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역사 <3> 기업으로서의 첫걸음.구글의역사 <3> 기업으로서의 첫걸음.

Posted at 2012. 3. 19. 06:16 | Posted in 기획특집

언잰가 기자 한 명이 빌게이츠 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의 라이벌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빌 게이츠의 라이벌 하면 우리는 보통 스티브 잡스를 떠오르지만 당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CEO도 아닌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시기 였기에 감히 빌 게이츠의 라이벌 운운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빌 게이츠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무인지하 만인지상. 세계 IT의 황제일 뿐 아니라 세계 경제의 황제이기 까지 한 사나이. 거칠것이 없는 최 전성기 였다. 그때의 빌게이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창고 어딘가에서 코드를 짜고 있을 젊은이들."


빌게이츠가 이 말을 할 떄 쯤인 1998년 6월. 구글을 탄생했다. 그들이 창업을 한 장소는 바로 켈리포티니아에 있는 한 창고였다.
그때 레리와 세르게이는 허드랫일을 해줄 쫄따구 한명을 고용했는데 그의 이름은 크레이그 실버스타인. 레리, 세르게이와 마찬가지로 스탠퍼드 대학의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아마도 처음에는 학비나 벌어볼 요량으로 구글에 취직했을 실버스타인은 훗날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실리콘 벨리의 다른 1류  IT 기업이 그렇듯이, 우리도 창고에서 시작했습니다."


창고에서 시작한 기업은 어떤 기업일까? 아무래도 번듯한 사무실이 아닌 창고에서 시작했으니 만큼 경제적 사정은 그리 좋지 않을 것이다. 매월 매월 직원들 월급을 어떻게 줄 것인가가 사장의 주요 스트레스인 기업. 즉 영세기업. 구글도 처음에는 바로 그런 기업이었다. 하지만 자금도 없는 주재에 기업을 시작했으니 만큼 한가지는 탁월할 것이다. 그 한가지는 바로 기술이었다. 돈도 없고, 경영학 따위는 머리만 아프지만, 내 기술 하나는 자신있다. 하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창고에 IT 기업을 여는 것이다
.
구글 역시 다른 것은 몰라도 기술 하나는 자신있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창고는 너무 좁았는지 구글은 5개월 후 스탠퍼드 대학가에서 2km 정도 떨어진 그럭저럭 운치있는 2층 사무실로 이사를 갔다. 기업의 초창기에 쓸대없이 돈을 쓰는 것은 금물 이지만 레리와 세르게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레리와 세르게이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학생 출신이고, 구글 역시 초창기에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학생이 주요 고객층 이였다. 구글의 거의 유일한 소비층인 스탠퍼드 대학교의 학생들이 입소문을 어떻게 내주냐에 따라서 기업으로서의 구글의 명운이 갈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탠퍼드 대학교에는 우수한 공돌이들이 많다. 더욱이 그 공돌이들은 레리와 세르게이의 후배들이다. 한다리, 혹은 두다리 건너면 말을 건낼 수 있는 그런 사이었다. 즉 스탠퍼드 대학교 근처의 사무실은, 스탠퍼드 출신인 레리와 세르게이 입장에서는 사업이 확장되면서 인재를 구하기 딱 좋은 그런 자리였다.

레리와 세르게이는 1999년 1월 스탠퍼드 대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구글에 입사하면 공짜, 음료와 공짜 스낵을 준다는 광고를 하면서 우수인재 확보에 열을 올렸다.



제아무리 우수한 인물이라도 사업이 커지면 혼자 모든일을 다할수 없다.
우수한 인재를 많이 얻는것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입아프다.



그렇게 확보한 스탠퍼드 대학표 브랜드 인재 중에서는 한국계도 있었다.
데니스 황. 한국 이름 황정목. 그는 영문 위키백과에도 항목이 작성 되었을 정도의 유명인이다. 현재 구글에서 인터네셔널 웹마스터 직책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그 유명한,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구글 로고를 디자인했다. 몰론 구글의 로고가 워낙 많이 바뀌는 지금에 와서는 그 혼자서 모든 구글 로고를 디자인 하지는 못한다. 여담이지만 황정목 역시

"만일 내가 한국에서 교육 받았으면 망했을듯."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사람은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왔다가, 다시 미국간 사람으로 한국과 미국 양쪽의 교육을 전부 경험했다. 그런 사람이 한 발언이 저러니 ... 뭐 한번쯤 생각해볼 문재다.



