩니다
  9. 유비는똥별이
    유비와 관우는 현실에서는 시종일관 결함 투성이인 쩌리들일 뿐이다.

    유비의 경우

    여포 - 조조 - 원소 - 유표 - 손권 - 유장 등을 줄줄이 배신하는 배신킹이다. 그러면서 군재는 완전 똥별이라 예비역 병장들이 흔히 말하는 "국군의 주적은 간부"라는 단어는 마치 유비를 위해 만들어진 단어라고 믿겨질 만큼 유비는 군인으로서는 완벽하게 실격이다. 그 이유는 이릉대첩에서의 케챂파티.

    사실 촉에서 수전에 능한 장수는 황권 하나뿐이다. 그리고 상황 역시 조비가 선양을 받았다. 그럼 답은 뻔한 것이다. 이 때가 위나라를 공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것이다. 그러나 유비는 역시나 똥별답게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권을 똑바로 친 것도 아니였다. 기껏 이릉항에서 배끌고 왔더니 황권이 배를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조언을 씹고 배는 그저 장식... ㅋㅋㅋ 그리고 육손에게 탈탈 털려서 제대로 개쩌는 케챂파티 크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황권은 오나라에 잡히느니 차라리 위나라에 잡혀버렸고 풍습, 부동 등의 청년장교들은 유비의 삽질 때문에 아깝게 희생돼버렸다. 게다가 제갈량의 친구인 마량도 이릉대첩으로 죽었고 마량이 꼬셔온 오랑캐 사마가 역시 주태에게 걸려서 단 일합만에 끔살당했다.


    관우의 경우

    적진 깊숙히 쳐들어가 안량의 목을 베었다고는 하지만 안량은 사마덕종에 비견되는 무능아 주제에 오직 원소와의 친분 하나만으로 상장군이 된 병신이였는데 순욱은 "안량은 필부(평범한 놈 이하)의 용맹을 지녀서 자기가 덤벼도 이길 수 있다"고 평가했고 저수 역시 "안량에게 군대를 맡기면 100% 죶망한다"고 평가했다. 이 병신 하나 이겼다고 천하의 용장이라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관우는 번성에서 서황에게 일기토로 캐발리고 생포되었다가 서황이 인정을 베풀어서 풀어준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관우가 리더쉽이 아예 없는 놈으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사인과 미방이 불장난을 하다가 들켰는데 관우는 지 성깔에 못이겨서 협박만 할 줄 알았지 후속조치의 후자 따위조차 모르는 바보 천치 멍충이였다. 아놔 사인과 미방이 그렇게 싫으면 유비한테 "얘네들 안되겠으니까 얘들을 대신할 사람 뽑아줘라."라고 편지를 써서 올렸어야 했다. 그리고 상황을 봤어야 했다. 그런데 그걸 안했으니 이거야 원... 결국 관우의 죽음은 관우 스스로의 멍청함이 자초한 것이다. 문제가 있는 인물이면 바로 교체를 해야지 으름장 놓는다고 되나?

    결국 유비나 관우나 다른 영웅들에 비해서는 넘사벽으로 모자란 것들로 양민학살만 할 줄 알았지 실제로는 둘 다 개쩌리 새끼들일 뿐이다.






  10. 정말 시원시원하게 잘 쓰시네요. 참 잼있게 보고 있습니다. 이거 스크랩 할 순 없나요?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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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3 - 유비라는 녀석.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3 - 유비라는 녀석.

Posted at 2012.12.24 10:17 | Posted in 기획특집



유비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삼국지의 진주인공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유비의 촉나라는 약소국이었다. 오늘날 쓸대 없을 정도로 삼국지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서 오에 비에서는 딱히 약소국이 아니었다는 식의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조조의 위나라에 비해서는 그야말로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위는 세력면에서도 촉에 월등했고, 손오처럼 호족들이 권력을 가지고 날뛰는 그런 혼돈과 막장의 사회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다. 이는 유비라는 인물이 지배층과, 권력층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인물이었기 떄문이다.

귀종유리담(貴種流離譚) 이라는 분류의 이야기가 있다. 원래 고귀한 혈통이었던 사람이 어떠한 연유로 인해 밑바닥으로 추방. 그리고 그 밑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온다. 식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세계의 신화, 전설 등에서 최소한 한두가지씩은 있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 하더라도 고구려의 2대왕 유리왕의 설화가 있으며, 신화속에 주구장창 등장하는 온갖 반인반신들은 죄다 귀종유리담의 요소가 있다. 그만큼 귀종유리담은 인기가 있는 소재다. 지배층은 순수한 혈통이 결국 승리한다는 것에 대해서 쾌감을 느끼고, 피지배층은 아무것도 없던 녀석이 사실은 고귀한 녀석이었어! 라는 반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유비의 인기요인 역시 유비라는 녀석이 일생이 귀종유리담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기 떄문일 것이다.


효경황제 → 7남 중산정왕 유승 → 육성정후 유정 → 패후 유앙 → 장후 유록 → 기수후 유연 → 흠양후 유영 → 안국후 유건 → 광릉후 유애 → 교수후 유헌 → 조읍후 유서 → 기양후 유의 → 원택후 유필 → 영천후 유달 → 풍령후 유불의 → 제천후 유혜 → 동군범령 유웅 → 실업자 유홍 → 유비


유비의 가문은 증조할아버지 때에는 '제후'의 위치를 가진 나름 잘나갔던 가문이다. 동군범령 이라는 할아버지의 벼슬 역시 한 현의 수장인 동군범령으로 구청장 정도는 된다 칠 수 있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유비의 아버지는 유비가 어렸을때 덜컥 요절해 버렸고, 그때부터 유비의 서민 라이프는 시작된다. 돗자리하고 짚신 팔아서 유비는 생계를 유지했고, 돗자리장수라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불명예 역시 이때부터 유비에게 따라붙었다. 그렇게 유비의 유년시절은 캐서민했고, 캐안습했다. 하지만 그렇게 쥐구멍한 유비의 인생에게도 별들날은 있었다. 유비의 먼 친척이었던 유원기가 좆나게 캐서민하게 사는 유비를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뭐 정사 에서는 남이나 다름없는 친척을 왜 그리 도와주냐는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새끼가 우리가문 일으킬껴" 라며 도와주었다고 한다. 이 유원기의 통찰력이 너무나도 빛나는 일화가 사실인지, 사실이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간에 유원기가 유비를 도와줌으로 해서 유비의 인생은 180도 변했다. 한물 갔다고는 하지만, 나름대로 내임드한 정치인이었던 노식의 제자가 되었고, 이는 후일 청류파 세력에 연줄을 댈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 동문수학한 학교선배로는 무려 공손찬이 있었다.






사실 공손찬은 태어날떄는 유비보다 나을 점이 그닥 없었다. 가문은 그럭저럭 한가닥 하는 가문이었지만, 하필이면 첩의 자식. 가문빨을 하나도 못받는 그런 환경에서 공손찬은 꿋꿋히 성장했고, 결국 그의 재능을 눈이겨본 태수가 사위로 맞이하면서 그럭저럭 인생이 폈고, 그 후로 노식의 제자로 들어갔다. 다른건 몰라도 인맥질 하나에는 무지막지한 재주가 있었던 유비는 공손찬과도 눈도장을 찍는둥 나름대로 작업질을 했다. 하지만 얼마안가 유비는 공부를 마치고 자신의 고향땅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유비는 그의 오랜 조상이자, 그의 롤모델인 유방과 비슷한 행보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유협짓을 했다. 유협 이라고 하면 좀 멋져 보인다. 까놓고 말해서 건달짓이다. 유비는 그럭저럭 무력이 있는 인물이었고, 나름대로 유명한 정치인이었던 노식의 제자라는 학벌도 있었다. 거기에 선천적으로 인맥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덕에 어느덧 뒷꼴목 깡패들의 대장 비슷하게 되었고, 그때 유비와 형동생 하던 깡패 중에서는 관우와 장비도 있었던 걸로 사료된다. 왠 쬐끄만 시골마을 누상촌의 건달조직 누상촌 돗자리파에 후일 만인지적으로 평가받는 관우와 장비가 동시에 있었으니 촌동내 탁현 누상촌은 그야말로 인재의 보고라 할 수 있겠다. 유비의 명성을 듣고 관장이 유비에게 도전하러 머나먼 누상촌 까지 왔다가 존나 쳐맞고 형님으로모셨다는 유비 패왕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돌아다니는 이미지의 절반이, 연희무쌍, 일기당천, SD건담삼국지 관련이라 이미지 찾기가 난감하다.
위 이미지는 중국 드라마 삼국에서의 유관장. 누가 유비고, 누가 관우고, 누가 장비인지는 얼굴에 써있다.



물론 탁현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인재의 보고다. 당장에 유관장 3형제를 동시에 품고 있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 동내가 무지 대단한거다. 또한 탁현에는 관우장비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유비의 초반멤버이자, 훗날 소덕장군이라는 소덕스러운 자리에 오르는 간손미 브라더스의 일원 간옹 선생님도 게셨다. 수경선생 사마휘의 발언 한마디 떄문에 오늘날 무진장 평가 절하되는 간손미 브라더스지만, 입촉 직후 간손미 브라더스의 직위는 제갈량 보다도 높았다. 큰 그림을 그릴줄 아는 인재는 못되었지만, 최소한 시키는 일은 제대로 할 줄 아는 인재였고, 그러한 인재는 조직 내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간옹은 최소한 그정도 수준의 인재였다. 이는 간옹과 함께 세트로 묶이는 손건과 미축 역시 마찬가지다.

