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1 - 후한말의 형새.대충 살펴보는 정사 삼국지. 1 - 후한말의 형새.

Posted at 2012.11.26 12:39 | Posted in 기획특집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한(漢)족 이라고 칭한다. 아시다시피 한(漢)은 중국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제국의 하나일 뿐이다. 중국 최초의 왕조는 역사적으로는 은주, 신화적으로는 하나라까지 거슬러간다. 주나라의 존속시기는 천년에 달하는 것에 비해 한나라의 경우는 전한후한을 합해서 400여년, 거기에 촉한을 어거지로 집어 쳐넣어도 450년 정도다. 물론 왕조의 수명이 450년 이라는건 상당히 긴 축에 속하지만, 한보다 시기상으로 앞섰고, 1000년이 넘는 세월을 존속한 주나라나, 말로는 중화 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문자도 언어도 생활풍습도 다르던 여러나라들을 뭉쳐, 하나의 중국을 만든 진나라도 있다.하지만 그런 주나라와 진나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漢)이 중국 왕조의 스탠다드이자,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왕조, 더 나아가 민족의 이름이 되기까지 한 배경은 다음과 갔다.



1. 사실상 하나의 중국을 가능하게 한 시발점이다.

물론 기록상으로 치면, 하은주 시절에는 하나였다가 춘추시대가 들어오면서 여러 나라로 갈라졌다 라고는 한다. 하지만 초나라의 경우에는 주나라가 거의 망한 뒤에 명목상으로 주나라를 섬기기는 하지만, 그건 명목상 그러했을 뿐이다. 초나라의 민족은 주나라의 민족과는 다른 종족이다. 유물 등으로 보았을때는 묘족의 계통일 가능성이 높다.
몇몇 사서에는 대놓고 “갓 쓴 원숭이.” 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민족이 같은민족인 ‘척’ 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 역시 중원국가들에게 여러모로 개무시 당했다. 춘추시대 초입 주나라 왕이 죽네마니 할 때 주나라 왕을 도움으로 해서 주나라의 백작 작위를 받았음으로 초나라처럼 대놓고 오랑캐 취급은 받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퓨어한 중국인 이라고 보기에는 역시 무리다.
그리고 초나라와 진나라를 합하면 전국칠웅 국력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이다. 다른 전국칠웅을 찍어누르고 통일을 한 것이 진나라이며, 그 진나라를 찍어 누르고 황제가 된 항우와 유방의 출신지 역시 초나라다. 사실 시기상으로 치면 하나의 중국 이라는 골때리는 개념을 시작한건 진나라 였지만, 그것을 시작한 방법이 다름아닌 무력을 통한 침탈 이었기에 다른 나라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니꼬운 실정 이었다.
그에 비해서 한나라는 그 천고의 악당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새운 나라 였고, 그렇기에 진나라보다는 아무래도 백성이나 사대부가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이다.



2. 중국을 아시아의 진정한 패권국가로 만들어났다.

