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스티브 잡스 이야기 - 잡스, 아이브, 팀쿡의 삼각편대.The Hero스티브 잡스 이야기 - 잡스, 아이브, 팀쿡의 삼각편대.

Posted at 2011. 10. 25. 06:00 | Posted in 기획특집




아이맥

애플에 돌아온 잡스가 우선적으로 시도한 비즈니스 중 하나는 어도비와의 협력 이었다. 포토샵 하고 플래시 만드는 그 어도비 맞다. 당시 애플 사용자의 다수는 어도비의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그래픽 업종 종사자였고, 어도비는 윈도우 용의 포토샵 없이 맥 용의 포토샵만 출시하고 있었다. 잡스가 생각하에는 어도비와의 공동 이벤트 등이 충분히 가능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잡스의 생각일 뿐이었다. 어도비는 생각이 달랐다. 당시 어도비는 탈 애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1996년 잡스가 애플의 CEO에 복귀한 그 해에 어도비는 최초로 윈도우용 포토샵을 출시했다.

애플은 어도비를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도비는 애플을 빨리 탈출해야할 타이타닉 정도로 생각한 것이었다. 당시 애플의 경영 상황 등을 생각하면 어도비의 저러한 처사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무튼 간에 어도비가 윈도우용 포토샵을 출시 했다는 것. 그것은 애플 에게는 커다란 재앙 이었다.

그렇게 1996년은 회사 상황을 정리하면서, 그리고 어도비의 배신에 속을 끓이면서 지나갔다.

그리고 1997년은 그 유명한 아시아발 금융위기 때문에 별 이득 없이 지나갔다.
여담이지만 특히 한국은 아시아발 금융위기 때 큰 충격을 받았는데 우리는 그걸 보통 IMF 라고 부른다.

그리고 대망의 1998년이 찾아왔다.

1998년은 애플에게 있어서 그리고 잡스에게 있어서 상당히 의미가 깊은 해였다.
1998년 애플은 하나의 히트상품을 출시하게 된다. 바로 아이맥이다.




아이맥은 컴퓨터의 본체와, 모니터가 합해져 있는 일체형 컴퓨터였다. 아이맥은 두가지 측면에서 주목을 받았는데 그 중 하나는 디자인이 이었다. 속이 훤히 비치는 반투명한 초록색의 컴퓨터. 아이맥의 디자인은 최고였다. 그리고 아이맥의 두 번째 장점. 그것은 간편함 이었다. 컴퓨터를 설치하기 위해서 연결 해야할 선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아이맥은 선의 연결의 필요성을 최소하 시켰다. 우선 선 중에서 가장 두꺼운 선인 모니터와 키보드의 연결선이 필요 없었다. 어린아이도 설치할 수 있는 컴퓨터. 그것이 아이맥의 광고 문구였고, 실재로도 그러했다.

디자인 그리고 간편함

오늘날 애플의 상징으로 불리는 이 두가지 키워드의 시작은 바로 아이맥 이었다.
아이맥은 80만 대가 팔려 나갔으며 적자 회사였던 애플을 일시에 흑자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아이맥은 1998년 애플이 얻은 두가지 보물 중 두번쩨 것일 뿐이었다.
1998년 애플이 얻은 가장 큰 것은 바로 인재였다. 애플은 그 해 두명의 특급 인재를 가지게 된다.
그중 한명은 원레 있던 인재였지만 잡스가 옴으로 해서 비로서 재능을 꽃피게 된 인재이고. 다른 한명은 새로 애플에 입사한 인재였다.

우선 원래 애플에 있었던 인재인 조나단(조나선) 아이브를 살펴보자.



아이브




오늘날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 중 한명으로 손꼽히며 특히 IT제품 디자인 측면에서는 단언 제일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아이브다. 하지만 잡스가 오기 전의 아이브는 그야말로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와 같은 신세일 뿐이었다. 그는 보석과도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애플 이라는 기업은 그것이 보석인지 조차도 몰랐다. 마치 그 옛날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자는 워즈의 제안을 묵살한 HP 처럼 말이다.