그 외 누상촌 돗자리파의 인제로는 전예라는 인물이 있다. 후일 위나라에서 태수, 중랑장, 주지사, 위위(황실 경호실장), 태중지사 등등의 정점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럭저럭 굵직굵직한 자리를 지냈다. 전예는 유비가 의병을 일으킬때부터 함께한 인물로써 누상촌 돗자리파의 창립멤버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후일 유비가 공손찬에게 몸을 의탁할 때 노모가 늙어 봉양해야한다는 이유로 돗자리파를 떠나 공손찬군에게 스카웃 당한다. 그리고 후일 공손찬이 망해버린 뒤 조조에게 몸을 의탁한다. 누상촌 돗자리파의 멤버였으니 만큼 가진건 불알 두쪽밖에 없는 인물이었을 태고, 조조파가 자리를 잡은 뒤에 조조파에 들어간 인물이지만, 그럭저럭 굵직한 자리를 해먹었다는 점에 있어서 그 역시 한가닥 하던 인재가 틀림없다. 하지만 돗자리파 창립멤버였다는 과거 때문인지 위나라는 그를 대촉전에서 쓰지 않았고, 그 덕에 연의에서는 묻히는 신세가 된다.



관우, 장비, 간옹, 전예.



후일 나름대로 높은 직위에 오른 포텐셜 있는 인물들이다. 더욱이 허구한날 배는 큰 세력과 맞짱떠가며 깨지는게 일이었던 누상촌 돗자리파였으니 만큼 이들 외에도, 유비가 눈여겨본 제목이 몇 명 더 있었을지도 모른다. 유비는 탁현의 누상촌에서 깡패대장 노릇이나 하면서 인재를 모았다. 뭐 깡패라고는 하지만 이미지관리에 신경쓴 유비의 특성상 말 그대로 깡패 라기 보다는 자경단에 가까웠을 것이다. 물론 자경단은 그냥 유지되는게 아니다. 밥도 맥여줘야 하고, 창칼도 쥐어줘야 한다. 이러한 돈을 유비가 어찌 마련했을지는 기록이 부실해서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사에서 기록된 대로라면 유비는 이 시절부터 뭔가 발칙한 생각을 품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 발칙한 생각이란 다름아닌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는 생각이다. 아래를 보자 정사에 선주전(유비전) 에 나온 문장을 그대로 복붙했다.


선주는 어릴 적에 일족 아이들과 이 나무 아래서 놀면서 "나는 꼭 이런 깃털장식이 달린 개거(蓋車, 황제의 마차)를 타고 말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숙부 유자경이 "얘야, 분별없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우리 일족을 망치겠구나."라고 했다.



물론 유비가 저런 말은 한 것은 아주 꼬꼬마 시절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황제가 될거야! 라고 당당히 말하던 당돌한 녀석이 결국 황제가 됬다. 결국 요 당돌한 녀석은 나잇살 꽤나 쳐먹은 후에도 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관우, 장비, 간옹, 전예 등등. 그가 자신의 개인조직에 끌어들인 특급의 인재들을 보면서 유비는 훗날 내가 군사를 일으킬때 내 부하가 될 녀석들! 이라고 생각하며 흐믓해 했을지도 모른다. 유비는 오늘날 유교질서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인물중 한명이지만, 위의 황제 가마 일화를 볼 때 유비 스스로가 그닥 충성스런 인물은 아니었다. 그저 유비의 쫄따구들이 유비에게 충성했을 뿐이다.

다시말해 유비는 대장 아니면 할 생각이 없는 어마어마하게 당돌한 녀석이었다. 이는 유비의 이후 행적에서도 잘 들어난다. 조조는 유비를 극진히 대우했지만, 유비는 결국 살포시 웃으며 조조의 뒷통수를 냅다 후려갈겼고, 결국 조조는 유비 때문에 통일왕조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 유비는 신의의인물. 이라는 명성을 평생을 걸쳐 쌓아왔지만, 입촉당시 그 명분보다는 당장의 실리가 더욱 컸을 때는 망설이지 않고 그 명분을 버리고 그 잘나신 유씨종친 유장의 뒷통수를 신명나개 쳐갈겼다.

이를보고 누군가는 유비를 소인배 라고 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를 무작정 소인배로 평가절하 할수는 없다.

조조가 좆나 잘 대해줄때, 조조의 밑에서 계속 뿅이나 뽑아먹고 있는 사람하고, 조조가 잘 대해줌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게, 목숨을 걸고 자신의 꿈을 쫒는 미친놈하고, 어느쪽이 소인배인가? 물론 이런식의 비교는 좀 극단적이다. 어지간한 경우라면 그런 상황에서는 꿈 따위는 포기하고, 그냥 그럭저럭 잘먹고 잘살며, 그래도 탁현 누상촌 돗자리파 두목님에서 여기까지 무진장 출세했네! 하면서 자기위안을 할것이다. 하지만 유비는 최소한 어지간한 녀석은 아니었다. 깃털장식이 달린 가마를 탄다. 즉 황제가 된다는 말도 안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걸 걸 준비가 되있었던 녀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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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니자드
    확실히 이렇게 보니 탁현 누상촌은 정말 인재의 고장이네요. 주성치 영화 쿵푸허슬의 돼지촌이 생각납니다. 탁현에서는 시장 상인이 전부 무력90의 장수이고 동네 글방선생이 지력 90의 재사였던 걸까요? 하긴 돛자리 장수도 매력 90의 카리스마 맨인걸 보면 진정으로 그곳이 돼지촌이네요^^
  2. 사람은 그 사람의 현실보다 그 사람의 꿈에 의해서 달라진다는 말을 몸소 실천한 것만 봐도 대단한 인물이죠
    개인적으로는 유비 패왕설이 참 맘에 든다는 ㅋㅋㅋㅋ
    • 2012.12.25 14:37 신고 [Edit/Del]
      오히려 연의의 유비보다는 그쪽이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다만 무조건적으로 때리는게 아니라, 카미나 같은 패기가 곧 인간적 매력이 되는 그런 리더가 아니였을까 상상해 봅니다.
  3. 정사 기록만 보면 사마의보다 한 수 위인 전예까지..-ㅅ-;;
    나중에 공손찬의 객장으로 활동할 때는 국의도 유비 쫓아가려고 했고
    조운은 아예 유비한테 갔지요..

    만약 예정(?)대로 유비에게 전예, 조운, 국의 세 사람이 갔다면
    조건달은 유비 못 잡아서 쩔쩔맸을 거란 말이죠..-ㅁ-
    • 2012.12.25 14:39 신고 [Edit/Del]
      뭐 그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뭐 결국 조건달 인생 최고의 실책중 하나는 유비를 살려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대부터 나름 내임드였던 유비를 별 이유없이 죽이는건 결코 좋지 못한 일이지만, 애초에 조건달의 이름이 당대에도 그리 깨끗했던건 아니고요. 내임드 그거 먹는건가요? 우걱우걱이 조건달의 특기였으니.
  4. 처음으로 신삼국의 화면을 봅니다만...
    저는 그 전의 삼국지 인물들이 더 나아보이는군요.
    • 2012.12.25 14:39 신고 [Edit/Del]
      다 취향이긔요 ㅋ 님도 검색해보면 알거에요. 심삼국 하고 코에이삼국지 이미지 말고는 일기당천, 연희무쌍, SD건담 삼국지 등의 이미지라 ㅋ
  5. 저는 탁현이라는 동네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지나가다 볼 수 있는 돼지고기 파는 사람은 장비고, 그 옆에서 그냥 나눠주며 성질 돋구는 사람은 관우,
    시장 구석에서 돗자리 짜는 사람은 유비-
    심지어 이름도 안나오는 동네 대장장이가 만든 청룡언월도를 비롯한 무기들.
  6. 이히리히디히
    항상 생각하는거지만 유비는 닮고 싶다고 닮을 수 있는 인물은 아닌듯해요. 롤모델로 삼으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할지 감도 안잡히니....
  7. 유비는똥별이
    유비는 존경할 가치가 아예 없는 쓰레기일 뿐이다. 저렇게 배신에 배신을 연달아 해놓고 나온 결과물이 이릉대첩? 캬하하, 웃겨주는구나. 그따위 병신같은 케챂잔치를 벌이려고 조조고 여포고 원소고 유표고 싸그리 배신했나? ㅋㅋㅋㅋㅋㅋ

    더군다나 유비 없이도 조조는 손권이라는 강력한 군세와 주유라는 천재 때문에 천하통일을 할 수가 없었다. 적벽대전에서 촉은 아예 아무것도 안했고 유비관우장비는 아주 철저하고 완벽하게 손권의 부하 병졸이였을 뿐이다. 적벽대전 자체가 주유의 지략과 황개의 맹활약으로 이긴거지 유비네는 암것도 안했다. 당연히 화용도도 개뻥이고!