진시황시절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시킨 빠와를 모아서 흉노족까지 멸망시키려고 했다. 법가사상에 힘있어 싸우기 딱 좋은 국가가 된 진나라이니 만큼 성과는 있었다. 하지만 결국 흉노는 멸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흉노와의 전쟁에 국력을 쏟은 진나라만 쇠약해져 결국 초나라한테 망했다.
한편 또다른 내임드 유목민족이었던 동호까지 관광태우며 철치부심 하던 흉노는, 진시황을 관광태운, 항우를 관광태운, 유방을 관광태워 한나라를 동생의 나라로 삼고, 엄청난 돈을 삥뜯었으며, 유방의 불알친구이자, 한의 개국공신인 노관은 자신이 왕으로 있던 연나라를 이끌고 흉노에 항복해버렸다. 중국민족이 나름대로 힘을 기른 진과, 한 시절이 이러할진데 춘추전국시대나, 주나라 시대는 말할 것도 없다. 군사적으로 중국의 농경민족은 북방의 유목민족에게 열새였다.
애초에 진나라도 반쯤은 유목민족 이었고 (...)
하지만 이 강대하던 흉노는 한무제 시대때 본진까지 털려버렸다. 더불어 흉노의 동맹국이었던 조선 역시 이시대에 한무제에게 멸망당했다. 다만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이니 만큼 얻은 영토의 통치권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 한편 전쟁하는데 쓴 물자와 인명은 어마어마한 수준 이었으니, 마치 루이14세 반짝 하고 좆망 태크를 타는 부르봉왕조처럼, 한나라는 점점 좆망태크를 타기 시작했고, 결국 한번 망한뒤에 광무제 유수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
거기에 한무제가 고자로 만든 인간이 다름아닌 중국 역사계의 전설 사마천 이었으니, 한무제는 대충 진시황하고 비슷한 급으로 역사에서 까인다.
하지만 그가 중국을 진정한 의미의 패권국으로 만들었고, 중국인이 중국이란 나라에 자부심을 가지도록 만들어 놨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백성들은 죽을 맛이었으니, 유교에서 말하는 성군과는 거리가 매우 먼 인물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세종대왕도 한무제를 깐 바 있다.


3. 마오쩌둥 이전까지 중국문화의 소울이었던 유학을 장려했다.

본디 유학의 출발은 킹왕짱 태평성대였던 주나라 회복이었지만, 그건 춘추전국시대 아직 주나라가 나라꼴 갖추었을 때 이야기고, 전국시대 쯤 되면 이미 그건 망상이란 것 정도는 유학자들도 알았다. 물론 그런 정신박힌 유학자만 있지는 않았을 테지만, 뭐 어딜가나 꼴통 병신은 있으니 그건 넘어가자. 암튼간에 맹자시대 이후의 유학은 이미 시망한 주나라 따위 어찌되도 상관없으니, 누가 좀 나서서 이 혼돈의카오스를 끝내줘! 하는 식으로 가고 있었다. 뭐 그 혼돈의 카오스는 진시황이 끝내긴 했지만, 아시다시피 진시황은 유학은 좆나 싫어했고, 좆나 박해했다. 그 유명한 분서갱유 크리~.
유학자는 땅에 묻었고, 유학서는 불살랐다. 그게 과장됬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진나라가 유학을 박해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후 진나라를 멸망시킨, 초나라를 멸망시킨, 한나라는 유교를 나라의 기반 사상으로 정했고, 요 기반사상은 후일, 진시황을 존경해요! 라고 대놓고 커밍아웃한 어떤 꼴통 참새 학살자가, 진시황과 비스무리한 짓(문화대혁명)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그짓 하고 난 다음에는? 오히려 중국보다 한국이 대놓고 유교지상주의 나라다.


뭐 ... 별로 재미도 없는 이야기이니 줄이면.

1. 사실상 저때부터 중국시작.
2. 좆나쌘 킹왕짱 강대국.
3. 중국인의 소울이었던 유학장려의 시작.

쯤 되겠다.