본래는 디자인 쪽으로는 외부 인재와 일하려고 했던 잡스였다. 잡스는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와 일할 계획을 새우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애플은 돈이 없었다. 그 때 잡스의 눈에 들어온 것이 30세의 젊은 디자이너인 조나선 아이브였다. 애플에서 나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던 이 젊은 디자이너는 하루 아침에 애플의 디자인 총괄 부사장 이라는 직책을 얻게 되었다. 이재 그는 애플에서 나갈 수 없었다.

뭐 결국 추후 애플은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와 일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브가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었기 때문 이지 다른 디자이너를 고용한 것은 아니었다.
간단함, 그리고 근사함. 이 두가지 측면이 살아있는 그의 디자인은 세계 IT 업계를 그야말로 휩쓸었다.

아이브는 잡스가 가장 신뢰하는 인재였다. 잡스는 그를 정신적인 동반자로 여겼다. 그도 그럴것이 스티브 잡스가 계획하고, 조나단 아이브가 디자인한 제품은 언재나 시장을 휩쓸었고, 판도를 뒤바꾸었다. 조나단 아이브가 있음으로 해서 스티브 잡스는 비로서 완성 될 수 있었다. 잡스 인생 초반기의 소울 메이트가 워즈 였다면 잡스 인생 후반기의 소울메이트는 단언 아이브 였다.




조나단은 2008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국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2위가 그 J.K 롤링 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때 이양반이 얼마나 대단한 거물이 되었는지는 더 써봐야 손가락만 아프다.
'세계최고의 디자이너' 이거면 충분하다.


그리고 새로 얻은 인재로는 현 애플의 CEO 이기도 한 팀쿡이 있다.



팀쿡




팀쿡의 애플 입사과정은 애플다웠으며, 잡스 다웠고, 팀 쿡 다웠다.

우연히 잡스와 쿡은 식당에서 만났다.
우연히 잡스와 쿡은 대화를 시작했다.
쿡은 잡스가 잡스라는 걸 알괴되었다.
잡스는 쿡이 IBM의 북미 총괄 COO로 근무하는 인재라는 것을 알았다.
둘은 서로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팀쿡의 입사가 결정되었다.


팀쿡을 역사적인 인물로 비유를 하자면 중국 한나라의 한초삼걸 중 소하 승상과 같은 타입의 인재였다. 팀쿡과 소하 둘 다 직접 나서서 싸우는 것, 천리 앞을 내다보는 쪽의 능력은 그리 두드러지지 못했지만 물자를 관리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당대 제일이었다. 소하가 있었기 때문에 유방은 비록 전투에서는 지더라도 보급이 끊기는 일은 없었지만 소하가 없었던 항우는 유방에게 단 한번 졌음에도 불구하고 막장의 상황까지 몰렸고 결국 패했다.



그만큼 보급과 재고 관리는 중요하다.
소하 외에도 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인재로는 관중과 제갈량이 있는데
그 둘 역시 보급과 재고관리의 귀재였다.


잡스는 IT 제품의 교체 주기가 무지하게 짧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애견하고 있었다. 쿡은 이미 재고관리 측면에서 고수로 IT 업계에 명성을 떨치는 인물 이었지만 제품 수명 주기가 길었던 1998년에는 그러한 쿡의 능력은 있으면 좋긴 하지만 뭐 없어도 손해좀 덜보는 정도 아닌가 정도였다. 오직 잡스만이 팀쿡의 가치를 알아주었고, 팀쿡의 생각을 이해했다. 팀쿡은 애플에 부임한 뒤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낙농업처럼 신선도를 유지해라.”