    유비를 본받기는 너무나도 쉽고 오히려 허접하다. 왜냐하면 무리하게 병력이끌고 가서 다 쳐발리면 무조건 유비를 완벽하게 본받는거라 히틀러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유비를 아주 완벽하게 볻받는 데에 성공했다.

    시골서생 육손을 천하의 명장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준 똥별 중의 상똥별 유비 똥별의 위엄을 봐라. 유비 상대로 전투를 하면 누구나 천하의 명장이 될 수 있다.
    • BlogIcon .
      2013.09.11 00:17 신고 [Edit/Del]
      적벽에서 무리수두다가 불쑈맞고 병사들 시체밭 만들어서 밟고 간 조조도 똥별이지? 지랄은 삼갤에서 하고 그냥 곱게 짜져있어라 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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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2 - 황건적의 난.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2 - 황건적의 난.

Posted at 2012.12.07 12:43 | Posted in 기획특집


한(漢) 이라는 나라가 건국된지 어연 300년. 망할 위기는 여러번 있었고, 실제로 한번은 사실상 망했던 한나라이지만, 그럭저럭 백성들에게 지지받았고, 그럭저럭 프로파간다 전파에 성공한, 나라였기에 위기시마다 불사조처럼 살아나고는 했다. 하지만 그런 한나라의 영광도 거의 끝나가던 때. 외척들의 횡포를 잡으라고 등용해둔 환관이 외척을 때려잡은 뒤 온갖 쌩 횡포를 부리던 때였다. 나라꼴이 막장이다. 이는 곧 종교가 발돋움하기 딱 좋을 때라는 뜻이다. 예수그리스도가 기독교를 창시할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 상태였으며, 무함마드가 이슬람의 깃발을 그리기 시작한 무렵의 중동 땅 역시 소수의 거상이 절대다수의 노예를 가축부리듯 부리는 그런 시대였다. 즉 종교는 난세의 필수요소고, 난세는 종교의 필수요소다. 혼탁한 시기 민중은 종교에 의지한다. 하지만 괜히 혼탁한 시기겠는가? 난세의 종교는 썩을때로 썩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령 성경에서 예를들자면, “일요일에 사람을 살렸으니 너 이단!”을 당당하게 외친 바리세인들이 썩어빠진 종교인의 예시가 되겠다.[각주:1]



http://sstatic.naver.net/people/78/200902022135124461.jpg인물사진




요즘 이라면 기독교 계통의 종교에서 사이비가 나오기 쉽겠지만, 때는 서기 184년. 당연하게도 중국에 기독교가 들어오지 못했다. 불교야 들어오기는 했지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중국땅에서 가장 메이저한 종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건 아니었다.당시 중국땅에서 가장 잘나가는 종교는 도교다. 그렇다. 신선놀음이다. 후한말. 중국 역사에서도 손꼽힐만한 난세이니 만큼, 그 시대의 도교는 상당히 메이저한 두 개의 종파를 만들어넸는데, 그중 하나는 오늘날까지도 믿는사람이 상당수 있는 장로의 오두미도다. 삼국지에서는 그저그런 2류영주로 나오는 장로지만, 현재까지도 믿는자가 있는 도교의 매이저종파인 오두미도의 3대 교주로써 도교 역사에서는 그럭저럭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오두미도 이전, 오두미도보다 먼저 도교가지고 뭔가 정치를 해보려는 도교의 종파가 있었으니 그 종파가 바로 태평도이다. 모든사람은 하늘의 이치를 따라야 해요! 나쁜짓 하면 벌 받아요! 지금 세상은 썩었어요! 그런데 킹왕짱 대단한 매시아가 올거에요! 같은 종교의 필수요소는 갖출대로 갖춘 요 태평도는 혼탁한 사회상에 힘입어 크게크게 뻗어나갔다. 한편 그렇게 크게크게 뻗어나가는 자신의 창작물을 보면서 흡족해하던 장각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한나라는 좆나 막장인데 우리애들은 무진장 많잖아. 내가 일어서면 내가 황제되는거 아니야?"


그리하여 장각은 날로 늘어나는 신도의 쪽수를 쳐믿고, 군사를 일으키기에 이른다. 그때 장각이 꺼낸 레퍼토리는 다음과 같다. “퍼런 하늘은 이미 죽었다. 누런 하늘이 일어선다.” 음양오행설에 따라 한나라는 파란색이고, 파란색 다음의 시대는 누런 시대인데, 퍼런 시대 다음에 누런시대가 오는건, 계절이 바뀌는 것과 같은 상생이므로 노란색을 상징색으로 썻다. 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지만, 그 외에 중국애들이 누런색을 워낙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도 한 몫한다. 오행설상, 누런색은 중앙에 위치한 색. 즉 킹왕짱한 색이며, 중국신화에서 가장 쌘 신의 이름은 황제(黃帝) 즉 누런색의 신 되시겠다. 하지만 퍼런색 다음엔 누런색 이라는 프로파간다 자체는 후세에도 먹혀 들었는지 위나라의 첫 연호는 황초(黃初)이며, 오나라의 첫 연호는 황룡(黃龍)이다. 한나라를 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나라의 직통이라는 뿌뿌뿡!” 하던 촉나라만 장무(章武)라는 누런색과 상관 없는 연호를 사용했다.
그렇게 중국인의 마음속에서 영혼의 색의 역활을 하던 "누런색"  이 킹왕짱임 이라는 이데올로기와 함께 황건적은 일어났다. 그들의 상징인 노오란 두건과 함께 말이다. 물론 황건적 이라는 말은 기득권층인 한나라 에서 부른 명칭이고, 황건적 측에서는, 태평군 혹은 황건군 이라는 보다 스무스한 명칭을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황건적(賊) [도둑 적] 이라는 이름의 의미만 무시한다면, 황건적 이라는 이름도 꽤나 간지다. 물론 의미가 '누런두건낀 도적놈' 이라는 엿같은 의미여서야 본인들 스스로고 황건적 이라고 말하고 다닐수는 없다.




모 애니의 모 일진은 스스로 황건적이라고 자칭하고 다니지만, 그건 일진 이야기고.




코에이 삼국지 등에서는 안습한 능력치의 야라레 정도로 묘사되는 황건적 이지만, 사실상 한나라를 멸망시킨게 황건적이니 만큼 아주 안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황건적은 초반에는 관군을 이겼다. 한나라가 워낙에 막장이니 만큼 황건적은 금방에라도 한나라를 겁탈해 버리고, 온 천하를 누런깃발로 채울 듯 해보였지만, 황건기의가 황건적의 난으로 바뀌면서부터 이는 달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민중봉기 뭐 좋다. 세상을 단번에 바꿀수 있는 괜찮은 선택이다. 하지만 애초에 황건군이 체계와 물자를 갖춘 한나라군을 초반에 이길수 있었던 이유는 황건군에게 민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못참겠다 바꿔보자!” 라는 어디선가 들은 것 같기도 한 구호와 함께 지배지의 백성들의 호흥을 얻으며, 세력을 부풀려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황건군의 규모가 커지면서 황건군의 통치는 매~우 어려워지게 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가 약 400km다.(도로거리 기준) 사람이 걷는 속도의 평균은 약 시속 4km. 즉 쉬지않고 걸어야 4일 정도 걸린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쉬지않고 걷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자는시간, 밥먹는 시간 등등을 합하면 쉬는시간은 여행시간의 거의 절반. 즉 8일 정도는 걸어야 도착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시대는 바야흐르 한나라 말기. 산업혁명 따위는 먼 훗날의 일일 뿐이오, 중국인들이 로마인들처럼 도로덕후인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오랜기간 동안 지속된 폭정 덕에 그 도로의 관리도 제대로 안됬을 것이다. 여기서 다시금 소요시간은 뻥튀기 된다. 적어도 15일 정도는 걸어야 도착 가능하다. 더욱이 당시 사람들의 체격조건은 현대인에 비해서 매우 열약했다. 평균 4km의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현대인보다 자주 쉬어져야 한다. 여기서 이틀 정도를 더 쉰다고 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리는 거리는 약 17일이다.

물론 이건 주먹구구식으로 계산한 거리다. 하지만 당시의 주와 주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멀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뭐 말을 태워 보낼 경우 훠월씬 단축되기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설로 불리는 적토마와 같은 말들. 즉 뻥이 가미된 반쯤은 환상종인 말들이 하루에 천리. 즉 400km 간다. 이는 오늘날의 도로를 달릴 경우 서울에서 부산까지 하루만에 갈 수 있는 우월한 속도이지만, 사람 달릴만한 도로가 없는 시대에 말 달리는 도로라고 제대로 구비됬을 것 같지는 않다. 또한 하루에 천리 달리는 말이라고 해도 이틀에 이천리 달리는건 무리다. 이는 하루에 자위를 5번 할수 있는 남자가 이틀동안 자위를 10번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말 역시 사람인지라 쉬어야 한다.