하지만 열흘붉은 꽃이없고, 100년젊은 사람이 없는법이다. 광무제라는 유씨사상 최강 먼치킨의 힘으로 한번의 몰락을 피한 한나라 였지만, 광무제가 먼치킨이라고 해서 그 핏줄까지 먼치킨 이라는 법은 없다. 당장에 광무제의 멀디 먼 친척인 유비만 하더라도 본인의 능력은 상당했지만, 그 자식놈은 호구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호구계의 레전드가 아니였는가? 후한 몰락의 원인은 외척의 발호였다. 집에서 꼬꼬마 텔레토비나 보면 딱 좋은 녀석들을 만인지상 자리에 앉혀 놓으니, 정치가 제대로 돌아갈 턱이 없다. 아빠는 이미 하늘나라에 간지 오래이니, 결국에는 엄마가 실권을 잡게 되는데, 그시대의 여성교육이란 뻔하다. 여자는 순종해야 한다, 여자는 어질어야 한다, 같은 개 풀 뜯어먹는 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여성교육을 받아온 황후들은 남편이 죽고, 지 아들내미가 황제에 오른 뒤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아버지나 오빠나 기타 일가 친척에게 HELP를 요청한다.
그러면 오빠나, 아버지는 그 HELP를 받아들이고, 정치를 똑바로 하냐 하면, 그럴 리가 없다. 황제의 외할아버지, 혹은 황제의 외삼촌 이라는 막강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그들은, 마치 물만난 고기와 같이 조정을 어퍼락 뒤퍼락 주무르며, 정치권의 일인자로 발돋움 한다. 조선말의 풍양조씨가 그러했으며, 안동김씨가 그랬다. 사실 꼭 황제의 외삼촌이나, 외할아버지가 아니여도 상관없다. 그냥 황제가 자기 여동생이나 딸을 무지하게 총애해서 비록아이는 없지만, 황후자리에 앉혀 놓기만 해놓으면 얼마든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후한 말의 간신 양기가 그러했다.
양기의 여동생 양날은 본래 황제의 첩중 하나였다. 얼굴 하나는 그런대로 예뻣던 덕에 황후까지 올라갈 수 있었지만,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고, 결국 그렇게 황제는 죽었다. 이때 양기와 하등 관계가 없는 황제가 제위에 오른다면 양기는 대번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서, 사약이나 원샷하고 죽어야 하겠지만, 그때의 양기는 이미 다음 황제 정도는 그럭저럭 바꿀 정도의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황제 버금가는 권세를 가진 양기가, 제대로된 정치인 이었다면 한나라가 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양기의 취미는 음주, 탄기(알까기). 격오(오목), 축국(축구) 등이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놀기 좋아하는 녀석이다. 말을 더듬는 식으로 좀 심약한 편이기는 했지만, 잔계산에 능했다고 사서에 대놓고 나온다. 한마디로 말해서 어버버 하면서 다 해처먹는 그런 분 이셨다.양기의 아내인 손수는 당대의 패션리더였는데, 당대 시대상으로 볼 때 높으신 분이 패션리더면 좀 답이 없어진다. 당장에 조선말의 황후였던 민비나, 청말의 섭정황후였던 서태후의 어마어마한 사치를 생각해보다. 더욱이 당시는 한나라시대. 민비나, 서태후가 사치사치 거리고 있을 때와 천년 이상의 갭이 벌어진 시대다. 그런 시대에 금가락지나, 옥가락지 같은 물건을 높으신 분의 마눌님이 수집하는데 혈안 이었으니 나라 꼴이 제대로 돌아가면 그게 이상하다.
뭐 그래도 순기능도 있긴 하다.
손수는 당대의 패션리더이자, 중국 패션계의 전설.
양기와 손수의 시대동안 손수의 덕으로 중국의 화장문화는 엄청 발전했다고 한다.
다음은 손수가 정립한 화장의정석(?) 인데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상급의 기술들이다.


1. 수미(愁眉): 근심에 잠긴 것처럼 보이게 위해 눈썹을 가늘게 그리는 화장법

2. 제장(啼粧): 눈 밑을 하얗게 칠해 울고 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화장법

3. 타마계(墯馬髻): 머리를 살짝 기울게 하여 여자의 몸가짐이 다소 흐트러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