구글 로고 디자이너 황정목

인재는 그럭저럭 해결했다고 하지만 초창기의 구글은 결코 이득이 나는 기업은 아니었다. 적자를 보거나, 흑자를 겨우겨우 저공비행하는 수준 이었다. 그런 구글이 망하지 않고 버틸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구글의 기술력에 관심을 보인 두개의 투자회사의 투자 덕분이었다. 각강의 투자회사의 이름은 클라이너 퍼킨스와, 세쿼이아 캐피털 이엇다.

그들이 구글에 투자한 금액은 합산 2500만 달러. 우리돈으로 약 300억원. 지금 생각해도 많은 돈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구글에 돈을 빌려주었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이다. 세계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보면 500억은 되는 돈이라 할 수 있다.뭐 초창기에 그 두개의 투자회사는 수익도 안나는 기업에 투자했다고, 투자자들에게 엄청 쪼임을 받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뭐 (...) 벤처투자 역사상 최고로 현명한 투자중 하나로 칭송받고 있다.
 
2000년 6월. 구글이 회사로서 창립된지 2년 쯤 되었을 때 구글은 드디어 야후와 검색엔진 재공 계약을 맺었다.
그로 인하여 구글은 한시름 놓기는 했지만 여전히 구글은 돈을 많이 버는 IT 기업은 아니었다.

레리는 농담으로 다음과 같은 말까지 했을 정도다.


"세르게이가 나이트 가서 여자 못 꼬시는데 적자나는 기업 사장이라서 그럼요 ㅋㅋ"

여담이지만 레리는 구글의 사장이 아닌 CEO 였다. 뭐 그냥 사장이나 CEO 나 높고, 아름다운 자리이기 때문에 이름을 붙인 것이지 별 의미는 없던 것 같지만 말이다. 여튼간에 구글과 돈은 큰 인연이 없었다. 인연이 굳이 있다면 돈을 버는 쪽 보다는, 돈을 쓰는 쪽 이었다. 레리와 세르게이가 '오버추어' 광고 시스템을 채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버추어 라는 마법의 광고 시스템. 요즘은 대세를 넘어서 검색업계의 상식 수준이 된 광고 시스템을 채택하면서 부터 구글은 흑자를 보는 회사가 되었다.

오버추어 전까지의 인터넷 광고는, 아니 광고시장 자체는 굉장히 불합리했다. 만일 당신이 샤프팬슬과 지우개를 생산하는 기업을 가지고 있고, 그럭저럭 돈이 있어서 좆선일보에 광고를 낸다고 치자. 그로 인해 어느정도 사람이 모이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굉장히 비효율적인 광고법이다. 좆선일보를 보는 모든 이가 샤프 팬슬을 사용하고 싶어하는 이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광고 노출수 대비 실제 수익이 무지무지하게 낮을 수밖에 없다. 신문광고 뿐만 아니라 TV광고, 잡지광고, 그리고 애드센스 광고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버추어 광고는 달랐다.
다른 광고가 마구잡이로 쏘는 기관단총이라면 오버추어 광고는 유도탄 이었다.




오버추어 광고는 특정 검색어를 입력한 소비자가 특정 광고를 보개 만드는 광고방식 이다. 아무래도 지우개 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는 이는 지우개를 실제로 구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말인즉 지우개 전문 홍익교재 공업사, 지우개 비티비 기프트 등의 광고를 클릭할 가능성 역시 높다는 이야기다.

오버추어 검색광고를 처음으로 도입한 사이트가 구글인 것은 아니었다. 오버추어 광고를 처음 도입한 곳은 '오버추어' 라는 회사다. 오버추어 회사에서 쓰는 광고니까 오버추어다 (...) 하지만 구글의 검색엔진 성능은 제일 이었다. 그러다보니 구글은 다른 오버추어 방식의 광고를 쓰는 곳보다도 차별화된 실적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

2001년 구글의 순이익은 700만 달러. 우리돈으로 약 800억원이다.
회사가 적자를 봐서 여자를 못꼬신다고 불평하던 세르게이 브린.
그는 흑자를, 그것도 어마어마한 흑자를 보는 IT 기업의 최대주주 2명중 한명이 되었다.

 


그리고 세르게이는 결혼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무리봐도 세르게이가 손해다.