즉 이것저것 긍정적으로 계산해도 서울에서 부산 정도의 거리를 말타고 거니는데는 3일 이상이 소요된다.
그리고 보면 알겠지만, 당시 중국의 주의 크기는 중원땅에 자리잡은 인구밀도 높고, 그나마 작은 주 조차도 남한땅과 크기가 삐까비까 하다.




황건적은 청주, 서주, 유주, 기주, 형주, 양주, 예주 등. 후한 13주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6개 주에 세력을 떨쳤다. 그리고 위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중원땅의 좁은 대신에 인구밀도가 높은 주들 조차도 남한 영토와 거의 삐까삐까 뜬다. 즉 황건군 끼리의 의사소통은 제대로 될리가 없다.






그럭저럭 선진국이라는 2011년의 영국에서도  처음에는 정당한 목적의 시위로 시작해서, 불을 지르고 '혼돈, 파괴 망각!' 을 외치는 대폭동으로 비화된 일이 있다.[각주:2] 2011년이 이러할진데 서기 200년은 오죽 하겠는가?  당시의 황건군은 먹고살기 힘들어 일어난 사람들이다. 즉 당장에 먹고살기 힘드니 남들것을 뺐자! 라는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매우 쉬운 상황이다. 더욱이 어중이 떠중이 도적들이 요새 잘나가는 누런두건 코스프레를 하며 도적질을 하니, 황건군이 황건적이 되는건 순식간의 일이다. 황건적이 무슨 돈이있고 빽이 있어서 반란을 일으켰는가? 그들에게 제산이 있다면 부폐한 한나라를 쳐부순다는 대의명분이오, 그들에게 빽이 있다면 바른 정치가 펼쳐지기를 바라는 민중들이다. 그 돈과, 그 빽을 스스로 저버렸으니 황건적의 몰락은 자명한 일이다.[각주:3]

그렇게 황건적의 난이 관군. 그리고 의병에 의해 진압되기 시작할 무렵, 장각이 죽었다. 지도자의 죽음. 그것은 그 지도자가 축지법을 쓰고, 공중부양을 하고, 결과적으로 세상을 바꿀꺼에요~ 라는 믿음으로 반란을 일으킨 황건적들에 있어서는 매우 크나큰 사건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황건적에 맞써서 한나라의 평화를 지키자. 라는 명분하에, 실제로는 한 몫 잡아볼 요량으로 나선 이들에 있어서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한때 한나라를 먹을랑 말랑 했던 황건적의 세력은 점점 줄어들었다.

한편 황건적을 열심히 때려잡은 관군과 의병 중에서 특별히 세명의 중요한 사람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위촉오 삼국을 새운 시조님들 되시겠다. 유비, 조조, 손견이다.[각주:4]




 

  1. 근데 성경책에서만 있는줄 알았던 바리세인이 현대의 한국에서도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다. [본문으로]
  2. 물론 이건 극단적인 경우다. 대부분의 시위는 저딴식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다 보니 저 이상의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 가령 일본의 전국시대. 인의군자로 칭송받았던 우에스키 짜응의 18번은 점!령!지!약!탈! 이었다. [본문으로]
  3. 근데 사실 이게 또 어쩔수 없다. 중국땅이 좀 큰가? 돈도 뺵도 없이 일어선 반란군들이 전국적인 인프라를 갖춘다는건 말도 안된다. 실제로 중국역사상 일어난 크고작은 종교반란중 성공한 것은 홍건적의 난 하나뿐이다. 홍건적의 난은 지배층이 몽고놈이다. 중국인이여 일어서자! 라는 명분으로 성공할 수 있었지만, 후한시대의 지배층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인이다. [본문으로]
  4. 손견의 경우에는 사실상 나라꼴 갖추기 시작한건 손책떄이며, 독립국을 표방한건 손권때 이지만. 손견의 이름은 손책이 강동을 재압하는 중요한 디딤돌 이었다. 손권은 뭐 말할것도 없이, 그 손책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았을 뿐이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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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미있는 삼국지 잘 봤습니다. 요즘 저도 삼국지2 게임을 다시 시작하고 있는데요. 그 것과 더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2. 황건적의 정치이념은 조조에게 흡수된다는 일본 학자 설에 따라
    황건적은 살아남았다고 믿어요!(청주병 말고)

    내가 굳이 황장미 팬이래서 황건당을 지지하는 게 아님!
    (지크 로자 페티다!! 에리코후 아크바르~!)
    • 2012.12.09 02:07 신고 [Edit/Del]
      흠 조조의 정치적 사상이라... 문재는 황건당의 사상도, 조조의 사상도 기록이 매우 빈약하단거... 그나마 연구가 활발한 삼국지 관련이여도 이정도니 뭐...
  3. 뭐, 엄밀히 말하자면 황건적의 난은 주준, 황보숭, 노식과 같은 최후의 명장들의 손에
    진압되었다고 봐야겠지만서도.. 그들의 부장으로 활약한 조조 유비 손견이 좀 킹왕짱이긴 했습니다.

    개인적으론 한나라를 멸망케 한 건 동탁 이 시벌내미 때문으로 봅니다. ㅋㅋ
    • 2012.12.09 02:02 신고 [Edit/Del]
      가끔식 동탁을 찬양하는 자들도 있거군요. 물론 그들이 정사와 연의에서 취사선택한 소리를 들어주는건 지적고문 입죠.
  4. 황건적과 오두미교, 홍건적과 백련교도, 홍수전과 태평천국의 난, 글구 모택동과 공산당(종교는 아니지만 사상적 구심점 역할은 했죠. 유사 종교 역할도 있긴 하구)
    중국 사회 변혁은 종교와 사상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죠..
    • 2012.12.09 01:57 신고 [Edit/Del]
      마오의 것은 그냥 종교로 쳐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맑시즘을 농민한테 적응한다라.... 참새를 싹 다 잡으면 농사가 잘될거라고 진지하세 생각하는 사람의 머리에나 나올법한 이론이에요
  5. 장각이 황제가 되건 말건, 황건의 난이 성공하건 말았건 저 규모로 민초가 들고 일어났다는 측면에서
    이미 한나라의 끝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정해졌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었죠...
    그걸 그 이상으로 끌고간 당대 인물들이 말도 안되는 존재라고 밖에는.
    • 2012.12.09 01:47 신고 [Edit/Del]
      민초가 칼을 들었을때 지배층은 그들을 도적이라 칭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그들을 도적이라 치더라도 그들은 작은 도적일뿐 큰 도적은 따로있죠.
  6.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
    알찬 주말을 보내세요~
  7. 유비는똥별이
    당시 중국 전토의 인구와 면적은 오늘날의 아르헨티나와 거의 동일했다. 280제곱킬로미터와 5천만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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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1 - 후한말의 형새.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1 - 후한말의 형새.

Posted at 2012.11.26 12:39 | Posted in 기획특집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한(漢)족 이라고 칭한다. 아시다시피 한(漢)은 중국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제국의 하나일 뿐이다. 중국 최초의 왕조는 역사적으로는 은주, 신화적으로는 하나라까지 거슬러간다. 주나라의 존속시기는 천년에 달하는 것에 비해 한나라의 경우는 전한후한을 합해서 400여년, 거기에 촉한을 어거지로 집어 쳐넣어도 450년 정도다. 물론 왕조의 수명이 450년 이라는건 상당히 긴 축에 속하지만, 한보다 시기상으로 앞섰고, 1000년이 넘는 세월을 존속한 주나라나, 말로는 중화 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문자도 언어도 생활풍습도 다르던 여러나라들을 뭉쳐, 하나의 중국을 만든 진나라도 있다.하지만 그런 주나라와 진나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漢)이 중국 왕조의 스탠다드이자,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왕조, 더 나아가 민족의 이름이 되기까지 한 배경은 다음과 갔다.



1. 사실상 하나의 중국을 가능하게 한 시발점이다.

물론 기록상으로 치면, 하은주 시절에는 하나였다가 춘추시대가 들어오면서 여러 나라로 갈라졌다 라고는 한다. 하지만 초나라의 경우에는 주나라가 거의 망한 뒤에 명목상으로 주나라를 섬기기는 하지만, 그건 명목상 그러했을 뿐이다. 초나라의 민족은 주나라의 민족과는 다른 종족이다. 유물 등으로 보았을때는 묘족의 계통일 가능성이 높다.
몇몇 사서에는 대놓고 “갓 쓴 원숭이.” 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민족이 같은민족인 ‘척’ 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 역시 중원국가들에게 여러모로 개무시 당했다. 춘추시대 초입 주나라 왕이 죽네마니 할 때 주나라 왕을 도움으로 해서 주나라의 백작 작위를 받았음으로 초나라처럼 대놓고 오랑캐 취급은 받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퓨어한 중국인 이라고 보기에는 역시 무리다.
그리고 초나라와 진나라를 합하면 전국칠웅 국력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이다. 다른 전국칠웅을 찍어누르고 통일을 한 것이 진나라이며, 그 진나라를 찍어 누르고 황제가 된 항우와 유방의 출신지 역시 초나라다. 사실 시기상으로 치면 하나의 중국 이라는 골때리는 개념을 시작한건 진나라 였지만, 그것을 시작한 방법이 다름아닌 무력을 통한 침탈 이었기에 다른 나라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니꼬운 실정 이었다.
그에 비해서 한나라는 그 천고의 악당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새운 나라 였고, 그렇기에 진나라보다는 아무래도 백성이나 사대부가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이다.