4. 절요보(切要步): 허리를 꺾고 흔들면서 걷는 방법

5. 우치소(齲歯笑): 이가 아픈 것처럼 얼굴을 살짝 찡그리는 방법 




더욱이 손수는 계산은 빠르지만, 성격은 심약했던 남편과는 다르게 성격 역시 불같았다. 따라서 여성하위시대인 한나라시대 나름대로 입김이 쌧다. 그러다 보니 양기와 손수는 부부인데도 서로가 집 한체씩을 가지고 있었고, 양기가 집을 확장공사하면, 손수 역시 집을 확장공사하는 등의 쓸대없는 경쟁의식에 부부가 불타올랐다. 또한 양기와 손수는 일가친척들을 죄다 조정의 벼슬에 진출 실켰고, 조정은 양씨와 손씨가 판을 쳤다. 본래 이런식의 신하들은 황제가 죽음과 동시에 권력을 잃고,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표준이기는 하지만, 양기의 여동생의 남편 되시는 순제가 죽을때 이미 양기는 너무나도 큰 존재였다.
새로운 황제 정도는 자기 힘으로 정할 수 있을 정도로.
양기는 황제가 죽자 2 짜리 꼬맹이를 황제에 앉혔다. 이는 그 2 짜리 꼬맹이가 전대 황제인 순제의 외아들 이란 명분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한 이유는 나이가 어려야 양기가 어퍼락쥐퍼락 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꼬꼬마 텔레토피 황제는 3살에 서거하셨다. 영아사망률이 워낙에 높은 시대다.
3살짜리 황제가 죽은뒤, 양기는 이번에는 황족중에 8살짜리. 오늘날로 치면 초등학교 1학년 짜리를 대려다가 황제 자리에 앉혔다. 그런 꼬맹이를 황제에 앉힌 이유는 역시나 지가 다 해먹기 위함이다. 하지만 초등학교1학년 황제 질제는, 초등학교 1학년 치고는 똑똑한 편이었고, 양기와 손수가 어떤 막장짓을 저지르는지 그럭저럭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양기를 보자마자 대뜸 한마디 날렸다.



"너님이 날치기 대장군 인가요?"



어린아이답게 아무것도 모르는 꼬꼬마인줄 알고, 질제를 황제 자리에 앉혔던 양기는 ‘날치기 대장군’ 이라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아무리 양기가 대장군 이라고는 하지만, 황제가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언재든지 재거할 수 있는 벼슬아치에 불과했다. 당장은 어린 황제가 손을 쓰지 않더라도 언재든지 손을 쓰면 그는 모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양기는 어린황제 질제의 간식에 독을타, 질제를 암살했다. 서거당시 질제의 나이 9살. 초등학교 1학년에 황제에 즉위해서, 초등학교 2학년에 암살당한 병신같은 삶이었다. 어린나이에 걸맞지 않게 똑똑했지만, 어린아이 답게 신중하지 못했다. 그딴걸 말로 꺼내면 어쩌란건지 원~.
한편 좆나 패기만 넘치시던 초딩황제 환제가 죽자, 이재 그만큼 어린 유력황손은 남지 않았는지 양기와 손수는 차선책으로 15살짜리. 즉 중학교 2학년 짜리를 황제에 앉혔다. 중학교2학년. 좋을 때다. 전 세계를 손에 넣을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당당하게 하는, 어둠의 다크에서 죽음의 데스가 느껴지는 혼돈의 카오스의 시기. 그런 시기에 진짜로 지존의 자리에 올랐다. 새로 즉위한 황제 환제는, 전 황제인 초딩황제 질제 이상으로 패기만만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전임자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최측근이였던 조등과 함께 철호의 찬스를 엿보기로 했다.