처음 팀쿡이 저 말을 했을 때 저 말은 오버 였을수도 있다. 하지만 점점 IT 업계의 재고관리는 가전제품의 그것 보다는 식품업의 그것과 비슷해 지고는 있다. 애플의 경우에는 브랜드 가치가 워낙 높으니 그나마 사정이 낫다만 다른 기업의 경우 3개월 ~ 6개월 정도만 지나가면 구형이다. 출시된지 3개월 된 LG 스마트폰이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보면 대충 업계 사정을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리라. 1달이 지나면 최신제품이 구형제품으로 탈바꿈 하는 오늘날의 IT 업계 에서 재고관리는 우유 수준은 아니더라도 군량미와 같이 해야한다.




잡스, 아이브, 그리고 쿡. 이 삼인의 조합은 지금까지의 IT 업계에서 있었던 조합 중 그야말로 최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조합은 과거 잡스와 워즈의 조합의 위력을 뛰어 넘었는데 그 이유는 아이브와 쿡이 잡스의 친구 가 아닌 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워즈는 직급 상으로는 잡스의 아래 였지만 애플의 공동 창업자이자 잡스의 오랜 친구, 그리고 잡스보다 나이가 많은 연장자로서 잡스가 까라고 하면 까는 위치의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브와 쿡은 달랐다. 그 둘은 잡스보다 나이도 낮았고, 직급 역시 낮았다. 그 둘은 잡스가 까라면 까야하는 이들 이었다.

몰론 잡스는 이들을 최대한으로 존중했다. 애플 내에서 그 둘에게 명령할 수 있는 이들은 잡스 말고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이 예술가 이니 만큼 감수성이 풍부했던 아이브는 잡스 사후에 다음과 같은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잡스는 내 아이디어를 자신의 아이디어처럼 포장했다.”
“그는 신경질 적이고 반사회 적이다.”

몰론 아이브가 잡스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잡스는 그를 인정해준 사람 이었고, 그를 최고로 만들어준 사람이었다. 그저 우리는 아이브의 저런 푸념을 들으면서 이 사실을 다시금 인지하면 되는 것이다. 잡스의 성격은 그의 소울 메이트였던 아이브 에게도 최악 이었다고. 잡스는 아이브를 소울메이트로 여겼지만 그런 소울 메이트 에게도 신경질을 부릴 때로 부렸던 것이리라. 소울 메이트에게 그정도 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오죽 하겠는가.

만약 팀쿡이 위의 저 말을 잡스의 살아생전 했다면 잡스는 아이브에게 사장의 고유스킬인 해고를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몰론 이것은 애플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손해이며 혹시라도 로또로 아이브를 얻을 수 있는 경쟁회사로서는 커다란 이득일 것이다. 국내에서도 만약에 삼성에서 아이브를 고용한다면 어떨까 하는 소설을 쓰고 있다. 몰론 소설일 뿐이다. 하지만 만일 성공만 한다면 삼성이 가진 디자인에 약하다는 이미지를 단번에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에 강한 회사인 애플. 그러한 애플을 디자인한 사람이 바로 아이브다.

잡스의 성격이 저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에는 특급의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그것은 애플만이 가지고 있는 하피적이고 자유분망한 조직문화 떄문이었으리라. 다른 조직에는 적응이 불가능한 괴짜 천제 인재들이 애플로 애플로 모여든 것이다. 잡스, 팀쿡, 아이브 3인을 비롯하여 애플의 인제폴은 점점 풍성해지고 있었고 (MS 구인모집에서 대놓고 애플출신 환영합니다. 라고 써놀 정도로 애플의 지금 인재진은 우수하다) 매킨토시 역시 점차 회복하고 있었다.