2. 중국을 아시아의 진정한 패권국가로 만들어났다.

진시황시절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시킨 빠와를 모아서 흉노족까지 멸망시키려고 했다. 법가사상에 힘있어 싸우기 딱 좋은 국가가 된 진나라이니 만큼 성과는 있었다. 하지만 결국 흉노는 멸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흉노와의 전쟁에 국력을 쏟은 진나라만 쇠약해져 결국 초나라한테 망했다.
한편 또다른 내임드 유목민족이었던 동호까지 관광태우며 철치부심 하던 흉노는, 진시황을 관광태운, 항우를 관광태운, 유방을 관광태워 한나라를 동생의 나라로 삼고, 엄청난 돈을 삥뜯었으며, 유방의 불알친구이자, 한의 개국공신인 노관은 자신이 왕으로 있던 연나라를 이끌고 흉노에 항복해버렸다. 중국민족이 나름대로 힘을 기른 진과, 한 시절이 이러할진데 춘추전국시대나, 주나라 시대는 말할 것도 없다. 군사적으로 중국의 농경민족은 북방의 유목민족에게 열새였다.
애초에 진나라도 반쯤은 유목민족 이었고 (...)
하지만 이 강대하던 흉노는 한무제 시대때 본진까지 털려버렸다. 더불어 흉노의 동맹국이었던 조선 역시 이시대에 한무제에게 멸망당했다. 다만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이니 만큼 얻은 영토의 통치권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 한편 전쟁하는데 쓴 물자와 인명은 어마어마한 수준 이었으니, 마치 루이14세 반짝 하고 좆망 태크를 타는 부르봉왕조처럼, 한나라는 점점 좆망태크를 타기 시작했고, 결국 한번 망한뒤에 광무제 유수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
거기에 한무제가 고자로 만든 인간이 다름아닌 중국 역사계의 전설 사마천 이었으니, 한무제는 대충 진시황하고 비슷한 급으로 역사에서 까인다.
하지만 그가 중국을 진정한 의미의 패권국으로 만들었고, 중국인이 중국이란 나라에 자부심을 가지도록 만들어 놨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백성들은 죽을 맛이었으니, 유교에서 말하는 성군과는 거리가 매우 먼 인물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세종대왕도 한무제를 깐 바 있다.


3. 마오쩌둥 이전까지 중국문화의 소울이었던 유학을 장려했다.

본디 유학의 출발은 킹왕짱 태평성대였던 주나라 회복이었지만, 그건 춘추전국시대 아직 주나라가 나라꼴 갖추었을 때 이야기고, 전국시대 쯤 되면 이미 그건 망상이란 것 정도는 유학자들도 알았다. 물론 그런 정신박힌 유학자만 있지는 않았을 테지만, 뭐 어딜가나 꼴통 병신은 있으니 그건 넘어가자. 암튼간에 맹자시대 이후의 유학은 이미 시망한 주나라 따위 어찌되도 상관없으니, 누가 좀 나서서 이 혼돈의카오스를 끝내줘! 하는 식으로 가고 있었다. 뭐 그 혼돈의 카오스는 진시황이 끝내긴 했지만, 아시다시피 진시황은 유학은 좆나 싫어했고, 좆나 박해했다. 그 유명한 분서갱유 크리~.
유학자는 땅에 묻었고, 유학서는 불살랐다. 그게 과장됬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진나라가 유학을 박해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후 진나라를 멸망시킨, 초나라를 멸망시킨, 한나라는 유교를 나라의 기반 사상으로 정했고, 요 기반사상은 후일, 진시황을 존경해요! 라고 대놓고 커밍아웃한 어떤 꼴통 참새 학살자가, 진시황과 비스무리한 짓(문화대혁명)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그짓 하고 난 다음에는? 오히려 중국보다 한국이 대놓고 유교지상주의 나라다.


뭐 ... 별로 재미도 없는 이야기이니 줄이면.

1. 사실상 저때부터 중국시작.
2. 좆나쌘 킹왕짱 강대국.
3. 중국인의 소울이었던 유학장려의 시작.

쯤 되겠다.


하지만 열흘붉은 꽃이없고, 100년젊은 사람이 없는법이다. 광무제라는 유씨사상 최강 먼치킨의 힘으로 한번의 몰락을 피한 한나라 였지만, 광무제가 먼치킨이라고 해서 그 핏줄까지 먼치킨 이라는 법은 없다. 당장에 광무제의 멀디 먼 친척인 유비만 하더라도 본인의 능력은 상당했지만, 그 자식놈은 호구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호구계의 레전드가 아니였는가? 후한 몰락의 원인은 외척의 발호였다. 집에서 꼬꼬마 텔레토비나 보면 딱 좋은 녀석들을 만인지상 자리에 앉혀 놓으니, 정치가 제대로 돌아갈 턱이 없다. 아빠는 이미 하늘나라에 간지 오래이니, 결국에는 엄마가 실권을 잡게 되는데, 그시대의 여성교육이란 뻔하다. 여자는 순종해야 한다, 여자는 어질어야 한다, 같은 개 풀 뜯어먹는 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여성교육을 받아온 황후들은 남편이 죽고, 지 아들내미가 황제에 오른 뒤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아버지나 오빠나 기타 일가 친척에게 HELP를 요청한다.
그러면 오빠나, 아버지는 그 HELP를 받아들이고, 정치를 똑바로 하냐 하면, 그럴 리가 없다. 황제의 외할아버지, 혹은 황제의 외삼촌 이라는 막강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그들은, 마치 물만난 고기와 같이 조정을 어퍼락 뒤퍼락 주무르며, 정치권의 일인자로 발돋움 한다. 조선말의 풍양조씨가 그러했으며, 안동김씨가 그랬다. 사실 꼭 황제의 외삼촌이나, 외할아버지가 아니여도 상관없다. 그냥 황제가 자기 여동생이나 딸을 무지하게 총애해서 비록아이는 없지만, 황후자리에 앉혀 놓기만 해놓으면 얼마든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후한 말의 간신 양기가 그러했다.
양기의 여동생 양날은 본래 황제의 첩중 하나였다. 얼굴 하나는 그런대로 예뻣던 덕에 황후까지 올라갈 수 있었지만,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고, 결국 그렇게 황제는 죽었다. 이때 양기와 하등 관계가 없는 황제가 제위에 오른다면 양기는 대번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서, 사약이나 원샷하고 죽어야 하겠지만, 그때의 양기는 이미 다음 황제 정도는 그럭저럭 바꿀 정도의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황제 버금가는 권세를 가진 양기가, 제대로된 정치인 이었다면 한나라가 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양기의 취미는 음주, 탄기(알까기). 격오(오목), 축국(축구) 등이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놀기 좋아하는 녀석이다. 말을 더듬는 식으로 좀 심약한 편이기는 했지만, 잔계산에 능했다고 사서에 대놓고 나온다. 한마디로 말해서 어버버 하면서 다 해처먹는 그런 분 이셨다.양기의 아내인 손수는 당대의 패션리더였는데, 당대 시대상으로 볼 때 높으신 분이 패션리더면 좀 답이 없어진다. 당장에 조선말의 황후였던 민비나, 청말의 섭정황후였던 서태후의 어마어마한 사치를 생각해보다. 더욱이 당시는 한나라시대. 민비나, 서태후가 사치사치 거리고 있을 때와 천년 이상의 갭이 벌어진 시대다. 그런 시대에 금가락지나, 옥가락지 같은 물건을 높으신 분의 마눌님이 수집하는데 혈안 이었으니 나라 꼴이 제대로 돌아가면 그게 이상하다.
뭐 그래도 순기능도 있긴 하다.
손수는 당대의 패션리더이자, 중국 패션계의 전설.
양기와 손수의 시대동안 손수의 덕으로 중국의 화장문화는 엄청 발전했다고 한다.
다음은 손수가 정립한 화장의정석(?) 인데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상급의 기술들이다.