조등. 그는 환관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만한 집안 출신인건 아니다. 그의 선조 대시는 조참은 한나라의 개국공신중 한명으로, 중국 역사상 최고의 승상이라는 소하의 후임 되시는 나름 래전드다.[각주:1]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직업은 환관. 즉 고자다. 환관이 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첫 번째로는 죄인이 궁형을 받는 경우고, 두 번째로는 환관의 권력이 탐나서 스스로 고자가 되는 것이다. 조등은 명문가인 조씨의 후예였지만, 집안의 중추와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갈수 있는 한계가 명확한 상황. 이 상황해서 그는 더욱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인생을 거는 모험을 했다.
그 모험은 바로 고자되기.
모험맞다.
환관시술을 받다가 죽는 사람도 상당했던 고대의 시대. 그는 권력이라는 사탕을 얻기위해 그 모험을 했고, 결국 승리자가 되었다. 뭐 그덕에 평생 색스를 못하는 몸이 되기는 했지만, 그는 권력의 중추에 올 수 있었고, 그가 지지하던 황제 후보였던 환제가 황제가 되기에 이른다. 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측근. 그야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 하지만 그 자리를 느끼기에는 양기와 손수 부부라는 장애물이 너무나도 확고하게 버텼다. 하지만 애초에 환제의 즉위 자체가, 양제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시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중학교 2학년 황제 환제는 그냥 순둥이인 척, 순둥순둥 살았고, 조등은 그 순둥이의 애완동물인 고자1호로 지냈다. 그렇게 그들이 숨을 죽이고, 기회를 맞보던 중 드디어 기회가 왔다.
그 기회는 양기와 손수가 스스로 재공했다.



양기 : 저기 있잖아. 솔까 우리가 명색이 외척인데 말이야, 지금 황제하고 우리하고 연줄이 좆도 없잖아. 이거 뭔가 장기적으로 문제가 좆나 많다고 생각해.
손수 : 나도 그생각 했어. 그래서 말이야 내 외삼촌의 부인의 전남편의 딸이 있는데 게가 한미모 하거든. 개를 후궁으로 만들고, 나중에 황후로 올리는 건 어때? 물론 전남편의 딸 이라는 신분은 병신같으니, 게네 엄마는 죽이고 말이야.



마눌님의 재안을 들은 양기는, 그 외삼촌의 마누라의 전남편의 딸. 이라는 여자아이를 보러 갔다. 근데 보러가니까 진짜로 비쥬얼이 꽤나 괜찮은게 아닌가. 이만하면 새 황제의 장난감이자, 황제와 일족의 연결선으로 좋을것이다. 라고 생각한 양기는 마눌님의 재안을 실행했다. 하지만 문재가 생겼으니, 입막음을 위해 죽이려 했던 외삼촌의 마누라가,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궁전으로 가 이 일을 다 꼰지른 것이다. 이 일을 듣고 빡친 환제는 이 일을 명분으로 하여 속전속결로 양기를 포위했다.
한편 다 틀렸다는걸 깨닳은 일세의 막장 부부. 양기와 손수는 자살했다. 이로인하여 한나라가 안정을 되찾았다면, 삼국지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환관의 도움으로 황권을 강화시킨 환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람은 믿을 수 없다. 하지만 고자는 믿을 수 있다.



그렇게 그는 대놓고 환관을 총애했다. 뭐 그 고자들은 환제 시대떄는 나름대로 밥값 했던것 같다. 양기이후 새로운 외척이 발돋움 하려고 하자 조등을 비록한 22명의 환관들은 그 새로운 외척세력을 밟아 놓았고, 그 상으로 후작자리와 함께 양자를 들여 가문을 꾸릴수 있는 권리를 하사받았다.
그렇게 그는 대놓고 환관을 총애했다. 뭐 그 고자들은 환제 시대떄는 나름대로 밥값 했던것 같다. 양기이후 새로운 외척이 발돋움 하려고 하자 조등을 비록한 22명의 환관들은 그 새로운 외척세력을 밟아 놓았고, 그 상으로 후작자리와 함께 양자를 들여 가문을 꾸릴수 있는 권리를 하사받았다. 한편 이 상을 받은 조등은 하후씨의 아이였던 조숭이라는 아이를 양자로 들었는데, 이 조숭의 아들이 바로 조조. 그가바로 위나라를 새운 시대의 영웅 조조 되시겠다. 조조의 가문은 이러한 배경을 가진 환관계의 전설 가문이었기 때문에 십상시의 삼촌이라고 나대고 다니는 지나가던 사람A 정도는 참!살! 할 수 있었던 거다. 레벨이 다르다.