아이북(지금의 맥북) 파워북 등은 큰 히트를 쳤다. 2011년에는 새로운 맥 OS인 맥 OSX가 등장하여 호평을 받기도 했는데 이 맥OSX는 애플의 원래 기술이 아닌 넥스트의 기술로 만든 물건이었다. 맥 OSX는 그전까지의 맥과는 확연하게 틀렸으며 최신의 맥인 라이온 역시 그것의 직계 후손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킨토시의 점유율은 MS의 윈도우 점유율에 비하면 극히 초라한 수준이었다. 매킨토시 만으로 애플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 하는것은 불가능했다. 다른 것이 필요했다. 애플 식으로 말하면 ONE MORE THING 이다. 잡스 그리고 애플이 관심을 가진 시장은 다름아닌 MP3 시장이었다. 당시에도 이미 MP3는 그럭저럭 시장을 이루고 있는 상태로서 완전한 블루오션은 아니었다. 이미 MP3 시장에는 많은 기업들이 진출해 밥을 벌어먹고 있었다. 그 중 우리에게 친숙한 기업으로는 아이리버가 있다.

아이리버는 전성시절 미국 점유율 70% 그리고 세계 점유율 50% 까지도 차지했던 기업이다. 아이리버는 대기업이 아니었다. 중소기업 이었다. 특유의 디자인으로 인기가 높았던 아이리버는 mp3 시장의 강자였으며 한국 밴처기업 신화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애플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운 좋아서 성공한 기업에 불과했다. 아이리버를 비롯한 당시 mp3 업체의 단점은 다음과 같았다.


1. 사용하기 존나 어렵다.

몰론 사용 할만한 사람은 다 사용한다. 하지만 잡스가 원하는 것은 사용 할만한 사람들만 사용 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존에는 mp3 같은 최신제품의 고객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계층. 즉 60대가 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까지 mp3를 사게 만들 수 있다고 잡스는 생각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의 mp3는 사용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신세대들은 대충 만져보면 사용할 수 있었지만 쉰세대들은 대충 만지다 보면 화딱지가 나서 mp3를 부술 지경이었다.


2. 인터넷 판매의 미지원.

mp3를 사면 음원 대부분은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불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음악을 다운로드 받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공짜인 것도 있지만 직접 음반을 사는 것 보다 싸게 먹히기 떄문이었다. 만일 mp3음악을 불법 다운로드 받는 것보다 훨씬더 편하게 음악을 구매하는 방식을 지원 한다면 시장에 통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애플의 MP3 출시를 기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빌 게이츠가 애플이 MP3를 출시한다는 말을 듣고 "잡스가 망하려나부다." 라는 말을 했다는 썰도 있다. 어디까지나 썰이고 출저는 불분명 하지만 그만큼 당시 애플의 MP3 출시는 타 회사의 눈으로 보기에는 치기에 불과했다.

그렇게 역사상 가장 히트한 mp3 플레이어 아이팟이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계속>


  1. 미주랑
    ....낙농업 처럼 신선해야 한다...요즘의 기술의 발전을 대변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전제품. 특히 IT제품의 주기가 짧아질것이라고는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요.한일 월드컵 이전엔 생각도 못했을일이죠.
  2. 낙농업처럼 신선해야 한다. 그런 말을 할줄 몰랐습니다. 오늘도 새로운 내용을 잘 알고 갑니다. ^^
  3. 용새끼
    간만에 잡느님 이야긴가요 ㅋㅋㅋ 아 그리고 참 보면서 느끼는거지만...끼리끼리(?)논다고 잡스주변엔 괴짜들만 모이는군요 ㅋㅋㅋ 뭐랄까 잡스가 성공한 것도 맞고 세상에 존경받고 원하는 것을 하고 살았을지도 모르지만 왠지 엄청 외로운 인생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드네요.
  4. 초 러블리~~♥!!
    ..그래, 재밌는 사람 곁에는 재밌는 사람이 모이는거야, ㅋㅋ
    (자신이 재밌어야겠지만...., 후~웅;;)
    음, 원래 인생은 외로워요.^^

    역쉬 쉰세대에게는 쉬운 폰을 달라~달라아~~!!(-그래, 내가 원체 이랬지.., 미래에는 더 싼 폰이 나올거야)
    그쵸?? (안 그럼 재밌지가 안아용~!!)
  5. 아 이제서야 읽다니 ㅎㅎ
    다음편은 언제올라와용?
  6.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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