1. 수미(愁眉): 근심에 잠긴 것처럼 보이게 위해 눈썹을 가늘게 그리는 화장법

2. 제장(啼粧): 눈 밑을 하얗게 칠해 울고 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화장법

3. 타마계(墯馬髻): 머리를 살짝 기울게 하여 여자의 몸가짐이 다소 흐트러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

4. 절요보(切要步): 허리를 꺾고 흔들면서 걷는 방법

5. 우치소(齲歯笑): 이가 아픈 것처럼 얼굴을 살짝 찡그리는 방법 




더욱이 손수는 계산은 빠르지만, 성격은 심약했던 남편과는 다르게 성격 역시 불같았다. 따라서 여성하위시대인 한나라시대 나름대로 입김이 쌧다. 그러다 보니 양기와 손수는 부부인데도 서로가 집 한체씩을 가지고 있었고, 양기가 집을 확장공사하면, 손수 역시 집을 확장공사하는 등의 쓸대없는 경쟁의식에 부부가 불타올랐다. 또한 양기와 손수는 일가친척들을 죄다 조정의 벼슬에 진출 실켰고, 조정은 양씨와 손씨가 판을 쳤다. 본래 이런식의 신하들은 황제가 죽음과 동시에 권력을 잃고,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표준이기는 하지만, 양기의 여동생의 남편 되시는 순제가 죽을때 이미 양기는 너무나도 큰 존재였다.
새로운 황제 정도는 자기 힘으로 정할 수 있을 정도로.
양기는 황제가 죽자 2 짜리 꼬맹이를 황제에 앉혔다. 이는 그 2 짜리 꼬맹이가 전대 황제인 순제의 외아들 이란 명분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한 이유는 나이가 어려야 양기가 어퍼락쥐퍼락 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꼬꼬마 텔레토피 황제는 3살에 서거하셨다. 영아사망률이 워낙에 높은 시대다.
3살짜리 황제가 죽은뒤, 양기는 이번에는 황족중에 8살짜리. 오늘날로 치면 초등학교 1학년 짜리를 대려다가 황제 자리에 앉혔다. 그런 꼬맹이를 황제에 앉힌 이유는 역시나 지가 다 해먹기 위함이다. 하지만 초등학교1학년 황제 질제는, 초등학교 1학년 치고는 똑똑한 편이었고, 양기와 손수가 어떤 막장짓을 저지르는지 그럭저럭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양기를 보자마자 대뜸 한마디 날렸다.



"너님이 날치기 대장군 인가요?"



어린아이답게 아무것도 모르는 꼬꼬마인줄 알고, 질제를 황제 자리에 앉혔던 양기는 ‘날치기 대장군’ 이라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아무리 양기가 대장군 이라고는 하지만, 황제가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언재든지 재거할 수 있는 벼슬아치에 불과했다. 당장은 어린 황제가 손을 쓰지 않더라도 언재든지 손을 쓰면 그는 모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양기는 어린황제 질제의 간식에 독을타, 질제를 암살했다. 서거당시 질제의 나이 9살. 초등학교 1학년에 황제에 즉위해서, 초등학교 2학년에 암살당한 병신같은 삶이었다. 어린나이에 걸맞지 않게 똑똑했지만, 어린아이 답게 신중하지 못했다. 그딴걸 말로 꺼내면 어쩌란건지 원~.
한편 좆나 패기만 넘치시던 초딩황제 환제가 죽자, 이재 그만큼 어린 유력황손은 남지 않았는지 양기와 손수는 차선책으로 15살짜리. 즉 중학교 2학년 짜리를 황제에 앉혔다. 중학교2학년. 좋을 때다. 전 세계를 손에 넣을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당당하게 하는, 어둠의 다크에서 죽음의 데스가 느껴지는 혼돈의 카오스의 시기. 그런 시기에 진짜로 지존의 자리에 올랐다. 새로 즉위한 황제 환제는, 전 황제인 초딩황제 질제 이상으로 패기만만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전임자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최측근이였던 조등과 함께 철호의 찬스를 엿보기로 했다.

조등. 그는 환관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만한 집안 출신인건 아니다. 그의 선조 대시는 조참은 한나라의 개국공신중 한명으로, 중국 역사상 최고의 승상이라는 소하의 후임 되시는 나름 래전드다.[각주:1]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직업은 환관. 즉 고자다. 환관이 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첫 번째로는 죄인이 궁형을 받는 경우고, 두 번째로는 환관의 권력이 탐나서 스스로 고자가 되는 것이다. 조등은 명문가인 조씨의 후예였지만, 집안의 중추와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갈수 있는 한계가 명확한 상황. 이 상황해서 그는 더욱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인생을 거는 모험을 했다.
그 모험은 바로 고자되기.
모험맞다.
환관시술을 받다가 죽는 사람도 상당했던 고대의 시대. 그는 권력이라는 사탕을 얻기위해 그 모험을 했고, 결국 승리자가 되었다. 뭐 그덕에 평생 색스를 못하는 몸이 되기는 했지만, 그는 권력의 중추에 올 수 있었고, 그가 지지하던 황제 후보였던 환제가 황제가 되기에 이른다. 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측근. 그야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 하지만 그 자리를 느끼기에는 양기와 손수 부부라는 장애물이 너무나도 확고하게 버텼다. 하지만 애초에 환제의 즉위 자체가, 양제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시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중학교 2학년 황제 환제는 그냥 순둥이인 척, 순둥순둥 살았고, 조등은 그 순둥이의 애완동물인 고자1호로 지냈다. 그렇게 그들이 숨을 죽이고, 기회를 맞보던 중 드디어 기회가 왔다.
그 기회는 양기와 손수가 스스로 재공했다.



양기 : 저기 있잖아. 솔까 우리가 명색이 외척인데 말이야, 지금 황제하고 우리하고 연줄이 좆도 없잖아. 이거 뭔가 장기적으로 문제가 좆나 많다고 생각해.
손수 : 나도 그생각 했어. 그래서 말이야 내 외삼촌의 부인의 전남편의 딸이 있는데 게가 한미모 하거든. 개를 후궁으로 만들고, 나중에 황후로 올리는 건 어때? 물론 전남편의 딸 이라는 신분은 병신같으니, 게네 엄마는 죽이고 말이야.



마눌님의 재안을 들은 양기는, 그 외삼촌의 마누라의 전남편의 딸. 이라는 여자아이를 보러 갔다. 근데 보러가니까 진짜로 비쥬얼이 꽤나 괜찮은게 아닌가. 이만하면 새 황제의 장난감이자, 황제와 일족의 연결선으로 좋을것이다. 라고 생각한 양기는 마눌님의 재안을 실행했다. 하지만 문재가 생겼으니, 입막음을 위해 죽이려 했던 외삼촌의 마누라가,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궁전으로 가 이 일을 다 꼰지른 것이다. 이 일을 듣고 빡친 환제는 이 일을 명분으로 하여 속전속결로 양기를 포위했다.
한편 다 틀렸다는걸 깨닳은 일세의 막장 부부. 양기와 손수는 자살했다. 이로인하여 한나라가 안정을 되찾았다면, 삼국지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환관의 도움으로 황권을 강화시킨 환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람은 믿을 수 없다. 하지만 고자는 믿을 수 있다.



그렇게 그는 대놓고 환관을 총애했다. 뭐 그 고자들은 환제 시대떄는 나름대로 밥값 했던것 같다. 양기이후 새로운 외척이 발돋움 하려고 하자 조등을 비록한 22명의 환관들은 그 새로운 외척세력을 밟아 놓았고, 그 상으로 후작자리와 함께 양자를 들여 가문을 꾸릴수 있는 권리를 하사받았다.
그렇게 그는 대놓고 환관을 총애했다. 뭐 그 고자들은 환제 시대떄는 나름대로 밥값 했던것 같다. 양기이후 새로운 외척이 발돋움 하려고 하자 조등을 비록한 22명의 환관들은 그 새로운 외척세력을 밟아 놓았고, 그 상으로 후작자리와 함께 양자를 들여 가문을 꾸릴수 있는 권리를 하사받았다. 한편 이 상을 받은 조등은 하후씨의 아이였던 조숭이라는 아이를 양자로 들었는데, 이 조숭의 아들이 바로 조조. 그가바로 위나라를 새운 시대의 영웅 조조 되시겠다. 조조의 가문은 이러한 배경을 가진 환관계의 전설 가문이었기 때문에 십상시의 삼촌이라고 나대고 다니는 지나가던 사람A 정도는 참!살! 할 수 있었던 거다. 레벨이 다르다.

한편 외척 양기에 반대하던 재야유학자 집단, 후일 청류파로 불리는 집단은 고자가 실권을 잡는다는 사실에 마음에 안들었던 고로, 그리고 환관세력이 제2의 외척이 될 가능성이 보이자 환관세력과 첨예한 대립을 새우게 되었는데 그 제야유학자 집단이 바로 청류파이다. 그리고 반대편인 환관은 자연스럽게 탁류파 라는 이름을 얻었다. 청류파는 탁류파 고자새끼들이 역적이라며, 대놓고 충돌할 기미를 보인다. 하지만 먼저 선수를 친 것은 환관세력이었고,환관세력은 청류파 주동자 200명을 감옥에 잡아 쳐넣는데 성공한다. 그리하여 청류판은 고향땅으로 내려가서 의병을 일으켜 환관과의 결전! 이라는 최후의 수까지도 생각했지만, 탁류파의 지도자인 조등은 이쯤에서 협상안을 재시한다.



조등 : 그냥 벼슬 깍는 선에서 끝낼태니 이쯤에서 화해하죠.
청류파 : 콜.




그렇게 조등은 싸움을 무탈하게 끝냈고, 그로인해 환관에 고자이지만, 수많은 선비들을 살린, 청류파 사이에서도 나름대로 존경받는 사람으로 남게된다. 더욱이 그가 입양한 아들인 조숭의 손자 조비가 훗날 위나라의 황제 자리에 오르면서, 그 역시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되니 조등 그야말로 중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환관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고자계의 전설이다. 더욱이 그는 무사히 정계를 은퇴해서 늙어 죽었으니, 정치거물로서는 이례적으로 별 탈없는 삶을 살다갔다. 고자라는 것만 빼면 말이다.