한편 외척 양기에 반대하던 재야유학자 집단, 후일 청류파로 불리는 집단은 고자가 실권을 잡는다는 사실에 마음에 안들었던 고로, 그리고 환관세력이 제2의 외척이 될 가능성이 보이자 환관세력과 첨예한 대립을 새우게 되었는데 그 제야유학자 집단이 바로 청류파이다. 그리고 반대편인 환관은 자연스럽게 탁류파 라는 이름을 얻었다. 청류파는 탁류파 고자새끼들이 역적이라며, 대놓고 충돌할 기미를 보인다. 하지만 먼저 선수를 친 것은 환관세력이었고,환관세력은 청류파 주동자 200명을 감옥에 잡아 쳐넣는데 성공한다. 그리하여 청류판은 고향땅으로 내려가서 의병을 일으켜 환관과의 결전! 이라는 최후의 수까지도 생각했지만, 탁류파의 지도자인 조등은 이쯤에서 협상안을 재시한다.



조등 : 그냥 벼슬 깍는 선에서 끝낼태니 이쯤에서 화해하죠.
청류파 : 콜.




그렇게 조등은 싸움을 무탈하게 끝냈고, 그로인해 환관에 고자이지만, 수많은 선비들을 살린, 청류파 사이에서도 나름대로 존경받는 사람으로 남게된다. 더욱이 그가 입양한 아들인 조숭의 손자 조비가 훗날 위나라의 황제 자리에 오르면서, 그 역시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되니 조등 그야말로 중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환관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고자계의 전설이다. 더욱이 그는 무사히 정계를 은퇴해서 늙어 죽었으니, 정치거물로서는 이례적으로 별 탈없는 삶을 살다갔다. 고자라는 것만 빼면 말이다.


 



  1. 단 조등이 조참의 후예라는 것은 뻥 이라는 설도 있다. [본문으로]
  1. 조조는 조등의 손자라는 권력만 믿고 깝친 건 아닙니다.
    지 능력이 탁월하다보니 뭐든 해낼 수 있다고 여긴 거죠.
    심지어 환관 장양을 죽이려고 혼자 쳐들어가기도..
    • 2012.11.26 15:53 [Edit/Del]
      조사마의 능력이야 당연지사죠. 거의 모든 삼국지 게임에서 능력치 총합 1위를 마크하시죠. 하지만 만약 조사마의 집안이 잘나가는 집안이 아니였다면, 조사마는 유력환관을 족치는 일을 제대로 못했을 것입니다. 그정도 상황판단 능력은 있으시니까요. 죽거든요...
  2. 화장의 정석! 손수가 손수 보여주는 화장 필살기를 보고 싶어지네요.. 쿨럭.. ㅋㅋ
  3. 이히리히디히
    손나....손나.....
  4. ;;아앗... 마지막의 오나여 무슨 장면인가 싶어 무심코 검색했더니.;; 으음...;;;
  5. 미주랑
    ...결론은 뭐든지 장단점이 있는것이었군요(먼산)
  6. 좋은 정 artie la conception de ce site est très agréable et à cause de cela, l'interface de ce blog devient convivial. Mais il ya un problème qui est là n'est aucun article particulier ou une description sur le blog est fourn asdfwerwqrafd
  7. 어쩌면 중국은 너무 유화 정책을 취한게..
    나중에 앞길을 막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뭐.. 이도저도를 떠나.. 다민족 국가의 현실은 늘 위험이 상존하고 있고..
    근대화 된 지금도 그건 한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지 싶네요.
    • 2012.11.28 12:11 신고 [Edit/Del]
      근데 사실 그 큰 땅덩어리는 뭘 해도 갈등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라서. 만일 티벳문제하고 위구르 문제가 기적적으로 해결되면 동부와 서부의 빈부격차에 따른 갈등이나, 민주주의와 독재정치에 대한 갈등이 좀더 정면으로 나오겠긔요. 뭐 최소한 저것들은 한국에도 있는 구도라서 친근감(?) 은 느껴지겠네요.
  8. 유비는똥별이
    삼국지연의만 보면 중국이 왜 세계최강대국이 될 수 없고 영원히 다른 나라의 눈치밥이나 쳐먹고 사는 2등국가가 돼야만 하는지 너무나 잘 알 수가 있다.