그에 비해서 레리는
...
...
...
...

몰론 외모가 다는 아니겠지만 세르게이가 심히 안습해 보인다.

한편 구글이 아직 압도적인 흑자를 기록하는 회사가 되기 전인 2000년 12월. 구글은 두 창업자의 결혼파트너 보다도 훨씬 중요한 파트너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회사의 CEO 였다. 임시방편으로 레리가 CEO를 맞고 있기는 했지만 레리나 세르게이나 공돌이 출신 인데다가 기업을 경영한 역사도 그리 길지 않았다. 그들 역시 전문적인 CEO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참고로 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CEO는 다름아닌 이사람이다.



구글을 열핵병기로 공격하겠다.


만일 레리와 세르게이가 이분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면 일이 참 재미있게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아이폰을 구글에서 출시한다던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IT 업계를 삼분하는 두 기업이 열핵전쟁을 할 가능성이 없어지면서 인류는 한층 평화로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는 대로 이분은 얼마 후 애플의 CEO로 복귀했으며, 레리와 세르게이는 다른 CEO를 구해야만 했다.

투자캐피탈 에서는 이런저런 CEO들을 구글에 소개시켜 주었고, 그 CEO 들 역시 구글이라는 회사를 마음에 들어했지만 레리와 세르게이 에게는 눈에 차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CEO는 우선 책상물림이 아닌 공돌이 출신, 그리고 그들에게는 없는 폭넓은 업계 경험을 가진 인물이었다.  

2000년 12월. 그런 CEO 후보가 드디어 애플에 찾아왔다.
그는 버클리 대학교 공학박사 출신으로,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다.
선마이크로 시스템의 CTO로 근무하면서 현재 C와 함께 가장 많이쓰이는 언어인 JAVA의 계발에 한 몫을 했다.

그의 이름은 에릭 슈미트 였다.


 
  1. 안녕하세요. 해커 C 다녀갑니다ㅎㅎ

    대부분의 시대의 혁신을 가져오신분들은 시작이 화려하지 않다는..

    ㅎㅎ 기차안에서 모바일버전으로 잘보고 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2012.03.20 12:45 신고 [Edit/Del]
      천년의 세월을 살아온 거목일지라도 그 시작은 자그마한 새싹일 뿐입니다. 새싹에는 이미 거목이 될 가능성이 있었고, 거목이 될 의지 또한 있었겠지요. 지금의 새싹 들에게도 거목이 될 의지만 있다면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2. 너무도 재미있는 구글의역사 잘보고갑니다^^
    그나저나 황정목씨 자랑스러운데요^^
    행복한 하루 되시고요^^ 오늘도 힘내세요^^
  3. 아 싫어... 내일 낼 글이었는데... 난 왜이레 ㅜㅜ
    • 2012.03.20 14:59 [Edit/Del]
      그랬나요...ㄷㄷㄷㄷ
      전 오늘 아침에 카테고리를 잘못 발행해서...
      지우고 다시 발행하는 일을 겪었던 ㄷㄷㄷ
  4. 내일 낼 글이었는데 오늘 발행되면 진짜 안습.
  5. 아아아아 여기서 끝나면 어떻해요!!! 너무 재밌어요 ㅜ_ㅜ
    어서 다음글 주세요 예!!! 빨리 줘요 두번줘요
  6. 미주랑
    ...오타 발견. 넘어가기 힘든것같은데 '애플에 찾아왔다' 부분. 다음글 기대하겠습니다.
  7. 이런식으로 또 이야기를 풀어쓰시다니.. ㅋㅋ
    재미있는데요. 저의 딱딱한 역사 체험기완 또 다른 재미를 주시네요.
    근데 이번에 래리가 이혼한다고 했나요? 에릭이었나.. ㅎㅎ;;
    • 2012.03.21 12:17 [Edit/Del]
      에릭이었죠. 듣기로는 수조원대의 이혼이랬나... 에릭의 과실이여서 에릭이 결혼기간 동안 번 돈을 반띵해야 한다고 하는군요... 쩝... 그러니까 남자들은 결혼을 멀리하고, 오른손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8. IT를 어려워하는 분들에게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군요~^^ 잘 보고 갑니다.ㅋㅋ
    창고에서 나오는 열정~!! 정말 멋지게 생각합니다!
  9. pinusligida
    글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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