 



  1. 단 조등이 조참의 후예라는 것은 뻥 이라는 설도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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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조는 조등의 손자라는 권력만 믿고 깝친 건 아닙니다.
    지 능력이 탁월하다보니 뭐든 해낼 수 있다고 여긴 거죠.
    심지어 환관 장양을 죽이려고 혼자 쳐들어가기도..
    • 2012.11.26 15:53 신고 [Edit/Del]
      조사마의 능력이야 당연지사죠. 거의 모든 삼국지 게임에서 능력치 총합 1위를 마크하시죠. 하지만 만약 조사마의 집안이 잘나가는 집안이 아니였다면, 조사마는 유력환관을 족치는 일을 제대로 못했을 것입니다. 그정도 상황판단 능력은 있으시니까요. 죽거든요...
  2. 화장의 정석! 손수가 손수 보여주는 화장 필살기를 보고 싶어지네요.. 쿨럭.. ㅋㅋ
  3. 이히리히디히
    손나....손나.....
  4. ;;아앗... 마지막의 오나여 무슨 장면인가 싶어 무심코 검색했더니.;; 으음...;;;
  5. 미주랑
    ...결론은 뭐든지 장단점이 있는것이었군요(먼산)
  6. 좋은 정 artie la conception de ce site est très agréable et à cause de cela, l'interface de ce blog devient convivial. Mais il ya un problème qui est là n'est aucun article particulier ou une description sur le blog est fourn asdfwerwqrafd
  7. 어쩌면 중국은 너무 유화 정책을 취한게..
    나중에 앞길을 막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뭐.. 이도저도를 떠나.. 다민족 국가의 현실은 늘 위험이 상존하고 있고..
    근대화 된 지금도 그건 한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지 싶네요.
    • 2012.11.28 12:11 신고 [Edit/Del]
      근데 사실 그 큰 땅덩어리는 뭘 해도 갈등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라서. 만일 티벳문제하고 위구르 문제가 기적적으로 해결되면 동부와 서부의 빈부격차에 따른 갈등이나, 민주주의와 독재정치에 대한 갈등이 좀더 정면으로 나오겠긔요. 뭐 최소한 저것들은 한국에도 있는 구도라서 친근감(?) 은 느껴지겠네요.
  8. 유비는똥별이
    삼국지연의만 보면 중국이 왜 세계최강대국이 될 수 없고 영원히 다른 나라의 눈치밥이나 쳐먹고 사는 2등국가가 돼야만 하는지 너무나 잘 알 수가 있다.

    오직 유씨가 하면 뭐든지 다 잘했다고 박박 우기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리 업적을 세워도 병신 취급을 하는 그따위 썩어빠진 유씨 위주의 인종차별질을 해대니 중국은 후진국이자 약소국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솔까 한 이후 중국은 언제나 다른 나라의 밥이 되기만 했을 뿐이다.

    사마염이 진나라를 통일하자 그 후손들이 얼마나 병신들만 골라 태어났는지 천재인 사마의의 직계후손이라는 사실이 의심될 정도였다. 특히 멍청해서 자기가 써놓은 글도 못알아보는 사마충과 그보다 넘사벽으로 더 멍청해서 아예 거동 자체를 못하고 나이 30넘어서까지 똥오줌도 못가리는 중국 최악의 천치인 사마덕종에 에휴... 그래서 진이 망하니까 남북조시대가 됐고 이 시기에 삼국시대보다 더한 케챂파티가 벌어졌다. 결국 수양제가 천통을 하긴 했는데 이 병신같은 수나라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인 고구려의 밥이지. ㅋ 을지문덕 하나 때문에 아예 나라가 박살이 나버린게 수나라다. 게다가 그 직후 세워진 당나라도 한심하긴 매한가지라 십라똥구녕이나 후빨하다가 황소의 난으로 당나라가 망했지. 오죽했으면 최악의 오합지졸을 표현하는 말이 "당나라 군대"겠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이건 그냥 커피고 이 이후의 중국이 T.O.P.야. 이후 조운 자룡의 직계후손인 조광윤이 송나라를 세웠지만 오늘날의 몽골인 원나라에게 밥노릇을 아주 확실히 했다. 이당시 중궈놈들은 쿠빌라이의 쿠자만 들어도 공포이 지려서 바지에 오줌을 지릴 정도였다. 이후 어찌어찌해서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다. 명나라는 그나마 1~200년 정도는 제대로 나라를 다스렸다. 후한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나라를 다스린 첫 사례지. 근데 그것도 얼마 못가고 임진왜란이 발생해서 거기에 때려붓고 미친 주익균이 황제가 되면서 조정은 병신되고 그렇게 만주족인 청나라에게 잡혀먹혔다.

    거기에 이후 영국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결국 아편전쟁이 벌어지고 완전 박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다가 이후에 한반도를 놓고 청일전쟁을 벌였다가 또 박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하하하하하하~ 일제가 패망하자 공산주의에 물들어서 소련의 빵셔틀 노릇이나 하고 자빠졌다가 냉전이 붕괴되자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눈치밥이나 쳐자고 있는게 중국의 영원한 빵셔틀 현실일 뿐이다.

    만약 조조나 손견을 신으로 숭배하는 중국인이였으면 몽골마냥 사방으로 퍼져서 중국의 국토는 지금의 미주지역 전체를 합친 정도의 거대제국을 형성했을 것이다. 유비관우장비만 좋아라 하고 나머지를 죄 쓰레기취급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생각을 틀 안에 가두고 마는 꼬라지인 것이다.

    결국 유씨만 주인공이라는 폐쇄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 중국은 중화사상에 빠지게 되고 이 때문에 정복활동을 아예 하지 않아 결국 그렇게 큰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놈 저놈들의 속국인생만 계속 끝없이 영원히 반복할 뿐이다.

    결국 연의식 사고방식은 개척정신을 저해하기 때문에 영원히 꼴찌국가로 남을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산국지 최악의 무능아이자 최악의 악당은 다름아닌 유비 현덕 혼자밖에 없다. 동탁 중영조차도 유비 현덕에 비하면 아주 훌륭한 인격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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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제일의 걸물이 유비라 생각하는 이유.삼국지 제일의 걸물이 유비라 생각하는 이유.

Posted at 2012.11.02 06:30 | Posted in 리얼월드/리얼월드 역사




인터넷의 개통과 동시에 ‘대 토론시대’ 가 열렸습니다. 골방에서 하늘을 보는 철학자부터, 병신력으로 비단을 짜는 찌질이 까지. 수많은 유형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이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서 이거저것 의견을 말해보기도 하고, 기존의 해석과는 다른 재해석 이란걸 내놓기도 합니다. 그런 일들이 우리가 알고있는 온갖 분야에서 이루어 지고 있으며, 삼국지 역시 그러한 일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입니다.
인터넷 개통후 삼국지 토론의 추세는 간단합니다. 기존의 연의에서 빨아주던 인물을 펌하하고, 연의에서 까던 조조, 동탁 등의 인물을 재조명 한다입니다. 물론 그러한 시도는 의미있는 시도이며 조조맹덕이나, 조조의 여러 문무백관들. 순욱, 조인, 하후연, 순유, 정욱 등은 단순한 악당. 혹은 무능력자로 격하당하곤 했으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조조는 시대의 걸물이었고, 순욱을 비롯한 모사진들은 왕좌지재 였으며 조인과 하후연은 각각 총사령관과 야전사령관으로써 뛰어난 능력을 가진 기재 였습니다.




하후돈은 그냥 행보관 (...) 
행보관 일 잘해서 대장군 다는것도 능력이긴 하다.