    오직 유씨가 하면 뭐든지 다 잘했다고 박박 우기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리 업적을 세워도 병신 취급을 하는 그따위 썩어빠진 유씨 위주의 인종차별질을 해대니 중국은 후진국이자 약소국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솔까 한 이후 중국은 언제나 다른 나라의 밥이 되기만 했을 뿐이다.

    사마염이 진나라를 통일하자 그 후손들이 얼마나 병신들만 골라 태어났는지 천재인 사마의의 직계후손이라는 사실이 의심될 정도였다. 특히 멍청해서 자기가 써놓은 글도 못알아보는 사마충과 그보다 넘사벽으로 더 멍청해서 아예 거동 자체를 못하고 나이 30넘어서까지 똥오줌도 못가리는 중국 최악의 천치인 사마덕종에 에휴... 그래서 진이 망하니까 남북조시대가 됐고 이 시기에 삼국시대보다 더한 케챂파티가 벌어졌다. 결국 수양제가 천통을 하긴 했는데 이 병신같은 수나라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인 고구려의 밥이지. ㅋ 을지문덕 하나 때문에 아예 나라가 박살이 나버린게 수나라다. 게다가 그 직후 세워진 당나라도 한심하긴 매한가지라 십라똥구녕이나 후빨하다가 황소의 난으로 당나라가 망했지. 오죽했으면 최악의 오합지졸을 표현하는 말이 "당나라 군대"겠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이건 그냥 커피고 이 이후의 중국이 T.O.P.야. 이후 조운 자룡의 직계후손인 조광윤이 송나라를 세웠지만 오늘날의 몽골인 원나라에게 밥노릇을 아주 확실히 했다. 이당시 중궈놈들은 쿠빌라이의 쿠자만 들어도 공포이 지려서 바지에 오줌을 지릴 정도였다. 이후 어찌어찌해서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다. 명나라는 그나마 1~200년 정도는 제대로 나라를 다스렸다. 후한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나라를 다스린 첫 사례지. 근데 그것도 얼마 못가고 임진왜란이 발생해서 거기에 때려붓고 미친 주익균이 황제가 되면서 조정은 병신되고 그렇게 만주족인 청나라에게 잡혀먹혔다.

    거기에 이후 영국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결국 아편전쟁이 벌어지고 완전 박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다가 이후에 한반도를 놓고 청일전쟁을 벌였다가 또 박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하하하하하하~ 일제가 패망하자 공산주의에 물들어서 소련의 빵셔틀 노릇이나 하고 자빠졌다가 냉전이 붕괴되자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눈치밥이나 쳐자고 있는게 중국의 영원한 빵셔틀 현실일 뿐이다.

    만약 조조나 손견을 신으로 숭배하는 중국인이였으면 몽골마냥 사방으로 퍼져서 중국의 국토는 지금의 미주지역 전체를 합친 정도의 거대제국을 형성했을 것이다. 유비관우장비만 좋아라 하고 나머지를 죄 쓰레기취급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생각을 틀 안에 가두고 마는 꼬라지인 것이다.

    결국 유씨만 주인공이라는 폐쇄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 중국은 중화사상에 빠지게 되고 이 때문에 정복활동을 아예 하지 않아 결국 그렇게 큰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놈 저놈들의 속국인생만 계속 끝없이 영원히 반복할 뿐이다.

    결국 연의식 사고방식은 개척정신을 저해하기 때문에 영원히 꼴찌국가로 남을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산국지 최악의 무능아이자 최악의 악당은 다름아닌 유비 현덕 혼자밖에 없다. 동탁 중영조차도 유비 현덕에 비하면 아주 훌륭한 인격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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