이들을 제평가 하는건 좋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제평가 함으로 인해 끊임없이 까이고 까이는 이가 있으니 바로 유비입니다. 유비. 유비현덕. 유예주. 유황숙. 등 살아생전 수많은 이명으로 불린 군웅. 그가 이룬 것은 물론 조조보다 적었습니다. 조조가 중국 영토의 절반이상을 먹을 동안 그는 겨우 1개의 주인 익주를 차지했을 뿐입니다. 물론 수도가 불타고 허구한날 전쟁이 벌어지는 난세중 그나마 가장 온전하게 힘을 비축해논 익주를 차지한 것은 적지 않은 자산이며 나름대로 이민족들을 회유하며 국경확장을 하기도 했지만, 그런거 다 감안해도 조조가 이뤄논 것에 비하면 상당히 초라한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유비와 조조의 출발점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연의건 정사건 간에 유비의 정적은 유비를 욕할 때 다음과 같은 멘트를 날리고는 합니다. ‘돗자리나 짜던 놈.’ 물론 유비가 친척의 인맥빨 이라고는 하지만 당대의 유명한 학자인 노식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던 인물이니 만큼 아주아주 찢어지게 가난한 캐서민 이라고 보기에는 힘듭니다. 또한 널리고 널린게 유씨. 그것도 전한 시절에나 왕 해쳐먹었던 찌끄래기 유씨이기는 하지만 어찌 됬든 간에 황실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나름대로의 자산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조조가 가지고 시작했던 것은 유비와 상대가 안됩니다.
조조의 할아버지인 조등은 환관입니다. 하지만 후한말을 주름잡았던 10명의 환관세력가. 십상시에는 거론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조조가 환관가문이기는 한데 십상시보다는 좀 격이 떨어지는 가문이 아닐까? 하고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만 이는 천부당 만부당입니다. 조조의 할아버지인 조등은 말 그대로 환관계의 레전드 였습니다. 전성기의 그는 후한말 양대 정당이었던 청류파와 탁류파 중 탁류파의 수장을 차지했으면서도 청류파 신하의 목숨을 여러번 살려 줌으로 해서 정파를 초월한 권력을 누렸습니다.
십상시 시절의 황제인 영제의 전대황제인 환제는 사실상 조등이 황제로 만든 것에 가깝습니다. 그후 외척이 황권을 넘볼대에도 조등이 수장으로 있던 환관세력은 외척세력을 그야말로 개발살 내버렸으며 이로 인해 황제에게 공로를 인정받고, 양자를 들여 가문 가꾸기 놀이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받게 됩니다. 그로 인해 조조의 아버지 조숭을 입양할 수 있었던 것이죠. 한편 조숭은 양아버지의 권세를 빌려 삼공의 하나인 태위 벼슬을 사기도 했는데 삼공은 조선시대로 치면 삼정승 정도 되는 위치로 조조와 하진에 의해서 ‘승상’과 ‘대장군’ 직위가 부활하기 전까지는 한나라의 최고 벼슬 이었습니다.
이런 잘나가는 가문 이었기에 십상시중 하나인 건석의 숙부를 족치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겁니다. 같은 환관 가문이더라도 십상시의 가문보다 조조의 가문이 훨씬 더 대단했으니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조조의 가문은 ‘아버지는 조정 최고위 벼슬을 돈으로 샀고, 할아버지는 황제를 새운 정도의 가문’ 쯤 되겠습니다.

 


조조는 가문의 끝발로 치면, 명가 가문이라고는 하지만
본디 첩실 출신인 원소보다도 위였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삼국지에 나오는 여러 군주 중 유비는 뒷배경이 가장 없는 편에 속합니다. 유표, 유언(유장), 유우 등은 유비같은 쩌리 황족과는 다르게 한 주의 지사로 임명될 정도의 황족이었고, 원소, 원술은 명가의 후손이었습니다. 유비와 비슷하게 무기반으로 시작한 군주는 손씨가문 정도가 있겠지만, 아시다시피 손씨가문은 일대에 기반을 싸운게 아니라 손견이 어느정도 기반을 쌓아 손책에게 물려주고, 손책이 발전시킨 기반을 손권이 물려받는 등의 인수인계 과정을 거칩니다. 오나라는 일대에 이루어진 나라가 아닙니다.
그에비해 유비는 말 그대로 맨주먹에서 시작되어 지존의 자리에 이루었는데 길고 긴 중국 역사에서도 그정도 업적을 이룬이는 얼마 없습니다. 한국 사에서는 전무하며, 일본 사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의 유일하군요. 실제로 조조는 유비를 매우 두려워 하였으며, 그보다 시종일관 세력이 딸렸던 유비를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두려워 했던 이유는 유비가 자신과 출발점이 달랐다는 것을 조조가 잘 알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조조는 유비를 자신의 '맞수' 라고 표현 했습니다.[각주:1]






다만 유비는 중화권 전체를 통일한 패업황제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의 분명한 한계이며, 그렇기에 유비와 마찬가지로 맨주먹에서 시작한 두명의 패업황제. 유방과 주원장에 비해서는 격이 상당히 딸립니다. 하지만 유비와 동시대에는 조조라는 또하나의 걸물이 살았으며 조조라는 걸물은 유방을 캐무시한 안목낮은 항우와는 다르게 유비가 약할 무렵부터 그를 눈이겨 봤습니다. 따라서 유비는 조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고, 조조 역시 유비 때문에 천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둘의 이야기가 더욱 재밌어 졌고, 그 둘은 중국역사 최고의 영웅중 한명으로 거론되니 만큼 유비도 조조도 서로에게 큰 불만은 없을 겁니다. 만일 그들이 저승에서 만난다면 옛날일을 술안주 삼아 술 한병을 거뜬이 비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1. 한중에서 유비에게 전쟁에서 진후, 조조는 "유비는 나의 맞수지만 병법이 부족하다." 라는 말을 남겼다. 이 기록이 와전되어 화용도의 일화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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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읽었는데 기억이 안나 ㅜㅜ
  2. 조비가 이릉을 까긴 했지만 익주들어가기 전까지
    유비는 항상 전쟁터에서 살았죠.
    서서나 제갈량 얻기 전까진 혼자 작전짜고 지휘하고..
    관우나 장비가 별도의 권한을 움직이는 건 익주 접수 후죠.
    관우는 형주, 장비는 자동..

    누가 유비 패왕설을 내놓던데 그게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유비군단의 80%가 유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다만, 전 하후행보관같은 츤데레(창천항로버전),
    적벽대전에서의 주유, 실제 삼국정립을 프로듀싱한 노숙이 취향이라능..
    • 2012.11.02 15:50 신고 [Edit/Del]
      주유하고 노숙은 좀 많이 과소평가 받았죠.
      뭐 주유의 경우에는 삼국지 11 기준에서는 제갈량하고 삐까뜨고
      삼국지 12에서는 여포와 함꼐 게임 전체에서 양대 사기캐(레알 주유나 여포 둘 중 하나 있으면 어떠한 약소세력도 쭉쭉 뻗어나가는게 가능) 이지만 노숙은 그저 ....
    • 2012.11.02 15:58 신고 [Edit/Del]
      아.. 법정님을 빼먹었군요.
      법정도 ㅎㅇㅎㅇ~~~.
    • 2012.11.02 16:43 신고 [Edit/Del]
      ㅇㅇ 연의의 제갈량은 사실, 제갈량의 내정과 법정의 전략이 합쳐진 듯한 존제였죠
  3. 조조가 먼닭일 뿐. 유비가 맨바닥에서 이뤄낸 것들은 무시할 수 있는 게 못 되죠.
    유비가 얼마나 섹시(!)했으면 원소와 조조의 유혹을 뿌리치고 조운이 유비한테 왔겠습니까..
    유비가 얼마나 요염(!)했으면 관우가 조조한테 갔다가 유비에게 돌아왔겠습니까..ㄷㄷ
  4. 조조가 사기라는.
    집안. 재력. 거병시의 사회적 지리적 위치는 물론이고;;
    본인의 능력 또한 이미 당대에서 손꼽히던 수준이었으니;;
    맨땅에 해딩했던 유비가 그정나마 조조를 위협할 정도였다는게 더 놀랍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5. oh+
    유비깡패설까지 고려하면 진정한 능력자는 역시 유비인가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6. 미주랑
    ...하지만 천하의 조조나 유비도 갖지 못한것이 있었으니 이교. 이교중 소교를 가진 주유야 말로 진정한 위너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진삼국무쌍에 한정해서)
    • 2012.11.02 18:05 신고 [Edit/Del]
      뭐, 코에이삼국지(전략) 에서도 이교는 시종일관 미녀로 나옵니다. 특기 역시 괜춚 하고요. 물론 중반 넘어가면 써먹을 특기는 아닙니다만요. 후반까지 쏠쏠하게 써먹는 손책이나, 그냥 대놓고 사기인 주유와는 다르게.
    • 2012.11.02 20:25 신고 [Edit/Del]
      실상은 약탈 결혼!

      -3-3-3--3===3=3=3=3=3======3
  7. 이히리히디히
    중국의 '삼국'이라는 드라마에서 유비가 정말 멋지게 표현되지요. 물론 조조도 마찬가지로 간지폭풍이지만.
    조조의 대사를 오마쥬한 "천하가 나를 버릴지언정 내가 천하를 버릴순 없다"라는 대사는 정말로 감동이었습니다.
  8. 역사관이나 인식에 따라서 군주를 재평가하는 경우도 있는듯 합니다.
    개인적으론 위험한 발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비가 무서운 인물로 보는게, 설사 그가 나서서 전략짜고, 전쟁 지휘하지 않고..
    뒤에 앉아 있었더손 쳐도, 결국 그를 따르며 목숨 걸게 만들었다는 덕목 만큼..
    군주로서 무서운 덕목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대가리는 좀 부족해도 똑똑하고 잘난 부하들이 목숨걸고 따르면 되는거지요.
    그런데 그게 가장 힘든거 아니겠습니까?
    • 2012.11.06 10:52 신고 [Edit/Del]
      차라리 조조의 경우에는 열심히 노력하면 비슷한 경지에 오를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이 들지만, 유비형 리더의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그짓을 할 수 있는지 갈피 자체를 못잡겠습니다.
  9. [삼국전투기]란 만화를 아주 잼나게 봤는데, 유비의 비중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인기투표에서는 Best 5안에 끼는 걸 보고...
    역시 삼국지를 유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구나... 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ㅋㅋ
    • 2012.11.06 10:53 신고 [Edit/Del]
      뭐 삼국전투기의 유비는 상당히 괜찮게 표현된 편입니다. 촉 비중이 너무 적다. 라는 말도 있지만, 애초에 촉에 대해서 모르는 삼덕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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